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 수명이 조금 더 늘어났다고 하니 그걸 바탕으로 하면 대략 반쯤 살아온 거 같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것 하나는 "죽기 전에 내가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쪽팔리는 것 없이 살아왔길 바란다"라는 신념 하나로 모든 일에 임하고 있다. 살면서 순간순간 뒤돌아 보게 되는 일이 생길 때, 다시 생각해 봐도 진짜 그때 잘했어, 멋졌어, 다시 난 또 그렇게 할 거야 라고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때도 있지만, 정말이지 어떤 일들은 생각하는 순간 몸서리 쳐질 정도로 진짜 너무 끔찍하게 창피하고 없는 쥐구멍도 만들어서 땅으로 사라지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차츰차츰 그런 후에 생길 실수들을 줄이기 위해서 항상 심사숙고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생각이 너~어무 많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그래도 나름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살아왔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에 한몫을 하는 것은 내 직업 때문 이기도 하다. 나는 교육업에 종사하고 있고,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며 1차 적으로 고객 접점에 있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나는 7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을 제외하고는 초, 중, 고, 성인,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가르쳐 봤고, 그 덕분에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가 내 또래 아니 보통 사람들 보다는 2~3배 정도 더 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족은 직업으로 대면하는 사람들과는 또 다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직업군의 특성상 그리고 연령대에 따라 접하는 컴플레인이나 니즈도 다르고 대응해야 하는 방법 역시 다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보통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의 10배 정도는 빠르게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고 습득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시기마다 매번 덜한 것도 없고 더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느끼는 것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시점이 있었다. 그때가 아마도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기 1년 즈음 전이었던 것 같다.
키가 178cm 셨던 나의 할아버지는 여든넷이 넘으셨어도 동네 뒷산 정도는 거뜬히 1~2시간씩 오르고 내리셨고, 내가 할아버지 무릎에서 어리광을 피우던 아주 꼬마 아기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도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테니스를 치셨다. 그러던 할아버지께서 언젠가부터 숨을 가쁘게 몰아쉬실 때가 있었고, 자꾸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으신다고 말씀을 하시다 말곤 했다. 그렇게 우린 딱히 편찮은 데가 없으시다고 말씀하시던 것을 믿고 있다가 추운 겨울 어느 날 새벽 2시 할아버지가 얇은 운동복을 입으신 채 동네 경찰서에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낮에는 괜찮으시다가 저녁에 졸음이 몰려올 때가 되면 기억이 사라지곤 했지만 머지않아 모든 사물에 대한 기억력을 잊어가기 시작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할아버지는 6남매의 큰 아들인 아빠는 끝까지 기억하셨고, 14살까지 옆에 끼고 주무셨을 정도로 애지중지하게 키워주신 6남매 중 장남의 큰딸인 나도 기억에서 놓지 않으셨다.
그 당시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하고 있었던 시기라 남는 게 시간이었고 직장을 다니시는 엄마 아빠 대신에 나는 할아버지를 종종 돌보기 시작했다. 어릴 적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고 데리고 다니시며 돌봐주시고 놀아주셨던 그 감사함을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내가 스물아홉의 일이었다. - 내 인생의 한 컷 중-
상주하시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에 가시는 날이면 할아버지 댁에 들러서 점심을 차려드리고 반찬을 수저에 올려드렸고, 말동무를 해드렸다. 어느 날은 리모컨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전화를 하셨길래 단숨에 달려갔더니 세상에 1층에서도 티브이 소리가 들릴 정도로 볼륨을 올려놓으셨어서 리모컨 작동법을 그림으로 그려서 벽에 붙여 드리기도 했다. 그 마저도 처음엔 기억하셨다가 그걸 보시 도고 기억하지 못해서 여러 번 색깔을 바꿔서 그려드리거나 다른 방법을 써서 리모컨 작동법을 알려드렸다. 핸드폰을 사드렸지만 충전기에 충전을 해야 하는 것을 이해를 못하셨고, 한번 방전이 돼서 핸드폰이 장난감이 돼버린 순간은 또 선명하게 기억하셔서 그 뒤로는 충전기에서 핸드폰을 단 한 번도 분리하신 적이 없었다. - 그 와중에도 1번은 항상 큰아들 번호라는 것은 끝까지 기억에서 놓지 않으셨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치매"라는 첫 경험을 하게 되는 사이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동안 많이 편찮으셨던 할머니는 더 편찮아지셨고, 말수가 줄어드셨다. 그렇게 5년이 지나 할머니도 치매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치매를 경험하는 우리 가족의 태도는 달랐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을 땐 우리 모두 당황했었고 인정할 수 없었고 전부 바빴다. 혼란스러웠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겪으면서 경험한 것들이 있었다. 가족 치매 환자에 대한 이해 그리고 대응법 같은 것이다. - 내 인생의 한 컷 중-
할아버지가 치매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누구도 첫 경험이라 같은 질문을 매번 마치 처음 묻는 것처럼 자꾸 반복해서 묻는 것에 한계치가 적었다. 그래서 아빠는 때론 화를 냈고, 속상해하셨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수없이 말하는 일상들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계시는데 어떻게 다시 기억하게 해야 하는지를 우리 어느 누구도 몰랐다. 바쁜 시간들을 시간대로 흘러갔고 모두 함께 힘을 합해서 할아버지를 보살폈지만 어설펐던 거 같다.
하지만 할머니 때는 달랐다. 말씨가 한층 부드러워졌고, 질문을 하시고 잊어버리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다시 물어보시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우린 그에 대해 언제든 웃으며 우리 역시 처음 대답하는 것처럼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할머니의 처녀시절 얘기를 들을 수 있음에 즐거웠고 희한하게도 오랜 기억은 기억하시는 할머니의 기억력을 가족 모두가 감탄해하며 즐거운 추억 회상의 시간들을 보냈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할머니를 위해 모이는 횟수가 늘어났고, 도우미 아주머님께 더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고, 우리가 미리 챙겨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스킬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한 시기들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처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본다. 할머니가 편찮으실 때 할아버지께 다 하지 못했던 것 까지 정성기 울이던 모습에서 그리고 조금 더 어린 내 나이 때에 이해되지 않던 내 엄마 아빠의 모습이 부모를 대하는 나의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어떤 마음일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워간다. - 내 인생 내 생각 중 -
너무 돌고 돌아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일 우리 가족 중에 또 누군가가 치매를 겪게 된다면 그 예전에 보다는 더 현명하게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이겨 나갈 것이다. 그런데 삶도 이렇게 똑같은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들은 두 번 닥쳤을 때 조금씩 더 잘 대처했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처음 겪는 일들은 여전히 낯선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딱 지금이 그런 것 같다. 어느 정도 살아와서 인생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일은 누워서도 눈감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정작 부딪혀 보면 난감한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나보다 연배가 어린 친구들이 낑낑대며 절절 거리는 일인데 나한테 까지 올라와서 내가 해결하게 되면 그들이 보지 못한 엄청난 경험담과 화술로 정말이지 언제 그렇게 강성 컴플레인 이었는가 느껴질 정도로 별거 아닌 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오며 경험해 본 것보다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새롭고 경험해보지 못할 일들이 상상을 초월하게 닥쳐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 마치 지금 초유의 사태인 코로나를 대면하는 마음 같을 것이다 - 아우 아직 덜 살았구나 싶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다 겪을 법한 이야기들인데 나 혼자만 유난히 가족 얘기까지 끄집어내면서 호들갑을 떨며 인생을 배우고 있는 거다 라고 떠들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을 살면서 내가 경험해야 하는 몇 안 되는 사회 속에서 - 학교생활이라는 사회, 직장 생활이라는 사회, 동기모임이라는 사회,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하는 가족이라는 테두리의 또 다른 사회 - 그래도 가장 나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장 의미 있고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지키고 싶은 사랑 테두리 속에서 적절하게 잘, 현명하게 살아내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내 부모님께 감사하다. 1대에게 2대가 하는 것을 잘 보고 자랐고, 그 시행착오 속에서 3대였던 나도 조만간 자식을 낳게 되면서 3대를 기준으로 나는 어느덧 부모님의 자리에 가게 될 것이다.
내 자식들에게도 내가 느꼈던 좋은 경험들을 보여주고 싶다. -내 인생의 내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