낮은 채용 비용과 자부심은 잘 엮은 팀 스토리의 결실이다
여느 때처럼 원티드에서 공고를 쓰다 현타가 온 날이 있었다.
그 이유는 공고 길이였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우리 채용 포맷은 인트로부터 아주 길었다. 우리 회사를 소개하는 긴 글에, 또 이 포지션이 어떤 일을 하는지, 속할 팀은 어떤 문화로 일을 하고 있는지 등을 정성스럽게 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론은 짧아야 하는데 또 그게 아니었다. 담당업무, 자격요건, 우대사항 핵심 내용이 끝나면 후반부에는 구성원 인터뷰 링크들, 근무환경 및 복지제도, 주요 성과, 다시 한번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과 노력 등 내용들이 또 한 움큼 담겼다.
한 마디로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지원자분 대부분은 빠짐없이 읽고 오셨지만 아무리 장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30초 숏폼 동영상이 세상을 휩쓰는 시대에 이렇게 너무 긴 텍스트는 멋져 보이기가 힘든 것.
사실 처음에는 조직문화팀이 생기기 전 사용되던 채용공고 레거시(기존 포맷)와 우리 팀이 짠 포맷이 결합되면서 생긴 문제인가도 싶기도 했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공고 속에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각기 다른 정보들을 다 링크로 걸 수도 없고 (n개의 링크는 n개의 이탈 방법을 낳는다) 잠재 지원자에게 매력적일만한 정보를 모아 한번에 다 보여주고 싶으니 우르르 쏟아놓는 것이었다.
이게 최선일까. 우선 현황을 파악했다
하우투메리 홈페이지 : 말 그대로 회사 홈페이지. 사명은 바뀌었는데 유물로써 존재. 외부 관계자들을 위한 유일한 사이트다 보니 아직도 회사 소개나 채용공고 때마다 필요한 페이지를 어쩔 수 없이 링크 중.
웨딩북 서비스 소개 사이트 : 마케팅을 위해 만든 사이트이기에 회사에 대한 내용은 없음.
웨딩북 회사 소개 사이트 : (이거 언젠가 나온다고 들은 거 같은데... 언제 나와요???)
올해 초는 채용으로서 너무나 중요한 시기였다. 10개 포지션이 열릴 계획이었고 다양한 본부의 채용이라 다르게 셀링 해야 하는 내용도 많았다. 그래서 더 필요했다.
제작 배경을 정리해보면 이랬다. 실제 기획서에도 이렇게 썼다.
1. 사명은 변경됐는데, 우리 조직문화가 정리된 '웨딩북표' 페이지가 없어요
아웃링크를 하우투메리 사이트로 연결한다는 건 항상 사명이 변경되었다는 부연설명으로 공고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사명이 바뀐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니 하우투메리 시절을 모르고 오는 지원자들도 대부분인데 다른 이름으로 된 페이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객 경험이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2. 각 공고마다 다 따로 공유하며 홍보해야 하니 비효율적이에요
SNS에 홍보를 하려고 해도 10여 개를 각각 포지션별로 따로 공유하며 매번 알려야 하니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같은 썸네일에 포지션만 다른 링크를 매번 들어가 볼 사람들은 없을 텐데. A 포지션에 관심 있어 들어온 지원자가 B 포지션에 구직 중인 친구에게도 공유해줄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했다.
3. JD마다 들어가는 공통 내용 이제 그만 쓰고 싶어요
모든 공고에 해당되는 회사 및 서비스 소개, 핵심가치, 조직문화, 혜택 및 복지를 끝없는 워딩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나.
스타트업계에 5년 가까이 있으면서 배운 건 모든 일은 ASAP이고 손이 노는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답답한 사람이 시작하면 되고, 없으면 만들면 된다.
이때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답답해하는 사람이 알아서 만드는 걸 진심으로 응원하는 환경만 만나면 된다는 것. 괜히 일 만든다고 생각하는 곳이라면 아무리 설득한다해도 어렵다. 다행히 웨딩북은 워낙 자발성과 능동성을 핵심동력으로 생각하는 회사고, 우리 팀은 그중에서도 알아서 일을 찾는 사람들만 모인 터라 나는 최상의 환경을 만난 편이었다.
우리 팀은 일 메이커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만 모였기에 서로 응원하고 지지만 해줘도 거의 알아서 돌아가는걸 알고 있다. 부작용이라고 하면 일이 자꾸 많아진다는거(?)
사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라고 맘먹는 게 쉽진 않다.
이건 개인적인 배경덕분이기도 했다. 기획/PM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마케팅을 병행해왔던 게 이럴 때 꽤나 쓸모가 있다.
현역이 아니니 잘하진 못해도 최소한 두려움이 없다는 게 큰 이점이다. 눈치껏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요령에서 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인데, 하지만 경험이 없는 분들이 직접 하기에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한번 도전해볼만 하다라고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 이 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치만 무엇보다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려움을 앞설 책임감을 지르는 것이다ㅋㅋㅋ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이거 만들려고 하는데요...
지난 12월의 코끼리 찾기 2편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어떤 내용을 채울지 이전에, 어떻게 보여줄지를 먼저 탐색하고 정하는 편이다. 목적에 맞는 툴을 찾으면 1/3은 이뤘다고 보는 편이기도 하다.
그렇게 노션을 찾았다. 노션에서는 나 같이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게 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 페이지 기반으로 많은 내용을 디렉토리화 할 수 있고 (페이지 내 페이지 생성) UI 자유도가 워낙 높고 동시에 많이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정돈되어 보이는 게 큰 장점이다. 수정과 편집도 쉽다.
이미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노션으로 채용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어 많이들 익숙하실 거라 생각한다. 신기한 건 리서치 결과였다. 같은 툴로도 각 회사가 사용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용자 그룹에서 모아둔 국내 노션 채용공고 리스트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회사 사이트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각 페이지를 들어가면 정보가 보이는 포털 형식과
채용 사이트라기보다는 한 페이지에 잠재 지원자에게 알리고 싶은 대부분의 정보를 모두 담는 페이지 형태로 나뉘었다. 우리에겐 후자가 맞아 보였다.
각종 시나리오를 생각해본다면
1) 채용공고를 누른 지원자 -> '웨딩북팀의 모든 것' 링크 봄 -> '웨딩북이 뭐냐'하며 링크 클릭
2) 웨딩북에 다니는 친구가 회사 소개하기 위해 링크 던짐 -> '웨딩북이 뭐냐'하며 링크 클릭
3) 외부 관계자들에게 '웨딩북은 어떤 회사인가요' 질문 받음 -> 링크 던짐 -> '웨딩북이 뭐냐'하며 링크 클릭
다양한 상황의 '웨딩북이 뭐냐'에 답할 수 있는 원링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잠재 지원자가 회사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을 목차화시켜보았다.
회사
어떤 서비스를 만드는지
어떤 문제를 풀고자 하는지
어떤 것을 이뤄왔는지
믿을만한 회사인지 (언론보도, 투자 소식)
홈페이지/유튜브/블로그 등
문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인재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동료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동료 인터뷰
근무환경/복지혜택
점심은 어떻게 먹는지
어떤 공간에서 지내는지
어떤 문화제도와 복지혜택이 있는지
채용공고
어떤 채용공고가 있는지
채용 프로세스는 어떤지
위 처럼 잠재 지원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요소는 거의 비슷할 것이다. 이렇게 필수적인 요소를 채우고 나면 결국 우리가 웨딩북답다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이 핵심이다.
내가 속한 조직 A가 'A 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의 꼭지들은 뭘까. 말로 할 수 없었던 것을 정의해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이 점만 제대로 정의해도 대부분의 내용이 쉽게 채워진다. 기존 하우투메리 홈페이지의 글을 기초로 최근 1년을 경험한 조직문화팀이 업데이트한 '웨딩북다움'은 아래와 같았다.
웨딩북 문화를 생각하면 가장 전면에 나오는 메세지다. 실제로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조직을 만드는 성장동력은 조직문화에서 나온다는 믿음이 시작이며 우리 문화의 제1의 가정이다. 가장 상위 정보로 배치하고 이 같은 창업자 생각이 잘 담긴 폴인 기사를 링크하자.
웨딩북은 업무 외 문화적인 과정도 글로 기록을 남기는 문화가 강하다. 헌법이라는 특유의 포맷 때문이기도 한데, 제도와 개정 프로세스는 기록을 필수로 남기는 것이 우리에겐 익숙하다.
아시다시피 조직문화는 결과물보다 맥락이 훨씬 중요하다. 웨딩북이 문화적인 분기점을 만날 때마다 상돈님이 썼던 글이 우리에겐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교과서 같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는 그렇게 역사를 기록하고 읽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의 역할 중 하나기도 했다. 조직문화의 다양한 결과물과 함께 그 맥락과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이었다. 최근에 썼던 토론면접 디자인, 12월의 코끼리 찾기 회고 글도 그 업무의 일환이다.
우리 문화에 알맞은 구성 방식이 떠올랐다.
왼쪽에는 픽스(fixed)된 결과물, 오른쪽에는 결과물이 태어나기 전 고민했던 과정과 맥락을 기록한 글 배열이 그 구성이다.
웨딩북은 역사적으로 문화제도를 직접 제정하고 개정하는 전사 미팅을 지속해왔다. 규모가 작았을 땐 일주일, 작년 중순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시행 중이다. 실제 지금 있는 대부분의 복지제도나 문화제도는 전사 토론 혹은 전사공유 자리를 통해 생긴 것이다.
즉, 이를 통해 문화는 우리가 직접 만든다는 깊은 믿음이 실제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퀘어, 텐텐포토, 12월의 코끼리 찾기처럼 누가 봐도 웨딩북만의 고민을 담은 '웨딩북표' 문화가 그 증거들이기에 정리해 드러내는 것이 필요했다.
작년 조직진단 서베이 결과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동료들이 우리 회사의 긍정적인 점으로 가장 많이 꼽아준 이유가 같이 일하는 동료라는 것이다. 잠재 지원자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페이지에 이 지점을 놓칠 수가 없었다.
'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좋은지'를 빼곡하게 적어준 주관식 답변이라니. 이건 구성원들의 실제 목소리였기에 그대로 코멘트를 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결국 위 네 가지로 노션 페이지의 가장 큰 꼭지가 만들어졌다.
이 채용&문화 페이지가 생긴 후, 웨딩북 채용공고에는 '웨딩북팀의 모든 것'이라는 링크가 생겼다. 동시에 채용공고의 길이는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글자 수로 계산한다면 3691자 -> 1916자.
1500자 정도를 링크 하나로 정리한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채용공고는 간결하고 핵심만 담을 수 있었다. 다양한 페이지로 빠졌던 여러 링크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며 잠재지원자의 UX는 훨씬 좋아졌을 거라 예상했다.
채용뿐일까. 외부 관계자에게 설명할 때도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줄었다.
과거 정비되지 않은 홈페이지를 임시로 쓰고 있었던 때에는 링크를 던지면서도 왜 하우투메리라는 사이트에 있는지부터 설명해야 할게 많았고, 헌법, 채용공고, 문화제도, 개별 글 등 링크를 다수로 던지고 부가적인 설명을 더해야지만 우리 문화 전반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링크 하나만 던지면 되는 것.
올해 초 우리 팀 채용공고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팀장인 문화엔지니어 혜운님, 새로 조인한 피플매니저 지윤님과 문화에반젤리스트 나는 각자가 리딩 하는 영역이 다르다. 올해 나는 강화/전파 영역을 맡기로 했다.
간단히 말해 우리 조직문화를 내외부로 알리는 일인데, 직접 설정한 올 한 해 역할은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첫 임무로 설정한 일이 이 채용/문화 페이지 프로젝트다. 즉, 조직문화라는 큰 꼭지를 잘 엮은 스토리 하나로 만드는 것이었다.
멋들어진 브랜딩이라고 보고 시작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를 제대로 정립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만드는 이 일이라 문화를 브랜딩하는 첫 시도라는 건 확실했다.
웨딩북 구성원들이 언제든지 '웨딩북답다는 건 이런 것'라는 걸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도구를 공급하고 싶었다. 내가 자랑하고 싶을 만큼 멋진 스토리가 있다는 것은 자부심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했다. 링크를 보낼 때마다 자신감 있게 던지는 동료를 상상하고 기대하며 이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로써 ‘다른 조직의 스토리를 이제는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알릴 거리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동료들에게 꼭 알려드리고 싶었다.
노션 페이지 제목을 다른 스타트업들처럼 '웨딩북 채용'이라고 짓지 않고 '우리는 웨딩북입니다'라고 제목을 붙인 것도 고심한 결과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뭘 하는 사람들인지, 우리가 어떤 고민들을 쌓아가며 성장하고 있는지. '우리'에 대한 정체성을 강화해 자랑하고 싶은 팀 아이덴티티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웨딩북입니다 페이지 드디어 공개!
놀러 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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