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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정 Sep 04. 2023

아빠와 나란히 걸을때

나의 첫봄은 산속의 진달래의 맛으로부터 시작된다. 동네에서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뒤편으로 난 산길을 굽이굽이 들어가면 정병산 입구에 위치한 절 하나가 나오는데, 법당으로 올라가는 오른쪽 길과 등산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왼쪽 길로 나뉘어졌다.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온 가족이 정병산을 등반하던 날이었다. 지금은 가벼운 오르막도 힘들다며 헉헉거리지만 내 키가 140도 안 됐을 정도로 어렸던 그때는 가파른 산을 뛰어오를 정도로 몸이 가벼웠던 기억이 난다. 엄마와 언니는 속도를 늦춰 천천히 오고, 신난 발걸음으로 산을 오르는 나와 묵묵히 같은 속도로 산을 오르는 아빠가 뒤돌아보면 엄마와 언니가 안 보일 정도로 한참을 앞서 있곤 했다.


아빠는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면서 온갖 것들을 경험한 사람이라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팔 한쪽을 옆으로 뻗어 산길에 난 모든 풀을 만지고 향기를 맡으며 걸었다.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앞서가는 아빠를 따라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까마득히 보이지 않는 엄마와 언니를 기다리느라 등산로에 있는 큰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아빠는 익숙하게 풀숲을 헤치고 가더니 진달래 한 송이를 따서 내게 보여줬다.

“이거 아빠 어릴 땐 아주 많이 먹던 거야”

하더니 이내 입안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으셨다. 그리곤 또다시 수풀로 가서 진달래 한송이를 더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먹어봐 정말 맛있어”하는 아빠의 표정엔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좀 전에 예쁜 분홍색을 띠는 진달래를 한입에 쏙 넣고는 정말 맛있게 먹는 걸 내 눈으로 봤던 탓도 있었다. 나는 반신반의 하며 진달래를 입 안에 넣었다. 진달래의 진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금세 혀를 감싸는 떫은맛에 몇 번 씹지도 못하고 뱉어버리고 말았다.


딱 한 번 맛본 진달래의 기억은 강렬하고도 향긋했다. 오랜만에 본가에 들르면 이번 주엔 등산할까 하는 말에 두 딸은 기겁하며 손사래 친다. 최근엔 날씨가 좋아서 동네 산책이나 할까? 하는 아빠를 따라나섰다. 논길을 걷는 아빠는 여전히 팔을 뻗어 풀을 만지고 향기를 맡았다. 또 언젠가 산에서 진달래를 따오던 날처럼, 풀숲으로 불쑥 들어가 산딸기를 따주기도 하셨다. 자연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서, 늘 앞서 걷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 뭉클해지는 동시에 진달래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우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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