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믿는 힘...

내가 나를 믿을 때 비로소 힘이 생긴다.

by HEllENA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를 두 개나 쓰고 다닌 지 벌써 9개월이 되었고, 손세정제는 보이는 족족 구매하고, 소독액까지 사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온데 만데 집에 들여온 물건에는 알코올로 샤워를 시키는 셀프 방역을 어마하게 하는 것이 이제는 퇴근 후 집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되었다. 대부분의 회사가 재택근무에 돌입한다고 떠들썩 한 지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단축 근무는커녕 빡세게 일하고 있는 1인으로 점점 더 무섭게 늘어나는 확진자 속에서 손소독제를 옆에 달고 사는 것과, 행사 때 사람들을 만날 때면 필수적으로 라텍스 장갑을 끼고, 발열체크(체온계)를 아예 소지하고 다니는 것 만이, 내가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셀프 방역을 '유난을 떤다'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라는 핀잔을 들어가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지 9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뉴스와, 문 손잡이를 잡았는데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라는 뉴스를 듣게 되면 갑자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고, 머리가 아픈 것 같고, 속이 울렁거린다. 더불어 조금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으면 '혹시 나도 코로나인가....'라는 무서운 상상을 해보게 된다. 정말 철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고, 집 --> 회사 --> 집 --> 회사를 반복한 지 9개월째 인데도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셀프 방역은 누가 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 이렇게 해야 코로나에서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인데 이렇게 유난을 떤다는 핀잔 속에서도 '이렇게 해야 안 걸려!!'라고 자신하던 나 스스로의 믿음에 균열이 생기는 시간이다. 내가 혹시 뭔가 코로나에게 틈을 보인 건 아닌가? 하고 나 스스로 의심을 하게 된다. - 내 인생 내 생각 중 -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려는 때는 10년도 더 전이다.

예전에도 한 번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던 때인데, 정말 많이 아팠었던 시간이 있었다. 몸도 아팠지만 정신적으로도 많이 아팠었어서 하던 모든 일을 다 접고 2년 정도를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어서 무언가를 할 수가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이때가 내 인생을 바꿔놓은 어마 무시한 인생의 한 획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주 글감으로 등장할 것이고, 나중에 심도 있게 이때를 감사함으로 회상하고 싶기도 하다. 여하튼 그때 너무 정신적으로, 마음적으로 힘들었어서 별걸 다해봤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고 그때만 해도 열심히 주일 미사를 드리며, 큰 행사에도 참가하는 그런 열혈 신자였는데 많이 힘들고 아프고 하다 보니 나 역시 인간인지라 붙잡고 호소할 곳을 찾게 되었다. 내가 믿는 신이었다. 매일 기도하고 묵주를 몸에 분신처럼 지니고 다녔고, 코로나인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성당을 다니며 울고 기도하기를 반복했었다. 그런데 한 달을 그렇게 울면서 기도해도 별 차도가 없었다.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성당에 가서 울며 기도하며 내 잘못을 얘기하고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때마다 더 울화가 치밀었고, 남 탓도 하게 되었다. 마치 지금처럼 매일 울면서 기도를 하지 않은 날들이 덜 간절해 보였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벌을 받는 거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한 달을 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해보자는 마음에 두 달, 석 달을 그렇게 매일같이 기도하고, 성경챙을 보고, 미사를 드렸지만 왠지 더 강한 억울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다른 신을 하나 더 추가해서 기도했다. 부처님이었다. 왠지 신을 하나 더 믿고 기도하면 경쟁해서라도 들어줄 것 같았다. - 내 인생 내 생각 중 -


이렇게 말하면 이상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집은 종교의 자유를 존중한다.

'사이비'만 아니면 자신이 믿기에 편한, 자신에게 조금 더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는 신을 믿는 것이 맞다는 논리인데 이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조부모님 때부터의 우리 집 종교력(?)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권사님까지 지내신 기독교인 외가와 공양드린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강남에 40평대 아파트가 두 채는 될 거라는 불교신자인 친가 사이에서 나의 부모님은 무교이지만 굳이 무언가를 선택한다면 마음이 편해지고 말씀이 좋게 느껴지는 불교를 택하셨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는 주말에 친할머니를 따라 불교학교에 다녔고,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단체 생활과 협동심(?)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교회 캠프라고 생각하셨는지 6년 내내 교회를 보내셨다.

중학생이 되고 뭔가 이게 좋다 저게 좋다를 정확히 구별하고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가 되니 눈에 다른 게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세상 예쁜 미사포와 묵주였다. 마치 공주가 된 것처럼 만들어주는 미사포는 나에게 뭔가 안식을 주는 느낌이었고, 그에 끌려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세례를 받고, 고등부 회장을 하고 대학교 때는 정신지체아들 교리와 미사를 도와주는 봉사까지 할 정도로 열심히 하며 견진까지 받았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영어 이름 '헬렌'도 나의 세례명 '헬레나'에서 따온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내가 믿는 신에게 석 달 열흘을 울며 기도하고, 매일같이 하루에도 두 번씩 성당을 찾아가 밤낮으로 기도를 드림에도 응답이 없자 나는 다른 신을 하나 더 찾았다. 부처님이었다. 왠지 하나보다는 나을 것 같았고 경쟁이라도 하듯 누구라도 먼저 내 기도를 들어줬음 하고 바랬다. 하지만 백팔배도 해보고 절에도 찾아가 보고 외쳐봤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두 분의 신에게 기도를 하는데 전과는 조금의 변화도 없는 것이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화를 내면 안 되는 것 같았다.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삶(?)을 지내기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나자 온 데만데 신을 다 찾게 되었다. 삼신할머니 까지 찾아가며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오만가지 신을 다 찾아보고 믿어보다가 급기야 점까지 보러 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어처구니없다고 웃으면서 그때 일을 회상할 수 있지만, 그때 당시 나는 심각했었다. 나의 미래가 불안했고, 누군가라도 붙잡고 물어봐서 이렇다 할 대답을 들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신점을 보러 다닐 용기는 없었어서 용하다고 하는 곳은 다 찾아다니면서 사주풀이를 했는데 나중에 정신 차리고 세어보니 신기하게도 딱 12군데를 다녀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기저기 찾아보고 찾아보고 심사숙고해서 용하다는 곳을 다닌지라 오랜 시간이 지나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12군데의 사주풀이는 쉽게 표현해서 좋다 vs 나쁘다의 결과가 딱 50대 50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신을 다 찾아봤지만 결과적으로는 노력하지 않고 바라기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이때 내가 나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미친 사람처럼 기도만 하고, 점만 보러 다닌 것은 아니었다. 책을 제일 많이 읽었고, 나 스스로 내 병을 고쳐 보려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많이 노력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정작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내 인생 내 생각 중 -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내가 나 자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면서 누군가한테 내가 괜찮아 지길 바란다는 게 욕심같이 느껴졌다. 내가 나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뭔가 시도해보지 않았고, 기도의 내용도 "내가 괜찮아지게 해 주세요. 내가 괜찮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안 다치게 해 주세요"였다. 내가 아프지 않을 것이고, 내가 나를 단단하게 잘 보호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힘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다.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신은 없어. 다 필요 없어. 신 따위는 없어"라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믿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부터 나는 나에게 말하는 것을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잘할 수 있어. 일단 해보자. 괜찮아. 잘했어" 이런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했고 무언가 고민을 할 때에도 "내가 이거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이걸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라고 내가 할 수 있는지 내가 나에 대한 믿음에 확신을 질문하고 확신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믿는 일이 더 많아졌고, 그렇게 자신에게 스스로 믿음을 더할 때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도 나의 믿음을 흔쾌히 함께 해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나를 믿고 움직여야 남들도 진정한 확신으로 설득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나 자신을 믿는 연습을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의 병 그리고 정신적인 힘듬이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 내 인생의 한컷 중-


오늘도 2시간 터울로 4개의 미팅이 있고, 열댓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역시나 나는 부드럽게 방역을 진행하고 권유하며 서로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역시나 오늘도 때로는 핀잔이 날아들지만 나는 아량곳 하지 않고 손세정제를 권유하고, 마스크 제대로 착용하는 법을 알린다. 나 하나라도 이렇게 꼼꼼히 해야 나도 안 걸리고 남도 안 걸린다는 나만의 방역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 대한 확신은 올여름 300명이 넘는 학생들과 함께 했던 13주의 시간 동안 단 한 명도 코로나 감염 증상조차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하루에 6번씩 강의실 15개를 돌며 환기를 시키고 직접 소독을 했으며, 모든 직원을 비롯해서 학생들, 강사들까지도 마스크는 학원에 있는 동안은 필수 착용이었다. 학생들이 혹시라도 답답해서 마스크를 벗을까 봐 수업시간 내내 창문 밖에서 전 강의실을 돌며 확인했고, 조금이라도 불온전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학생들은 바로바로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게 지도했다. 쉬는 시간에 1M 거리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50분마다 학원 홀 중앙에 서서 학생들한테 팔짱을 끼지 못하게 떨어져 다니라고 잔소리했고, 사비로 마스크를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며 마스크 끈이 떨어진 애들에게 주었다. 관리자가 직접 하루에 6번씩 100평이 넘는 강의실 공간을 직접 한다고 직원들 시키라는 핀잔도 들었지만, 내손으로 내가 직접 해야 소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그 억지 같은 믿음으로 정말이지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13주 약 90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던 결과이다.


그렇게 오늘도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나 스스로 잘할 수 있고,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든 일에 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 대한 믿음으로 잘 해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해야 후회 없이 책임도 내가 질 수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우선 믿고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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