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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Sep 18. 2021

마음공부

에니어그램에 대하여..

'에니어그램'을 알게 된 건 십오 년 전의 일입니다.

처음 친구를 통해 낯선 이 단어를 들었을 땐 생소한 호기심과 거부감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사람을 앞에 두고 몇 번일까? 이 번호일까, 저 번호일까 가늠하는 상황이 왠지 제가  관찰 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무튼 그날의 기억은 마음에 깊이 새겨졌는지 부모교육 강사를 하는 언니로부터 어느 날 실력 있는 에니어그램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스치듯 들었을 때 제 귀는 나팔만 해졌고,  그 길로 주저 없이 선생님을 찾아가 에니어그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과는 모든 과정을 마치고 따로 심화 작업을 위해 소그룹으로 모여 심도 있는 공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몇몇 유명한 선생님을 찾아가 다양한 시선을 배우는 노력을 하다 보니 이제는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어느 정도 유형이 짐작되는 내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저는 이 공부를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공부가 고고학처럼 내면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파 들어가야 하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제가 이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있고, 또한 '자신'을 찾아가는데, 혹은 힘겨운 일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들께 직접적인 도움을 드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학원에서 심리치료 교육 과정을 배우고 있는 것도 유형 상담을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소통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예전보다는  많은 분들이 이 공부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 하시지만 여전히 불신의 마음도 존재하고, 성급하게 모든 걸 알길 원하는 조급한 인내심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茶를 마시듯, 천천히 산을 오르듯 서두르지 않고 공부해 나가길 당부드리는 이유를 함께 공부하고 계시는 분들은 잘 알고 계시지요.

잠시 호흡을 고르듯 한 박자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를 내 드리려 노력합니다.

요즘 수업이나 상담을 오시는 분들 중에는 어디선가 기본 수업을 듣고, 유형 테스트를 거쳐 자신의 번호를 알고 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짧은 시간 자신을 탐구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기에 저는 그분들이 말하는 자신의 유형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번호를 잘못 아시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제대로 교정해 나가는 가운데 성찰이 이루어지고 성장의 포인트를 자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 동기는 무의식, 혹은 외면하려는 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말'을 통해서는 내면의 숨은 동기를 읽을 수 없습니다. 말 이면의 비언어적인 행동들을 통해 숨은 동기를 끄집어 내야 합니다. 말이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포장하려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말의 이면을 간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번호를 아는 게 뭐가 중요한가요?'  '아홉 가지번호로 틀을 짓는 게 저는 싫은데요.'라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에니어그램은 아홉 가지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성격의 특성을 정확히 알아내어 그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부라 할 수 있지요.

본인이 정확히 어떤 집착적인 성격의 구속에 있는지를 알아야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자신의 집착을 탐구하고 알아나가는 것이 공부의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혹은 사람들의 '성격'을 그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버립니다.

그러나 '성격'은 '내'가 아닙니다.

살기 위해 '나'는 어떤 성격을 많이 쓰고 있는지, 무의식 적으로 나는 어떤 패턴대로 살아왔는지, 객관적 잣대를 갖고 깊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조금씩 '나'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의식은 성장하고, 속박된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길잡이 역할을 해드리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처음 판교에 작은 작업실을 열고 '마음 공작소'라고 이름 지을 때만 해도 저는 이 공간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막연히 나와 마음의 선이 비슷한 사람들과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마음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 공간이 벌써 2년 하고도 5개월이 되었네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장소는 아니지만 제법 식구들이 늘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마음의 긴장을 풀다 보면 복잡한 삶의 여정에 작은 기운을 얻게 됩니다. 공간이 감사의 시간들로 채워지네요.


깊어지는 가을, 

하늘은 점점 더 푸르고 마음은 풍성해집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늘을 보면 이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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