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빌딩의 당신
대지면적 180평, 연면적 573평, 건축 연도는 25년. 건물 뒤쪽으로는 4차선 도로. 그리고 그 건너 디지털 단지 형성에 맞게 새로 들어선 대형 건물들. 산업의 획을 그리듯 잘 정리된 구획으로 줄지어 섰다. 앞쪽으로는 안양천. 천의 폭도 넓지만 근린 시설의 규모도 크다. 탄천 변엔 걷고, 뛰고, 타며 운동하는 사람들. 탄천 변 넓게 자리 잡은 축구장, 야구장. 그 사이 사이 텃밭 이랑이 올 곧게 줄 지어 섰다. 큰 규모의 이랑은 다시 모여 비닐하우스 한두 동을 이루고. 이렇게 만들어진 텃밭 앞엔 큰 푯말이 섰다. 푯말에는 안양 가족 농장이란 글씨가 예쁜 페인트 꽃 그림과 함께 그려져있다. 건너편엔 독산 동에서 광명 하안 동까지 도로가 평행을 이룬다.
원 건물은 꽤 허름했다. 첫 인상은 철거 후 짓고 싶을 정도. 하지만 25년 된 건물은 건폐율과 안정성에 지장이 없는 한 철거는 쉽지 않다. 황 여사와 김복남 대표의 극구 반대가 앞섰다. 특히 김복남 대표의 반대가 거칠었다. 주변 공장이 허물어지고 새로 들어선 건물들로부터 매일 항의를 어떻게 이겨낼 거냐며. 소음과 분진 항의로 인해 구청에 매일 같이 드나드는 지긋지긋한 경험을 하고 싶냐 며 엄포를 놓았다.
황 여사는 계산이 빨랐다. 철거는 건물을 다시 되팔 환금성에 투입 대비 효율이 낮다했다. 서지도 않은 건물을, 장기적으로 되팔 때 그 만큼의 이득을 얻기 어렵다는 논리. 건물을 보러 온 사람들이 지레짐작으로 비쌀 거라 생각하고 접근하지 않는 다거나, 거래를 망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방법론적으로 임대이율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비용 효율성, 환금성, 건축물의 안정성 등 다양한 반대 이유가 철거를 반대했다.
결국 철거는 포기하고 건물의 기둥과 층간 기본 골격을 이루는 구조물 외의 것들만 교체하는 리노베이션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재건축의 방향을 결정하자 이후 과정은 상당히 빨랐다. 세 번의 건축사 조형물과 프린트를 가지고 옥신각신 하긴 했지만, 크게 영향을 주는 건 별로 없었다. 네모난 건물을 바꿔 세모로 만드는 건 아니니까. 네모는 네모니까.
전체 사업 설계를 제안한 JH는 건물 이름을 트집 잡았다. 너무 순진한 이름이라고. 그래도 그런 표현은 자신이 컨설팅 하는 고객에게 할 소린 아니라 일갈. 컨설턴트로서 솔직한 게 죄냐고 되받아치며 내게 다시 고민해보라 했다. 하지만 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나 스스로의 메타포를 진심으로 담아낸 건물로 만들고 싶었다. 건물명의 영문명 단어 순서를 바꾸어 Tower Cat 라 명명해 주는 정도로 양보했다. 서류상으로는 물건으로 등재 시 생경함 없는 수준이니까. 엄연한 내 건물이다. 양보도 가당치 않다. 어디까지나 오랜 기간 컨설팅 해준 정을 생각해서 한 발 물러서 준거다.
건물의 새 단장 작업에 들어간 지 정확히 3개월 뒤. 최종 작업이 완료되고 입주 1주일 전이었다. JH의 호출. 새 단장을 축하해 주려나 싶은 마음으로 나갔다.
- 지난번 이야기한 명품백 하나 준비해오세요. C브랜드 정도면 괜찮겠어요.
황 여사에게 선물할 시기라는 뜻이다. 불현듯 지금까지 어머니께 지갑 하나 선물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뜨끔했다. 아 이런 게 불효인가. 하지만 정말 효도는 부모님 은퇴 전 자식으로서 자립한 것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을 가지고 별 눈에 띄지도 않는, 가장 평범한 것으로 명품백을 하나 준비하고 약속장소로 갔다.
생각보다 조금 작은 커피숍. 들어서는 순간 그윽한 커피 향과 잔잔한 음악이 들린다. 그래도 활기찬 도심 카페와 달리 전통적 다방처럼 조용한 편이다. 사람들도 소곤소곤. 가장 안쪽 구석 테이블에 황 여사가 보인다. 들어서며 인사를 하고 앉았다.
- 곧 오실 거예요. 아 준비해오란 거군요. 그건 절주시고.
당연하다는 듯 준비한 명품백 포장 상자를 가로채 가져간다. 고맙다는 미소도 없다. 황 여사의 채근에 오히려 내가 멋쩍다. 그리곤 곧 오신다며 황 여사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 또 누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카페 문 밖을 가리키며 황 여사가 달려 나간다. 작은 국민차. 카페 바로 밖 전용 주차구역에 섰다. 말 그대로 누구나 손쉽게 근거리 위주로 몰고 다니며 장도 보는 소형차다. 뒷좌석 문이 열리고 발보다 지팡이가 먼저 땅을 짚는다. 머리의 반은 흰 할머니 같지만 황 여사 또래 같다. 옷 매무새나 움직임은 평범한 50대 여사님.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맞이하는 내게 다가오는 이 분의 지팡이는 항상 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보다. 세 네 걸음 중 한 번 정도 역할을 하는 것을 보니, 어딘가 불편한 상황일 때에만 쓰이는 것 같다. 가까이 인사하며 뵈니, 오히려 여사님의 몸매는 탄탄해 보인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다가오자마자 어정쩡하게 모로 앉으셨다.
- 왜 자꾸 힘들게 오라 가라 해요.
- 아 죄송해요. 김 대표님.
- 뭐가?
- 오호호. 죄송해요. 바쁘신 줄 알면서도 꼭 이럴 때 이렇게. 테니스는 당분간 쉬셔야겠네요.
- 아 몰라. 지난번처럼 내 이야기만 하면 되는 거지?
- 네네. 아무것도 모르는 교육생이니 편하게 말씀 하세요. 좋아하시는 차와 케이크 대령 할 테니 잠시만요.
김수진 대표.
황 여사와 김 대표는 나를 교육생이라 했다. 무슨 교육인가. 내가 교육을 받으러 온 상황이구나. 쭈뼛쭈뼛하는 내게 김 대표는 얼굴을 들어 면면을 살펴본다. 지그시 내 눈을 한 번 보더니 웃고는, 바보는 아닌 것 같다고 뇌까렸다. 소박한 움직임이지만 말 한마디 마다 묵직한 어투. 꿀 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히 앉아 있는 내게 묻는다. 몇 층짜리, 용적률과 임대 줄 호실의 수. 황 여사가 도움이 되는 것만 남기라며 얇은 수첩과 볼펜을 건넨다.
- 유의할 사항이야. 앞으로 딱 30분. 내 이야기를 막지 마슈.
수첩은 꼬깃꼬깃 하다. 볼펜은 국민 볼펜이다. 이 평범한 형식. 평범한 선배. 평범한 시간. 터무니없는 인생 선배 경험담은 아니겠지 싶다.
정확했다. 30 분 후. 김 대표가 일어서는데 누군가 달려와 지팡이를 들고는 한 팔을 부축한다. 기사다. 차 안에서 대기하다 김 대표의 손짓 한 번에 눈 깜작 할 사이에 와 서있었다. 김 대표가 가고 난 뒤 황 여사의 설명에 더 놀랐다. 나이는 칠순이 넘으셨는데 60대도되지 않는 외모와 탄탄한 건강미. 끊임없는 운동과 자기 관리. 강남의 건물만 일곱. 하루 일과는 이 건물들의 이슈를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운동을 하신 후 교육생을 만나러 오셨단다. 때때로 나 같은 교육생 교육에 경험담 정도를 공유. 이 30분 교육이 명품백 값이었다. 명품백은 고스란히 황 여사가 아니라 김 대표의 국민차 뒷좌석으로 옮겨졌다. 황 여사에게 물으니 그날의 이슈와 운세에 따라 차를 골라 행차하신다나. 황 여사가 본 김수진 대표의 차만 네 대. 만나야 할 상대방과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오늘은 붉은색 국민경차를 선택하신걸 보니 경쾌한 날이란다. 날 그런 상대로 보신 거란다. 좋은 신호라나.
페퍼민트 차와 오렌지 무스케이크 한 조각이 나왔고 30분 사이에 빈 잔과 빈 접시가 되었다. 짧은 30분의 교육 사이 내 손은 멈추지 않고 적느라 바삐 움직였다. 전반적으로는 건물주로서 건물을 잘 관리하는 방법과 노하우였다. 신경 써야 할 점들과 임차인과의 관계 그리고 수많은 이슈를 경험하면서 헤쳐 나온 이야기들. 25년 간 건물주 생활을 하시며 겪어온 경험담. 이런 건 어디 가서 강의 받기도 어려운 이야기다. 공개를 하지 않는 주옥같은 자산이랄까.
돌아와 30분간의 교육에 있어 기억에 남는 것들을 다시 정리했다. 리노베이션한 건물 임대 준비를 하려던 내 계획과 달랐다. 실로 예상과 많이 달랐다. 건물 관리, 임차인 관리가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 상당했다. 주변 중개인들에게 항상 듣던 이야기로, 이게 너무 힘들어 건물을 매각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차례. 심지어 실제로 매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매각 후 헛헛한 마음으로 다시 자영업자나 회사에 취업하는 사람들도 자주 봤다고. 가장 많이 대두되는 이슈는 임차인 관리이슈. 그 주제와 규모 그리고 톤 앤 매너도 그날그날 다 다르단다. 심지어 같은 임차인일 지라도 하루 사이 태세 변환. 마치 채권 인처럼 달려든 단다.
시대가 변했다. 임대차 보호법 개정으로 인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임차인은 정해진 기간 임대 갱신 요구 권을 갖는다. 이는 건물에 임차인을 신중하게 들여야 하는 혹독한 이유다. 아주 간단한 사례. 전구 교체 하나까지 직접 해달라며 달려드는 임차인이 여럿일 경우 하루 기회비용 수십만 원을 날리고 지출만 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는 과감히 피해야 하는 게 임대인이자 건물주의 고충이다. 무엇보다 힘든 건 낯선 이의 문제. 임차인이 낯선 이를 집에 데려와 건물에 발생할 수 있는 사안들도 문제. 각종 임차인 민원은 임차인들 간의 이해관계까지 확대될 수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미래 임차인들의 유동 경로에 홍보를 시작하고, 입주 1주일 전. 단 한 번의 이 교육에. 앞으로 실제 경험해 본다면 엄청난 부담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감당해야 할 몫 아니겠는가. 김 대표의 30분 교육에 A4 스무 장정도 분량의 정리 본을 결과로 들고. 마음이 저 밑단까지 푹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