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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Jun 25. 2023

멀고도 가까운

읽기,쓰기,고독,연대에 대하여

책을 읽다 보면 리베카 솔닛 이라는 작가의 글을 인용한 책들을 자주 만난다.

그렇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지만 정작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볼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최근에 읽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에도 이 작가가 언급되는 바람에 이번엔 놓치지 않고 작가의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제목은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멕시코에 거주하며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말미에 적은 글이라고 했는데 작가에겐 가깝고도 먼 엄마와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는 침실 바닥에 널브러진 살구 더미로부터 시작된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의 정원 마당에서 따온 변색되고 썩어가는 처치 곤란의 살구 더미는 엄마를 향한 작가의 마음 상태로도 읽힌다.  딸을 향한 질투와 멸시를 받아내며 살아야 했던 시절과 이젠 돌봐야하는 위치에서 느끼는 어긋난 마음. 그녀는 자신의 글을 통해 스스로를 다듬고 치유해나간다.

버릴 수도 없고 마냥 두고 볼 수도 없는 하루가 다르게 짓물러가는 살구. 그 살구를 바라보며 실을 잣듯 이야기는 광대하게 펼쳐진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인 작가의 글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앞에 그녀가 자주 언급되곤 하는데 인터뷰에서 그녀는 "페미니즘의 목표는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더 많이 포함시키는 것"이라 말하며 여성의 사회적 소외와 그 현상에 대해 늘 목소리를 높인다. 맨스 플레인(남성이 자신이 더  잘 안다며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경향)이라는 여성주의 용어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녀를  페미니스트로만 단정 짓기는 아쉽다. 그녀의 폭넓은 세계관과 역사, 철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깊이와 통찰이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나게 해준다.

또한 문장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대한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사유가 점점이 박제되어 있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사랑은 확장된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감정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에 관심을 기울일 때, 그것을 보살피며 그곳에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 떠나는 여정이다.
독서 또한 하나의 여정이다.
눈은 선처럼 펼쳐진 생각을 따르고, 책이라는 압축된 공간에 접혀있던 그 생각들이,
당신의 상상과 이해 안에서 다시 차근차근 풀려나간다.


감정이입과 연대를 자연스럽게 문장에 녹여내고,

책에 대한 그녀의 단상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동화에 대한 생각과 저자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그녀가 얼마나 삶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살아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현실과 맞서는 전사의 느낌마저 느껴져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함께 힘겨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리베카 솔닛의 다음 책을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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