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 '삼성원'
일본의 다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고운 가루를 격불 해서 마시는 '차노유'와 찻잎을 우려서 마시는 '전다도'가 있다. 보통 일본의 다도라 하면 차노유를 말하는데 이 일본의 말차 문화는 유일하게 일본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생겨난 문화는 아니다. 차가 중국에서 전해져 왔듯이 이 휘저어 마시는 차 문화 역시 중국에서 흘러들어 갔다. 송나라 시절 중국인들은 찻잎을 가루로 만들어 격불 해서 마시는 것이 유행이었고, 누가 더 거품을 곱게 만드는지 시합도 하였다. 송나라 때 그림 '투다도'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고, 그 시대 만들어진 검은빛 천목다완을 보면 그 당시 중국인들의 차문화를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에는 이렇게 휘저어 마시는 차문화가 존재했었다. '명전'이라 하여 주로 승려들 사이에서 행해진 차 시합은 차의 맛을 평하고 겨루는 일종의 유희였다. 이 승부는 차 거품이 곱고 흰 빛을 선명하게 띠어야 하며 그 거품이 오래 버티면서 풀어지지 않아야 이기는 것이다. 이렇듯 고려시대에는 말차 문화가 궁중과 절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러한 차 문화는 일본보다 3세기를 앞선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송나라와 고려시대에 존재했던 말차 문화는 아쉽게도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마치 일본에서 처음 존재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양 그들의 고유문화로 남아있다. 중국은 몽골의 침입으로, 우리나라는 임진왜란의 영향으로 이러한 차문화는 모두 소멸되었고, 그 아쉬운 마음은 박물관에서 당시의 다기들을 보며 허한 마음을 달랠 뿐이다.
말차 문화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일본을 찾았다. 교토는 매력적인 곳이다. 옛것의 아름다움이 깊게 배어있고 일본 특유의 정서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교토에서 전철을 타고 25분 정도 가면 녹차로 유명한 우지시가 나온다. 일본의 녹차 산지로 유명한 이곳은 일본 내에서도 가장 품질 좋은 녹차를 생산하는 곳이다. 다도의 기본인 말차의 고운 거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찻잎을 사용해야 하며 이곳 우지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섬유질이 적은 어린싹을 사용해야 말차의 거품이 더 곱게 만들어지고 잘 가라앉지 않는다. 우지의 녹차 상점에서 파는 말차 가격은 저렴한 것에서부터 상당한 가격을 자랑하는 것까지 천차만별인데 어린싹의 함유량에 따라 가격이 나뉘었음을 알 수 있다.
말차 체험을 하고 싶어 역사가 오랜 삼성원에 들어섰다. 대표가 직접 나와 사진과 모형들을 보여주며 하나하나 꼼꼼히 설명을 해 주었는데 그 자신 있는 목소리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그 일을 무척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가마에 차를 싣고 천황에게 차를 진상하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가리키며 자신의 몇 대째 할아버지 모습이라며 말씀하실 땐 소년 같은 뿌듯함과 함께 장인 정신의 투철함도 엿보였다.
작게 만들어 놓은 박물관을 둘러보고, 이어서 본격적인 말차 체험을 시작하였다. 초록의 싱그런 기운이 가시지 않은 찻잎을 맷돌 한가운데 넣고 원을 그리듯 갈면 연둣빛 고운 가루가 조금씩 조금씩 밀려 나온다. 그 가루를 따로 분리해서 예열된 다완에 덜고 물을 부어 차선으로 격불을 하면 그림처럼 부드러운 연두 거품이 생기기 시작하고, 거품이 자잘해질 때까지 곱게 만들면 한 잔의 말차가 완성된다. 이 격불 하는 솜씨에 따라 말차의 맛에 차이가 나는데 격불 하는 모습만 보고도 어느 정도의 내공인지 알 수가 있다.
내려오는 전통과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자부심과 함께 잘 보존해 나가는 그들의 차를 향한 진지하고도 겸손한 마음은 고운 초록빛 말차를 품은 다완에 고스란히 담겨 어지러운 세상에 섞이지 않고 내면의 고요 속으로 향한다.
말차는 우려 마시는 차와는 달리 잎을 온전히 섭취하는 것이라 카페인의 양은 좀 더 많지만 찻잎을 우렸을 때 추출되지 않는 영양소를 100%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카페인에 대한 고민을 할지, 영양적 효능을 더 고려할지는 말차를 마주할 때마다 따라오는 숙제 같은 일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뭔가 개운치 않은 찌뿌둥함에 몸과 정신이 흐릿한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따뜻한 홍차 보다도 먼저 연둣빛 고운 말차 한 잔의 유혹이 앞선다.
말차를 꺼내고 다완을 준비해 농밀한 말차 한 잔을 준비해본다. 차 봉투를 열면 미세하게 고운 가루가 드라이아이스에서나 나올법한 고운 연기처럼 순간 피어오르고, 피어오른 그 무늬가 어디론가 사라진 그 자리에 차분히 앉아있는 연두색 가루의 그 고운 정체가 살포시 드러난다.
다완에 차선을 올리고 뜨거운 물로 예열을 한 뒤, 차선을 한쪽으로 꺼내놓고 다완을 들어 그 온도를 양손으로 느끼며 천천히 한 바퀴 돌리면서 잠든 다완을 깨운다. 다완에 남아있는 물을 다건으로 닦아내고 차시를 이용해 말차가루를 두 번 다완에 덜어 넣고 다완 안쪽을 향해 뜨거운 물을 조금 부은 뒤 뭉쳐있을 가루를 차선으로 살살 풀어준다. 어느 정도 가루가 풀리면 물을 더 넣고 본격적인 격불을 하는 데, 격불을 하다 보면 점점 옅어지는 연두색 크림 거품에 이내 마음이 부드럽게 이완된다. 고운 말차 한 잔이 완성된 다완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한 모금 넘기면 어느새 찌뿌둥했던 몸과 마음에 반짝이는 생기가 돋는다.
'화경청적'의 정신을 강조하는 리큐의 다도를 마음에 새기며 세상의 어울림에 조화로움을 얹을 수 있는 나를 향하는 길 위에 서본다 그 조화로움에 맑은 마음으로 존중과 배려를 잊지 않는지, 늘 고요함에 머무르고 있는지를 되물으며 천천히 새기듯 그 길을 걷는다.
\차향이 물든 도시 우지..
거리 어느 곳을 지나도 녹차 향이 가득하고 진한 초록의 기운이 싱그러웠던 지난 여행의 기억은 소박함과 고결함이 한데 어우러져 나서지 않는 겸손함으로 조용한 그 도시의 마주치는 사람들의 소박한 미소로 기억에 오래 머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