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것 하나는 내가 경험해온 것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담을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점이다. 물론 나이 먹을수록 옹졸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그렇지 않은 나에게 스스로 감사할 따름이다.
얼마 전 SNS를 하다가 얼마 전에 대학 합격 소식을 알려온 한 학생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온라인으로 졸업식을 했고 그 졸업장을 이제야 받았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 내가 있는 곳은 해외 입시를 준비하는 곳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학기, 학제가 다르다 - 우리 학원에서 매년 여름 10주를 통째로 바쳐가며 2년을 공부했던 그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을 했고 장학금까지 받았는데 너무 기특해서 축하한다고 이제 인생 시작이라고, 마음껏 즐기고,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한 2~3여 분이 흘렀을까 답장이 왔는데 시작부터 죄송하다는 얘기로 구구절절 죄송한 이유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그동안 내가 많은 힘이 되어줬고, 좋은 학교에 입학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당장 다음 주가 출국이라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이 아이를 오래 봐온 터라 글을 쓰는 내내 학생이 얼마나 죄송해했을지 그리고 그 글 속에서 학생이 미안해하며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서운하지 않았다. 친구가 아닌 학생이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세상을 다 갖은것 같았을 것이다. 그냥 미국에 있는 대학을 간 것이 아니라 랭킹 Top 50위권 안에 이름 대면 다 아는 학교에 입학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학기 중에는 악기도 해야 했고, 운동도 했고 내신성적까지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는데 방학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10주나 되는 여름방학을 탈탈 털어 학원에 바쳤다. 아침 9시부터 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천안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야 했고, 18시에 정규 수업이 끝나면 AP 과목과 Subject 과목을 듣느라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학원에서 나갈 수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09:00 - 22:00까지 학원에 있는 것도 힘들어 죽을 지경일 텐데 주말이 되면 Essay 특강에 부족한 공부를 하러 학원에 또 나와야 했다. 이런 생활을 2년을 반복했으니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얼마나 못 했던 것들이 하고 싶었을지 이해가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싶을 것이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도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들이 축하한다고 각지에서 불러 댈 것이며, 그러다 보면 자신의 시간이 갖고 도 싶고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고 하루가 24시간으로 부족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나의 이해심이 태평양을 넘는 오지랖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슷하게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나 또한 대학에 합격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학생이 올해 초에 합격 소식을 전해올 때 내가 격하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었고, 메시지를 받고 바로 당장이라도 학원으로 얼굴을 보러 올 것처럼 메시지를 보낸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중간중간 연락을 취할 때마다 '꼭 한번 맛있는 거 사 가지고 놀러 가겠다'라는 말을 열두 번은 한 것 같은데 말이다. - 내 인생의 한 컷 중 -
하지만 서운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전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바쁘게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놀아도 시간이 모자란 것 같은 그때 나도 바로 근처에 있는 것들만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는 생각에 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렇게 내가 안부 인사하고 축하 메시지를 전할 때면 그래도 잊지 않고 네가 꼬박 답장을 보내잖아. 나는 오히려 그게 더 고맙단다. 살다 보면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란다. 시간이나 지 않는 것이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없고, 싫어서 빈말을 하는 게 절대 아닐 것이란 것을 알아^^ 그러니 걱정 말고 출국 준비 잘해서 또 다른 새 출발을 해야지"라고 말이다.
10분 정도 지나자 답장이 왔다. 답장의 내용은 어쩜 이렇게 이해심이 넓으냐 선생님이 오해할 줄 알았다. 너무 찾아뵙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항상 친구들이랑 헤어져서 집에 가는 늦은 시간에 꼭 학원에 들를 걸 하고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귀여워서 그냥 웃음이 지어졌다. 어린 학생이어서 가 아니다. 만일 미국에서 잠시 귀국해서 친정에 있다간 내 친구였어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서운한 게 아니라 이해한다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말이다.
"나도 너 때는 그랬던 것 같아.
하고 싶은 거 놀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걸 그렇게 그 당시같이 있는 친구들이랑 하고 싶었단 말이지. 나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했어. 잊어버릴 수 있어^^ 당연한 거야. 네가 그동안 알고 지내온 모든 사람들을 다 챙길 수는 없잖아. 이해하니 걱정 마"라고 토닥토닥 답변해 줬다. - 내 인생의 한 컷 중-
이해하면 쉬워지는 것들이 세상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감사하게도 오지랖은 점점 더 태평양보다 넓어져서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게 또 이해가 된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마음 넉넉하고 잘 늙어가는 좋은 어른'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겠지만 오늘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부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보는 게 어떨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