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Build-up

고양이 빌딩의 당신

by 스티븐

분명 JH는 내게 컨설팅을 해주는 이해당사자로서 계약관계다. 그는 항상 1:1 면담을 추구했다. 경제적 자립에 비밀엄수, 그리고 독립성을 지켜주려는 성향이 강했다. 나 역시 그의 이런 성향을 선호했다. 헌데 오늘은 이상하다.


‘죽’실 앞. 신발이 세 켤레다.


검은색 바탕에 노란색의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측면엔 직각 문향과 문풍지가 어우러진 대나무 창살의 문. 전형적인 일식집이었다. 방안으로 부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음식점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 안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


중년의 남녀 셋. JH는 방안 긴 테이블의 중앙에 앉아 있었다.

양복의 말끔한 남녀 한 쌍이 나란히, 반대편엔 편리한 캐주얼 스타일의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남자다. 왠지 차림새로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JH는 일어나 내게 정중히 인사했다. 다른 이들의 인사는 간단했다. 방안으로 들어서는 내게 얇은 미소와 목례만. JH와 나 보다는 연배가 꽤 있어 보이는 분들이었다. 중압감이 느껴졌다. 관계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앉자마자 회 덮밥과 약간의 우동, 작은 튀김 세 조각을 곁들인 정식이 나왔다. JH는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라고 했다. 쉴 틈 없이, 바로 JH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 자 배경은 이미 한 차례 설명을 드렸습니다. 오늘 바쁘신 분들 모신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번 투자자이신 하사장님과 김윤호 선생께서 결정해주신다면 이 정도의 수익률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메인 투자자와 에셋의 100% 소유는 김윤호 선생이십니다. 저는 오늘 이 종합 제안 건을 가지고 최근 한 달을 분석했습니다. 30분 동안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하사장.

하사장은 30분 내에 일어서야 한다고 했다. 방안에서의 호칭은 사장이었지만, 내 주거래 은행의 강남2지점 지점장이라 했다. JH는 의외로 좀 더 서두르는 것 같았다. 맥락은 명확했다. 주제는 내 건물 이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내게 JH는 자신이라면 이런 설계를 하겠다며 이들을 모아 제안했다. 결정권자는 나 이되, 그 중 6억이 넘는 30%라는 큰 규모는 건립할 건물, 내 예금자산과 채권을 담보로 한 ‘대출’이었다.


- 아시겠지만 건물 전체를 1인 또는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일반 건축물 중 아파트는 투자 가치로는 하방이죠.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 김윤호 선생님도 4채의 오피스텔 임대를 최근 3년간 집행하시면서 상당한 시장 경험을 하신 상태고요. 저는 운용을 함께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 주 용도가 근린생활·판매·업무·숙박시설과 면접했고 연면적 100㎡ 초과 3000㎡ 이하인 건축물들 거래의 임대수익률이라면···. 임대 이후의 환금성 수익까지 바라볼 수 도 있습니다. 담보 비율로 봤을 때 큰 규모는 아니어서, 대출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식사는 얻어먹었으니 김윤호 선생 필요하시면 여기로 연락주시고, 저희 지점에선 승인 가능합니다.

- 고맙습니다.

- JH께서 보내주신 제안서 한 번 더 살펴보긴 하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JH께서 주신 내용이니. 믿고 집행한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대신 수익이 제대로 나면, 한 턱 쏘실 거라 믿겠습니다.


단호하고 빠른 어투. 조금 겁이 날 정도다. 그리고는 하사장은 바삐 일어났고, JH는 그의 등에 대고 90도로 인사했다. 5년을 넘겨 가까이 지내온 JH와의 계약관계가 약간 희석된 느낌이다. 결국 결정은 내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후로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가 오가며 함께 식사를 하고 별 탈 없이 헤어졌다.


돌아오는 JH의 차안. JH는 나를 태우고 내 오피스텔 앞까지 데려다주며 또 설명을 이어갔다. 오늘 만난 이들이 내가 오피스텔 건물 투자를 하면 도와줄 삼인방이라 했다. 모름지기 건물은 네 개의 면으로 이루어지고, 건물주가 되려면 면당 중심을 잡아주는 네 개의 서로 돕는 기둥이 서야 한다고. 그 한 축은 당연히 투자를 도와주는 자금측면. 대출. 그 중에서도 안정적 자금으로 대출을 해주는 제1~2 은행 금융권. 무엇보다 수수료나 이자율 낮게 큰 금액을 쏴주는 은행. 무엇보다 채무자의 안정적인 주거래 은행일수록 좋다나. 하기금 지점장은 강남 구에서 건물 투자에 대해 상당한 경험자라 소개해주었다고 했다. 다른 두 기둥은 건물 중개사와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줄 건축사다.


황여정.

건물 중개사. 건물 중개사들 중에서도 깔끔한 일처리로 유명하다고. 건물 중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매매의 적기, 지역 유동규모와 상권 분석까지 뛰어난 감각을 자랑한다나. 계약이 성사되면 나서서 해주는 실력가라 했다. 무엇보다 최신 동향에도 눈이 밝아 프롭테크(Property+Technology) 서비스를 잘 활용해 속도감도 빠르단다. 특이한 조언이 마무리로 뒤따랐다. 명품 핸드백 하나를 기억해 두라고. 좋은 물건을 손쉽게 알아봐주는 효율 좋은 수수료를 감안해서. 아니나 다를까 입술엔 검붉은 루즈를 칠했고, 패션 감각은 남달라보였다. 평범한 양장 같지만 옷매무새 마감 하나하나가 옹골진 옷이었다.


김복남.

흔한 청바지에 점퍼 차림이다 보니 평범해 보였다. 왜 세 기둥 중 한 명인가 궁금했다. 인부를 부리는 폭이 넓고, 기세가 좋단다. 건축설계의 힘이 설계사의 코어라면, 인부를 부리는 기세는 집행능력 이라고. 그 집행 능력이 좋아 공간 하나 하나를 신경써가며 제대로 만든다 했다. 사실 황여정의 건축계 불륜남. 이 둘 사이의 관계가 틀어질 염려 없이 좋은 상황이란다. 이런 상황은 좋은 결과를 만든다. 기본 설계와 시공 제안서 내의 가격 외 그 이상 추가 요구는 하지 않되, 수수료를 황여정에게 명품백 하나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했다. 어찌 보면 김복남은 황여정에게 이용당하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헤어져도 그만인 관계라 했다. 일의 분업 범주도 명확해서 결정하고 투자할 건물을 찾아내면 일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했다.


- 그래도 관계가 걱정되는데요.

-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건축불륜’이라 한 게 정말 불륜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업계에선 타이트한 관계란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둘 다 돌씽이라 문제될 관계 아닙니다.

아 네.

- 업계에선 그냥 건축사/인테리어 사무소와 건물 중개인들은 앙숙처럼 싸우는 게 잦아요. 때문에 좋은 관계를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고작 한 번의 연애 경험인 내겐 그저 생경한 표현 이었을 뿐. 불륜이든 말든 필요 없는 시선을 던진 듯 했다. 한 번의 발 빠른 미팅. 차안에서 세부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남은 건 이제 내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 다시 한 번 설명 드리지만, 현재 자산 전체를 쏟아 붓는 것은 반대합니다. 이 정부 상황에선 언제 또 급변할지 몰라요. 다음 정권으로 권력이 이양될 경우 또 다른 방향으로 투자시장이 변화하기도 쉽죠. 어느 정도 공격적 투자 후 안정적 임대를 바탕으로 성장했다면, 이제 그 만큼 지켜야 하는 힘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투자 성향에서 또 한 번 성장 가능한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의 제안을 듣고. 헤어진 후 이틀을 더 고민해보고 정리했다. 한 참을 고민하다 JH가 설명한 이 표현에서 머물렀다.


‘지켜야 하는 힘’


한 번 무너지면 안 되는 40대 나이도 곧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 투자규모에서 일부 거치기간이 긴 대출을 활용하자는 것. 어찌 보면 JH는 내게 현실적이고 안정적 제안을 한 것이다. 투자 설계에 있어서도 믿음이 간다. 중소규모 건물 중개 시장도 주거형 복합 성격의 물건으로 매매가 늘어난 상황. 담보 대출로 자산의 반도 안 되는 규모의 대출만 실행하면 된다.


믿고 맡길 만 한 협업 사업자도 소개 받았다.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임대수익을 운용만 한다면, 이후의 건물 매매를 통해 환금 수익도 얻을 수 있다. 종합적으로 판단컨대 밑져도 본전인 투자다.

JH의 차에서 내리려는데 봉투를 하나 건네어 준다. 봉투 안은 여러 투자 자료로 꽤 묵직하다. 보충자료로 보기에도 너무 배부른 수준. 최근 일주일간 준비한 별첨 자료라 했다. 오늘 소개한 세 명의 도움을 받기도 한 자료. JH는 내 결정에 조금이라도 빈틈없이 밀어붙인다. 이게 JH의 치밀한 힘인가.


오피스텔로 돌아오자마자 미니 냉장고에서 물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로 책상에 앉았다. 자료를 다시 보자. 현장 답사 매각 / 빌딩 사진 자료들이 보인다. 이미 황 여사로부터 전달 받은 자료로 보인다. 건물 사진별 클립으로 묶여진 서류엔 공적 장부라 태깅 되어 있다. 계획표에 등기사항 전부 증명서, 건축물 대장 몇 개, 토지 이용 계획서. 투자 전 계획표와 체크리스트, 지역 선정 사유와 계획일정, 관리비 절감을 위한 가이드와 심지어 임차인 유치를 위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까지. 꼼꼼하다 못해 치열하다. 내가 공부하고 정리했던 것에서 한 차원 더 들어갔다.


이게 JH의 컨설팅이구나.


조금 더 믿음이 쌓인다. 좋다,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이 정도의 준비라면 JH의 의견처럼 일부 에셋만 활용하고 30% 규모는 담보대출을 활용하자. 위험도는 낮고, 나는 같은 건물에 자리 잡아 생활 할 것이니. 직접 관리하면서 이슈를 막고, 더 안전하게 담금질하고 관리 한다면 크게 무리 없다.

절세를 위해서 법인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내가 직접 임차인처럼 들어설 건물이다. 별도 설립까지 해서 대행 에이전트를 세우고 싶진 않다. 직접 관리해서 직접 내 공간을 세우고 그 방향성을 견고하게 다지며 만들어가자. 이 또한 즐거운 일이 될 듯 하다.

JH는 이 제안으로 기존 컨설팅 비용의 5% 인상을 요구했다. 조금 부담되지만 채권과 예금의 이자만으로도 충분이 지불 가능하니까. 결정했다. 더 성장시켜 가자.


결정을 하고 난 뒤의 진행은 JH의 예상처럼 빠르게 진행됐다. 담보대출은 2주 정도 후에 예외 없이 절차를 밟아 실행되었다. 건축물 규모를 선택하고 이야기하니 매입할 지역, 상권 및 유동인구 분석을 병행해서 황여사가 여러 개 제안했던 후보군 중 하나를 택했다. 서울 남서부 디지털 단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구획 모서리의 건물을 선택했다. 연면적 540평 규모의 5층짜리 건물이었고, 용적률도 꽤 나왔고 건축법상 리노베이션에 문제도 없었다. 지반이 약해 15%의 터 잡기 공사비가 더 들어간 것 외엔 큰 무리도 없었다. 마침 주변 용적률 제한도 상향조정 되면서 1층을 더 올릴 수 있다.


이미 있던 건물을 리노베이션 하는 터라 마무리 한 층을 올리는 시점이었다. 새로 짓는 건물이라면 마지막 기둥을 올린다는 상량식이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건물의 이름을 짓고 외부 익스테리어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정해야 했다. 내 소유의 내가 짓는 이름으로 내가 만드는 온전한 나의 건물이다. 내 철학을 담아야 한다. 아니 나를 담아야 한다. 누가 봐도 내 건물이라는 것의 특징적 이유를 담고 싶었다.


꽤 오래된 건물 자리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인근 탄천으로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탄천변과 건물 사이엔 가족 밭농사가 가능하다. 최근에 가꾼 듯이 보이는 이랑이 보인다. 이랑을 철제와 비닐로 덮은 작은 비닐하우스도 하나둘 보인다. 자연과 어우러진 곳처럼 느껴져 더 좋다. 그리고 탄천 변을 함께 걷는 한 쌍의 남녀가 보인다.


그때였다.


문득 내게 잊고자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연씨가 말했던 그 표현. 재미가 없다. 고양이 같다. 갑자기 입 밖으로 ‘피식'. 쓴 웃음이 나왔다. 휴대폰으로 ‘고양이’를 검색 해보니 재미있는 관련 해석들이 있다.


- ‘인생에 고양이를 더하면 그 합은 무한대가 된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 아일랜드 속담

- ‘인생의 시름을 달래주는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음악과 고양이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그렇다. 계속해서 커나가는 건실한 임대사업. 좋은 의미를 담으면서 이상하고 괴팍한 사람은 임차인으로 만나지 않게. 아니 아예 근처에도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지어보자. 그리고 임차인과 내게 인생의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곳이 되어달라는 의미에서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했다. 내 건물의 이름. ‘고양이 빌딩(CAT TOW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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