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는 또 하나의 계절이 생기다.

코로나에 이어 태풍을 맞이하는 자세..

by HEllENA

 지긋지긋하게 비가 아니 폭우가 쏟아졌고, 지역에 따라 건물 2층까지도 물이차서 차위에 동동 떠다니다 구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심 한 복판에서, 물에 잠긴 2차 3차선 도로 위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구조할 사람들을 애타게 찾아 나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태풍 "바비"가 아주 그냥 한반도를 난도질을 해 놓고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이삭"이라는 녀석이 또 북상 중이라고 한다. 피해가 가시기도 전에 다시 불나는데 기름을 끼 얻는 셈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 답답하고 숨쉬기 힘든 상황이지만, 이제는 마치 외투를 입고 나가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렇듯 뭐든 오래 하다 보면 불편하고 불만이 가득하던 것도 자연스러워지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제는 장마라는 우기라는 계절이 생겨난 기분이다. 마스크도 마치 속옷처럼 꼭 착용해야 하는 필수품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나의 예민함도 이렇게 어느새 나이가 먹어가면서 나한테 스미고 있다.

-내 인생 내 생각 중-


나는 정말이지 나노(Nano Sencer)로 태어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위로 3대, 4대 위에 조상님들 중에서도 이렇게 까지 예민하신 분들이 계셨을까 싶을 정도고 유난도 참 유난이라 나는 누굴 닮았나 까지도 의아할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다.


 비가 오기 전이면 비릿한 비 냄새를 맡고, 방음이 엄청 잘 되어 있는 구조물에 살면서도 윗집에서 새벽 4시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매일 잠에서 깬다. 세계적인 5성급 호텔에서도 옆 방 투숙객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2중 창문에 베란다를 두고 있는 곳에서도 윗집 혹은 아랫집에서의 담배냄새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살짝 부딪혀도 멍이 퍼렇게 들기는 일상이고, 치과에 가서도 남들은 마취 한 번에 1~2시간도 버틴다고 하는데, 나는 30분 신경치료를 위해서 마취를 5분 간격으로 해야 할 정도이다. 이뿐인가?? 치료하는 내내 통증은 없지만 어딜 어떻게 지르고 바늘이 들어갔는지, 솜을 넣는지 긁는지, 건드리는지 모든 감각들이 마치 소름 돋은 털들처럼 바짝 곤두서서 아주 하나하나 느끼는 것이다. - 치과에서 충치치료를 하고 이빨 하나를 씌웠는데,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균형과 이물감을 느껴서 담당 원장님을 놀라게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아무튼 이렇게 나의 예민함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을 때가 다행히도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함 할 만한 불면증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기 이기도 하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게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놀이터에서 놀다가 마주치면 마치 오랜 친구가 될 수 있고,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모래 속의 두꺼비집을 잘못 건드려 허물면 금세 적이되기도 하는 호기심 만발에, 그날 만난 누군가는 나이 상관없이 위아 더 월드가 될 수 있던 시기에 알게 되었으니 내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왕따를 당할 일도, 예민하다고 특이하게 분류될 일도 없었던 것이다.


 영특(?)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일찍 알게 된 덕분에 어린 나이였지만 현명하게도 세상의 눈이 무섭다는 것을 미리 느꼈던 것인지 남들과 같아지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냄새가 나도 안나는 척, 새벽에 잠을 깨고 설쳐도 괜찮은 척, 잠을 24시간 중에 22시간을 말똥말똥하게 있어도 힘들지 않은 척, 그냥 이 모든 게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니 주변에서 나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나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법을 말이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나는 무척 평범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처음에는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매일 새벽 울면서 깨어나 엄마 아빠는 들리지 않는 알람 소리를 들린다고 울며불며 난리를 쳤었고, 치과에 가는 날이면 집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고 진땀을 빼기 일수였고, 가방에는 이 예민함을 차단할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도구라고 표현한 이유는 거의 장비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 지금도 사실 익숙하다고 익숙한 것은 아니다. 매번 나를 괴롭히고, 나이가 먹을수록 늘어나는 나이만 큼 예민함의 가짓수도 예민함을 느끼는 세포들의 개수도 늘어나는지 더욱더 예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제 그마저도 같이 늘어나는 세월의 연륜과 내가 나를 감당하던 세월만큼 많이 무뎌진 듯하다.


여하튼 나의 단점을 너무 길게 나열한 것 같지만, 올해 코로나를 견디면서, 또 다른 기상천외한 천재지변을 경험하면서 불쾌지수와 불만이 높아져가는 지금 어쩌면 우리가 불평을 하고 힘들어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주제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 내 인생 내 생각 중-


 동남아시아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우기임을 인지하고 준비하고 간다. 정작 여행지에 가서도 폭우가 쏟아지거나 땡볕에 습한 기운이 아주 미친 듯이 주변을 에워쌓더라도 그러려니 한다. 여행을 하는 내내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 비에 옷이 젖어서 어딘가를 들어갈 때마다 물기를 짜 내는 것도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물론 태어나서 내 의지대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고, 생각과 불평불만을 느끼고 토로하고 바꿔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죽을 때 가지 살게 될 "내 나라"와 잠시 휴식을 취하러 가는 여행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나라의 계절이 변화하고, 변화의 수준을 넘어서 재해를 맞이한 사람들이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 살고 있으니 이제는 조금 받아들이면 조금은 서로 어떤 작은 것 들은 이해가 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회사는 사람을 응대해야 하는 직군이라 복장에 규정이 있다. 알바도 출근할 때 운동복과 쪼리, 샌들은 착용이 불가하니 당연히 정직원들은 최소한의 규정이 세미 정장이다. 그런데 오늘 이 폭우를 뚫고 직원 하나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 게 아닌가.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바지와 회사에서 신을 신발을 가방에 고이 짊어지고 말이다. - 내 인생의 한컷 중-


 물론 글을 쓰고 있는 나 조차도 순간순간 올라오는 짜증과, 불쾌지수를 잘 다스리며 도인처럼 지내고 있지는 않다. 불과 2시간 전 만 해도 출근길에 폭우로 홀딱 젖어버린 신발을 투덜거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장마로 인해 모든 일상이 마비 수준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치닫고 있는 요즈음 이것들을 조금 자연스럽게 여긴다면 불쾌지수와 주변에 발생하는 짜증과 불만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선 나부터 잘 실천해봐야지. - 내 인생의 반성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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