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우리 집으로. 다시 이사하기 #4
앞서 세 편에 걸쳐 우리 집에서 우리 집으로 이사(?)하는 이야기들의 배경을 털어놨다. 취지만 길게 늘어 놓은 글을 충분히 읽어주셔서 고맙다. 이제 슬슬 비주얼라이제이션! 그리하여 우리 집 공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드리고자 한다.
Before & After
가장 먼저 한 일은 많이 비워내는 것이었다.
필요 없는 것들이 실로 덕지덕지 쌓여있었다. 쓰레기라고밖에 볼 수 없는 물건마저도 존재했다. 시간에 더불어 켜켜이 쌓인 흔적들이지만, 하나하나 정제하듯 잘 싸서 재활용 쓰레기 기준에 맞추어 정리했다.
가족 모두의 거실로
변화의 시작은 거실부터다.
전통적 가정의 심화 대표주자 TV의 위치. 거실은 TV의 전유물이 되어 버려 있었다. 그 앞에 우리는 일방형 컨텐트에 마치 충성하여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생활해왔던것 아니던가. 소파는 크기도 컸을뿐더러. 이번 결행의 목적인 가족이 함께 이야기하는데 큰 걸림돌 중 하나였다. 눕지 않기 위해 선택한 녀석이 결국 잠시 눕는 용도로 활용되기 쉬웠다. 그랬다. 무심하게 스치듯 앉아야 할 소파의 목적은 분명 변질되어 있었다.
내 목적적 목적의 목적을 다하는 커다란 변화의 시작은 이 두 녀석 TV와 소파부터였다. 책을 등지고 앉아, 책과 멀어지는 컨텐트를 수용하며, 책과는 다른 공론화 성질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실로서는 종말을 고하자. 모두 바꾸자.
TV는 안방의 구석으로, 거실엔 딸아이와 내 작업방의 커다란 책상을 꺼내어 같이 자리하자. 소파는 창밖을 볼 수 있는 역할과 거실 안쪽 가족을 바라보는 역할로 바꾸자. 책장 앞에 독서하기에 더 좋은 긴 책상을 붙여보자. 책상에서 일어나 세 걸음이면 식탁이다. 모든 가족의 대화동선은 바로 이어진다. 가족이 소통하는 거실로, 함께 공부하는 거실로, 우리 모두의 거실로 바꾸자.
더 편안한 아내와의 거리
마치 얼마 전 다녀온 여행에서 경험한 호텔 같다고 했다. 새로 들인 싱글 침대는 허리춤 가까이의 높이다.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을 잠자리로 바꾸고 TV는 잠시 필요한 경우 보는 역할로 바꾸고, 1/3의 크기를 차지했던 아내의 재봉틀 공간은 빼낸다. 잠결에 뒤척여도, 서로의 어깨가 의도치 않게 부담을 주지 않게, 오래된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안방은 그렇게 안락하면서도 정이 담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부부 공동의 작업방으로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집. 나 혼자만의 공간은 필요 없다. 동등한 예우와 존중의 공간. 아내의 시간도 소중하게, 나의 취미도 더욱 진중하게. 우리 모두의 취미방이자 작업방으로의 변화는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주로 사용할 공간으로서 별 변화 없을거라 말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는다. 그렇다. 아내에겐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시간'이라는 공간도 주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육아'와 '교육'에 지친 아내에게. 아내 스스로 생산적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게 남편으로서 아내에 대한 예의다.
가족
역시나 가족은 동행이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 대한 선행(先行)이다. 함께 하면서 일, 작업, 취미, 공부라는 시간을 선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른'의 행동 아니었던가. 그렇게 우리도 부모를 배우고 자라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한 생활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닌가. 꽤 반성하며 결행한 이번 변화에 흔쾌히 동행해 준 딸아이에게 아빠는 좋은 선행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게 가장으로서 보여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번 우리 집 내부 이사 이후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예상을 적중한 변화로써의 만족감도 좋지만, 모두가 동의한 변화라는 사실이 기저로 작용하고 있다.
거실의 책상에 앉아 내가 일하거나 공부하면 딸아이도 공부한다. 내가 독서를 하고 있으면 딸아이도 무언가를 읽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가까워진 우리는 대화가 늘고 있다. 어제는 참으로 수 십 년 만의 질문. '인수분해 문제를 모르겠다'라고 질문해 왔다. 정답을 말해주진 못했지만, 풀이 방법에 있어서 설명해줄 수 있어 행복했다. '가사' 시간에 스며왔던 아내는 '할 일'을 '원하는 일'로 바꾸어 보내는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공부하면 아내는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딸아이와 나를 보고 있다. 그리고 간간이 대화를 나눈다. 변화의 시작이다. 아이 옆에 평행하는 부모로서의 우리 모습이 좋다.
TV가 사라진 자리는 휑뎅그렁. TV를 벽걸이 형으로 타공하고 설치하지 않은 것이 어쩌면 천만다행이었다. 거실 벽 빈자리에는 TV 대신 세계 지도를 걸고 싶다. 우리 가족이 여행 한, 여행할 곳들을 표기하고 싶다. 공명하는 '세계'라는 곳은 어떤 모양새인지 함께 바라보고 싶다.
안방은 안방으로서의 보금자리 역할을 시작했다. 잠은 좀 더 편해졌으며, 아내와 함께 자는 공간으로서의 안온함을 매우 오랜만에 느껴보는데 나는 좋다. 그녀는 어떠할지 물어봐야겠다. 우선 싱글 침대는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눈치. 안방 구석으로 옮겨진 TV는 그저 틀어두고 무심히 바라보다 유의미하지 않은 소비시간용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시청할 때 가족 모두가 모이는 공간 도구로써의 역할만을 하고 있다.
필요할 때 잠시 모여 함께 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변화는 시작되었다. 시사 프로와 유튜브의 일부 컨텐트도 소비 가능한 시간대를 주로 활용하자.
‘캣워크 완성’
가족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 가장 거대한 수혜. 최대의 수혜자는 다름 아닌 보리다. 보리는 거실의 책장에서 소파를 거쳐 책상으로 이어지는 ㄷ 자형 동선을 모두 확보했다. 자신의 늠름한 캣. 워. 크. 동선을 말이다. 이 녀석 이제 거침없이 행차한다. 동선 중 그 발걸음을 막는 물건이 있다면 도도하게 밟고 넘는다. 온 가족이 머무는 시간이 거실에 집중되면서 이 녀석의 잠과 자태는 더욱 편안해졌다. 숨을 공간은 작은 방들로 다녀오면 될 뿐.
아직 전통적 거실로 생활 중이시라면, 꽉 막힌 안방공간의 불편함을 가지고 계시다면, 우리 가족에겐 좀 더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신다면 한 번쯤 고려해 보시기 바란다. 우리 모두가 공존하기에 좋은 공간으로서의 '우리 집에서 우리 집으로 이사'.
한 가정의 내부 사진을 공개한다는 건 매우 큰 용기를 가지지 않는다면 어렵다. 어쩌면 네 편에 걸친 이 글도 언젠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아내의 검열이 있기 전까진. 하지만 필요하다면 앞으로의 생활도 이 매거진을 통해 공유하고 싶다. 공진하는 방법으로서. 공명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