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일기 #387 죽현산
게으른 소비 성향 탓인지, 한 번 꽂히면 굵고 길게~ 몸을 상하게 할 정도로 달리는 어리석음 때문인지.
독감 중에 오늘은 집 와인 보관함에 쌓여버린 와인을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도. ㅎ 죽현산을 오른다.
몸에 켜켜이 쌓인 염증과 감기기운을 모두 날려버리기 위해.
수삼일 제대로 된 약을 먹고 잘 쉬어서인지, 그래도 매일의 등산이 거듭될 수록 오버하지 않았다. 다행히 감기기운은 많이 가라 앉았다.
어제 밤.
딸아이가 학원 파하고 동네 서점, 문구점 방문 후 저녁을 먹자 요구했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어서 흔쾌히 학원 파하기를 기다렸는데 웬걸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끝내준다. 나쁜 학원선생. 씩씩.
이바람에 밤 9시가 넘어 돌아보니 서점, 문구점은 커녕 동네 웬만한 음식점들도 문을 닫았더라. 수도권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맛있는 저녁 외식으로 먹고 싶다던 '막창'도 포기하고 대충 문 연곳에 들러 그 흔한 초밥 몇 조각 먹고 들어왔다.
오늘은 반드시 막창을 먹으리란 부녀간의 욕망이 딸랑 한 잔 마시는 와인과의 페어링으로 가는 길로 나를 인도하는 구나. 등산하는 와중에도 이 생각에 살짝궁 입꼬리가 올라가니 나는야 술꾼인가보다. 거 며칠 안마셨다고 말이지. 딸아이 학원에서 귀가 전 시켜두어야 하는 막창도 상황을 거든다. 알차게 땀흘리고 정화된 마음으로 와인 한 잔과 막창을 맞이하자.
먹을 생각을 하니 등산 중 떠오르는 생각. 먹부림이나 플룻의 전개와 가사의 내용과 심지어 멜로디의 변주가 딱 내 성향임을 뒤늦게 알아챈 성시경씨 유튜브 채널 방송을 종종 재미로 시청한다. 업무 중 쉬는 시간 잠시 보고 있노라니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딸래미 왈.
‘아주 성시경에게 푹 빠졌구나’
그러더니 내 키보드와 마우스를 토닥토닥 만진다. 그리곤 이거 들어보라며 뭔가 직접 틀어주고 간다.
오~ 성시경의 딩고 '킬링보이스'다.
그것도 1년 전 것. 그래 오늘은 이걸 들으며 빠르게 걷고 오자는 생각으로 나섰다.
죽현산을 오르내리며 들어보니 역시나 좋다.
좋아서 두 번 리와인드. 근래들어 성시경씨의 음악을 좋하하는 이유? 글쎄? 뭐지?
곰곰히 등산로에서 생각해보니 그의 먹부림도, 플룻도, 전개도, 멜로디의 변주가 좋아서도 아닌 이 양반의 입담 때문이다. 그가 부르는 곡 사이사이 전해주는 배경 스토리 텔링이 아름다운 음악에 더불어 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