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백가기행

바람따라 사는 삶

by winter flush

동양학자인 저자의 '집'에 대한 철학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으리으리한 저택에서부터 지리산 3칸짜리 초가집까지 다양한 삶의 형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뿐 아니라 멋진 사진도 함께 소개되니 책을 보는 내내 눈과 마음이 즐겁습니다.

저자는 예전부터도 '다실'에 관심이 많았는데 소개한 집에도 그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문에 보면... 이 문파의 주장에 의하면 집 안에 성소聖所가 있으니 그게 바로 다실이라는 것이다..... 집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성스러움을 느끼는 공간이 필요하다. 9p]

서문에서부터 마음이 끌립니다.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차 마시며 고요한 마음으로 가라앉힐 수 있는 작은 공간은 삶의 깊이를 다져줍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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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두채 정도의 집과 주인들이 소개가 됩니다.

그중에서도 하동에 머물고 계신 박남준 시인의 이야기가 마음에 닿았습니다.

獨立不懼 遁世無悶(독립 불구 둔세 무민), 주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고,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근심이 없다.

지리산에 사는 이 시인의 삶이 그러합니다.

번민이 자리할 곳 없는 맑은 얼굴에서 그의 삶이 투명하게 비치는 듯합니다.

원래는 모악산 중턱 흙집에 머물고 계셨는데 아는 스님께서 이 집을 사주셨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시인에게 혼자 사는 즐거움에 대해 저자가 묻습니다.

"밥을 해서 된장국에 말아먹고 난 다음에 샘물을 길어와 차를 끓여 마시고,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죄책감 비슷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172p

시인의 죄책감이 무엇인지, 그만큼의 행복한 일상의 깊이가 다가왔습니다.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영복 님은 감옥 생활에서 하루 중 창살 아래로 들어오는 한 조각의 햇빛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그 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큰 행복을 느꼈다고 말입니다.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신영복 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시인은 인생을 즐기는 쾌락의 근원으로 나무, 돌, 꽃, 물고기, 구름, 석양, 한가롭게 흩어져 가는 연기라고 했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시인의 마음이 읽힙니다.

시인의 집에 방문해 샘물을 끓여 우린 지리산 녹차 한 잔 얻어 마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음이 간절하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마주 앉아 자연을 감상하며 맑은 차와 소박한 이야기...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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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자연과 하나 된 삶은 이렇게 책으로 만나고 전 또다시 복잡한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차 한 잔 마시고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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