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공동의 작업방으로

우리 집에서 우리 집으로. 다시 이사하기 #3

by 스티븐
28년 차


IT업계에서. 참 줄기차게 일해 왔다. 어려운 일이라면 어려운데. 재주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운도 꽤 많이 따라야 하는 분야다. 경쟁 환경도 치열하고 변화의 속도도 빠르다. 관리자까지 업무를 해보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을 접하고 면했다. 100여 명(고작) 구성원의 조직을 운영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은 처절히 남루해졌다. 이를 다시 어루만지고 되잡아 세운 지 언 5년. 그리고 지천명. 이제는 사람에게 치이는 업무보다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 일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이 과정 중에 터진 팬데믹은 어쩌면 큰 슬픔이지만, 일면에 내겐 이 5년의 기간에 벌어진 또 다른 변화 중 하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생활해 왔다.


작업공간


2019년 12월 중국 우한으로부터 발발한 COVID-19 팬데믹 이후. 2020년 1년 동안 재택과 출근이 뒤섞인

교차근무 환경에서 일했다. 갑자기 확산 영향이 커지면 근무 중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나의 경우야 노트북과 집의 시스템이면 문제없지만, 이때마다 시스템을 들고 집으로 옮기는 경우의 친구들도 있었다. 개발 머신은 분명 좋아야 하니까. 2021년, 2022년을 지내며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결국 회사는 전면 재택을 선택했고 재택근무는 팬데믹을 떠나 직원을 위한 하나의 복지처럼, 문화처럼 여기는 시대로 변모했다. 이젠 재택을 하지 못하게 하면 이직을 하겠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동료도 있을 정도. 2022년 7월 29일이었다. 나도 COVID-19에 자유롭지 못했다. 7일 간 안방에 격리된 채 생활하면서 네 번의 화상회의, 두 번의 보고서 작성과 같은 업무도 병행했다. 의도치 않게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스크린샷 2023-01-19 오전 6.50.37.png 출처: 회사 출근이 그렇게 끔찍한가?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6/0002092725?sid=105



월권일지도


재택근무를 하며 더욱더 느꼈다. 이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작업방은 필수다. 쉽지 않게 돈 버는 가장의 막중한 책임을 얻은 반면, 업무 중 방해받지 않을 것은 어쩌면 권리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 이 업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집중'과 '효율'. 많은 시간을 근무하기보다는 짧더라도 집중하는 시간. 회사는 분명하게 오버하는 근로시간에 대해 '비용'을 지급하지만 난 단 한 번도 회사로 오버타임 시간에 대해 추가 근로 비용을 청구한 적이 없다. 이 집중과 효율을 살리기도 했고, 재택근무까지 허용해 주는 회사에 무슨 추가 근로비용을 청구하나 싶었다. 근로시간 외 주말이나 퇴근 외 시간에 회의에 호출되거나, 동료의 추가 F/U을 위한 메일에 바로 응답하는 등, 근무 외 시간에 업무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집중과 효율을 고려해 작업 공간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 된 것은 맞다.

118058080_10157742767538277_5486212679152083684_n.jpg 2020년 여름의 내 작업공간


마음 한 편에선 방이 하나 더 있으면 아내를 위한, 나를 위한 작업 공간을 독립적으로 마련할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허나 4년 사이 급격하게 오른 부동산 가격의 거품 시대, 고금리를 활용해 예대금으로 은행이 먹고사는 시대. 지금 집도 충분히 넓으면 넓은 공간이거늘. 모든 필요를 물리적 가치로만 해결하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순 없었다. 더불어 금융의 힘을 빌어, 회사 충성도를 키우는(?) 경험을 또다시 하고 싶진 않다.


헌데 나 혼자 골방에 갇혀 집중하는 것이 진정 중요한 집중인가. 화상회의로 이루어지는 회의 시간 동안 - 고작 주 4회 수준 - 을 위해 별도의 방이 꼭 필요한가. 화상회의 툴엔 가상배경화면 기능을 제공하고, 블루투스를 통해 충분히 스피커 없이도 들을 수 있으며, 필요시 발언은 작게 이야기하면 된다. 오히려 내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크지 않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부드럽게 의사를 전달하는 장점도 있더라.

돌이켜보면, 물리적 공간을 꼭 내 전용 작업방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제 내려놓아야 할 월권은 아니었을까 싶다.


부부는 동등한 예우와 존중의 관계


아내의 취미는 각종 옷을 만드는 것. 자주 활용하는 대표도구는 재봉틀. 하지만 가족에게 희생하듯 보낸 시간 사이에서 아내의 재봉틀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설피 손 놓기엔 너무 출중한 실력의 취미였다. 이를 존중해 이사 올 때 안방의 한쪽 공간을 마련했었다. 아내는 이 공간을 무척 사랑하는 듯했다. 특히나 넓게 확장한 안방의 일부 공간이니 아내가 취미를 즐기는 시간에 나 또한 관심을 가질 수 있기도 했고. 하지만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아내는 취미 공간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듯했다. 다양한 옷, 이불 등등 재봉틀로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줄어들고 딸아이 학업 지원을 위한 참고서/학원조사/학부형으로서 지원해야 할 일들이 그 시간을 잡아먹었다. 아내의 마음 한 편에선 꽤 아쉬웠으리라. 곁에서 보기에 나 역시도 미안한 부분 중 하나이고, 필요 없는 공간처럼 안방의 1/3이라는 공간이 허비되는 것도 아쉬웠다.


바꾸고 싶었다. 곧 고등 교육에 들어갈 나이가 된 아이의 상황에 맞추어 다시 아내에게 취미 공간을 재정비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가져온 생각이었다. 나 홀로 운동을 즐기며 취미시간을 갖는 동안 안락한 의자에 앉아, 소파에 앉아 TV를 즐기는 시간이 좋다는 아내의 생활에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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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업 공간은 버린다


부부는 동등한 예우와 존중의 관계다. 동등한 공간을 확보받아야 한다. 한데, 그러기엔 너무 폐쇄된 공간에 매몰되어 있었던 건 아닌가, 조금 더 밖으로 노출해 기회요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선 안방 안으로 숨겨진 아내의 취미 공간을 없앴다. 아니 조정했다가 맞겠다. 아내의 취미 공간의 터엔 거실의 TV가 옮겨와 자리 잡는 가구를 배치했다. 그리고 아내의 취미 공간에 있던 모든 장비를 밖으로 꺼냈다.

오히려 아내와의 공동 작업방으로 생각해서 아내의 취미인 재봉틀등 다양한 장비를 기존 내 작업방과 합방시킨다. 기존 내 작업방의 많은 물건들도 과감하게 버렸다. 아내의 모든 장비와 책들을 기존 나만의 작업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내 작업방의 대부분은 아내의 취미방으로서 공용키로 했다.




To be continue in #4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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