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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유투자자문 Feb 18. 2022

버블은 어떻게 전염되는가, 금융위기의 역사 리뷰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어째선지 보이지 않게 된다. 없으면 항상 돈을 생각하지만, 많이 있으면 있는 게 당연해진다. 100만 엔 있으면 그것은 1만 엔 100장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처음부터 있는, 무슨 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은 부모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것을 누린다.

-종이달(가쿠다 미쓰요, 위즈덤하우스, 2014)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많이 하락하자 이런 질문이 부쩍 늘었습니다.

“주가가 너무 많이 빠지는데 지금은 위기가 아닌가요?”

“주식의 비중을 줄이고, 현금비중을 늘리라는 조언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그래도 주가가 많이 내려서 심란한데, 불안한 심리를 더 자극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현상황이 위기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한 가늠자는 과거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습니다. 다만 비슷한 사건을 통해서 과거 일련의 흐름을 공부하면, 현재의 상황 또는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혹은 30년이라 불리는 긴 경기침체의 배경에는 1980년대 거품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워낙 많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이를 조명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현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먼저 버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기순환주기’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인해 일련의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경기 저점에서는 돈의 공급을 늘립니다. 화폐 공급이 수요를 앞서게 되니 금리가 하락하고, 대출을 통해 소비를 촉진시켜 불황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죠. 돈의 힘으로 회복기를 거쳐 호황기에 진입하면, 중앙은행은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합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에 돈의 공급을 줄이는 것입니다. 너무 뜨겁지도, 반대로 너무 차갑지도 않은 2%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성장 가능한 경제를 만듭니다. 금리 조절을 통해 과열되면 식혀주고, 차가우면 다시 뜨겁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늘 인간의 욕심은 뜨거움을 넘어 폭주하는 순간을 만들어 냅니다. 돈을 갈망하는 인간의 뜨거운 욕망은 버블을 만들고, 과한 욕심이 극에 달할 때, 자본주의는 균열을 만듭니다. 경기 정점을 지나 침체기, 후퇴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러면 중앙은행은 다시 서둘러 금리를 인하해 화폐의 공급을 늘립니다. 이런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인터넷 발전에 힘입어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졌습니다. 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면서 과열과 균열의 동조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의 버블이 터지자 이 돈은 당시 각광받던 아시아 국가들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비슷한 버블이 형성되었고, 이게 터지면서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긴 IMF 외환위기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아시아 전역에서 불을 끄는데 정신이 없었던 그때, 과열을 만들었던 이 돈은 미국으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IT 버블을 만들게 됩니다. 주가가 ‘영원히 하락하지 않는 고원에 도달했다.’라는 망언의 역사적 교훈을 잊은 채, 인간의 탐욕은 ‘비이성적 과열’을 합당화 했습니다. 그 참혹한 결과는 이미 익히 아실 것입니다.


1980년 니케이 지수는 약 7,000선이었는데 1989년 약 39,000선까지 5배가 넘는 상승을 했습니다. 이 숫자가 선뜻 와닿지 않는다면 당시 일본의 모습을 ‘종이달’이란 소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래 없는 호황기라 일자리가 넘쳐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 주식 가격이 오르자, 대학생들은 구직보다 주식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해서 전업투자를 꿈꿉니다. 무섭게 오르는 자산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아 투자를 늘리고, 확정되지 않은 이익을 미리 끌어다가 사치품에 대한 소비를 늘립니다. 과도한 버블은 어떤 부작용을 만드는지 당시 시대상을 책 속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버블이 터지자 이 돈의 일부가 우리 시장으로 들어와서 다른 거품을 만들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코스피지수는 1992년 456선을 저점으로 1994년 다시 1,000선을 돌파했습니다.

미국은 나스닥을 중심으로 해서 버블이 만들어졌습니다. 뒤에 나스닥 지수가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우를 담았습니다. 각국 지수를 비교하면서 살펴봐야 할 중요한 부분은 니케이가 하락을 시작할 때,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지수가 올랐음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버블이 꺼지자 미국 지수가 더 가파르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본에 국경이 없어지면서 1980년대 처음으로 버블의 전염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미국이 헛기침을 하면 우리나라는 독감에 걸리고, 중국이 감기에 걸리면 우리는 앓아눕는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 세계 경제는 더 밀접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1980년대에서 2000년대의 경제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의 버블이 얼마나 거대한 수준이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985년 당시 GDP를 비교해 보면 미국이 일본의 약 3배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1인당 GDP는 일본이 미국의 약 6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미국 주식의 전체 시가총액이 일본보다 커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미국 대비 약 2배가 컸습니다. 또한 일본의 1인당 토지 시장가치가 미국보다 약 4배가 높았습니다. 1980년대 생성되었던 일본의 버블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본의 황궁 부지가 면적이 수십억 배가 더 큰 캘리포니아 전체 부동산 가치보다 높았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 최대 투자은행 노무라 자본금이 미국 5대 투자은행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하네요.


일본의 부동산 인덱스를 보면 대도시는 1990년에 1980년 대비 약 5배가량 상승했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으니 쉽게 예를 들어 보자면, 10년간 부산의 아파트가 5억 원에서 20억 원이 되고, 강남의 아파트가 10억 원에서 60억 원이 된 수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호가가 수천만 원씩 뛰고, 이게 10년간 이어졌다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한가요? 그러나 너무 과하게 돈이란 모르핀을 처방하면 따라오는 부작용이 심각해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어쨌든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회사가 주식,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 가치가 크게 오르게 됩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게 됩니다. 기업의 이익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주가 또한 상승합니다. 주가가 오르면 기업은 자회사 등을 신규로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수월해집니다. 당시에 2% 금리의 전환사채 발행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전환사채는 2%의 이자를 줄 테니 돈을 빌려주기 원하는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인데, 주가가 일정 가격 이상이 되면 주식으로 전환할 권리가 붙은 채권입니다.

게다가 보유자산의 가격이 올라 담보가치 또한 상승하게 되니 기업들의 자본조달 비용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보통은 돈이 있어도 추가적인 대출로 자금을 더 융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출이 늘어나는 것이죠.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기업은 신규투자를 늘리게 됩니다.


은행 또한 소유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오릅니다. 은행의 이익이 증가하면 자본이 증가하면서 대출을 더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죠.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담보가치가 증가한 기업과 국민들을 상대로 대출을 더 늘릴 수 있게 됩니다. 이로 인해 소비가 크게 증가하고, 기업은 이익이 늘어나며, 은행은 대출할 수 있는 여력이 더 커집니다. 경제의 선순환이란 사이클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모두가 이 행복은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당시에 그들은 세계 1위 경제대국에 올라서는 일은 시간문제라고 자평할 정도였습니다.



과도한 버블의 부작용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노동, 생산으로 얻는 수익률보다 투자된 자본에서 얻는 수익률이 훨씬 높습니다. 개인은 일을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고, 기업은 투자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힘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차입을 늘려 땅을 사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토지를 매입하고, 이 담보를 지렛대 삼아 대출을 늘려 추가적으로 부동산을 사는 일에 골몰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일본 정부가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통화공급을 크게 늘렸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일본 사이의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엔화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엔화 가치의 상승으로 인해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합니다. 엔화 가치의 상승은 엔화를 달러로 바꾸는 수요보다 달러를 엔화로 바꾸려는 수요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자산시장이 강세를 보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행은 엔고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이 오히려 본원통화 공급을 늘리는 꼴이 되었습니다. 결국 엔고도 방어하지 못하면서, 불이 난 곳에 기름을 붓는 정책적 미스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임대수익의 상승을 압도하면서 임대수익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럴 때, 임대료로 대출 이자 상쇄가 안 된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다만 부동산 가격 상승이 워낙 가파르다 보니 이러한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게다가 담보가치가 계속 상승하기 때문에 추가 대출로 차입금 이자를 상쇄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면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에서는 이미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행복에 취해 그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죠.
 


과도한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인해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살 수 없고, 해도 해도 너무한 임대료 부담에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일본은행 총재는 대출규제 정책을 발표합니다. 부동산 대출 증가를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습니다. 대출 이자를 임대료로 상쇄하지 못해서 신규대출로 버티던 주체들은 감당할 수 없는 유지비용에 투매자로 변신하게 됩니다.

평화롭게 영화를 감상하던 극장 안은 갑작스러운 화재경보기 소리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실제로 화재가 나지 않았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심리에 동조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먼저 빠져나가기 위해 서로를 밀치고, 밟는 지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늘 그렇지만 투매는 투매를 부르면서 버블은 일순간 폭발하게 됩니다.


자산 가격의 거품 붕괴가 시작되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이익이 크게 줄어들고, IPO, 회사채 시장에는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기업들은 새로운 자금을 조달하는데 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되고, 이는 설비투자의 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호황기에 야심 차게 늘린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이익의 감소로 인해 인력을 대거 해고해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중복 과잉 투자된 설비나 자산을 매각하고 싶어도 팔리지 않아 과도한 이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망하는 기업도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이 크게 증가하면서, 소비의 둔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보통 이런 시기에 자본주의의 균열이 일어나는데 중앙은행은 서둘러 금리를 인하합니다. 은행은 예대마진이 줄게 되고 이로 인해 이익이 하락하거나 심지어는 적자가 발생합니다. 이는 자본금이 하락하는 결과를 불러오고 대출의 여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또한 불황의 시기인만큼 깐깐하게 대출자를 심사하는 탓도 있고, 담보로 잡아 놓은 자산 가격 하락으로 손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대출이 줄어들면서 소비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됩니다. 환율 또한 약세를 보이면서 외국인 자본이탈이 가속화됩니다.


너무 과도하게 커져버린 버블이 터지면서 주식시장에 패닉을 불러왔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격언 그대로 1990년 30프로가 하락하고, 그 이듬해 다시 30%가 하락했습니다. 2003년 경제규모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지만, 지수는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여파는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세계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골치가 아픈데 이 와중에도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너무 과도한 버블이 만들어진 부작용은 30년째 물가가 오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KVuqI5m5iOo


스크롤 압박으로 인해 브런치에는 일부 글만 담았습니다. 투자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1980년대에서 2000년대 경제사를 제대로 이해하면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본, 아시아, 미국으로 이어지는 버블의 전염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채널에 방문해서 나머지를 시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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