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리큐 / 도요토미 히데요시

스승에게 할복의 명이라..

by winter flush

센 리큐. 조선을 사랑했던 이 남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선생으로 평생을 그 옆에 머물렀지만 그를 경멸했던 이 남자. 일본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 했던 도요토미 손에 끝내 잡히지 않았던 이 남자. 결국 그는 도요토미로부터 할복의 명을 받는다. 그러한 명을 내리면서도 잘못했다는 용서를 구하면 살려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함께 보냈지만 리큐 선생은 이에 굽히지 않았고 그 명을 받아들여 생을 마감한다.

그가 죽어 마땅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다완에 독을 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독살하라고 리큐에게 명을 내리지만 히데요시는 리큐가 그 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결국 리큐에겐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할복의 명을 받아들인 그의 죽음이 히데요시의 남은 생에 어떤 파장을 미쳤을지...

리큐는 죽기 전까지 임진왜란을 일으키려는 도요토미의 의지를 꺾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조선 침략에 대한 그의 반대는 도요토미의 미움을 사게 만들었지만 그 미워하는 마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도요토미의 마음은 그를 향한 질투심과 열등감으로 범벅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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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쿠라 텐신이 쓴 '차의 책'을 접하며 센 리큐 선생을 만났다. 100여 년 전에 영어로 쓰인 이 책은 일본의 다도를 중심으로, 서구 열강의 잘못된 동양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쓰였다. 도교와 선을 기조로 한 차 문화가 어떤 역사를 품고 흘러 왔는지, 일본의 다도는 어떤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차분하고도 강하게 어필하는 그 중심에 센 리큐 선생이 등장한다.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름다움의 미가 저절로 그러함..

이것이 리큐 선생이 추구하는 미의 근본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되 전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정성된 노력. "흐르는 것은 저러 하구나."강물을 바라보며 공자가 한 말이다. 더 이상의 표현이 필요치 않은 군더더기 없는 자연스러움에 깊은 울림이 더해진다. 자연이 전해주는 울림을 언어로 모두 표현 하기란 불가능한 일처럼 흐르는 것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구나.라고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던 공자의 그 마음을 리큐 선생의 마음에서도 엿보게 된다. 자연스러움으로, 가장 자연에 가깝게 표현하려 했던 리큐 선생의 다도는 내면에 품고 있는 마음이 그대로 흘러나와 다도를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그의 손길이 한 번 스치는 것에 따라 다실 안은 공기마저 달라졌고, 소박한 물건이었던 것도 예술의 미를 갖추게 되니 그런 그의 미의 경지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은 결국 도요토미의 질투심을 크게 자극했다. 소박함 속에서 우러나는 미의 절정을 센 리큐 선생은 와비 다도로 완성한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던 서원 차의 병폐에 맞서 간소함과 소박함으로 '선'사상에 기초한 다도를 만든 무라타 주코의 와비 사상은 다케노 조오를 거쳐 센 리큐에 의해 마침내 집대성된다. 이러한 영향은 중국의 기물과 함께 화려한 차생활로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려 했던 그 당시 무사들과 상업 자본가들의 과시욕을 점차 잦아들게 만들었고, 와비차를 통해 내면과 정신세계의 중요성을 살피게 되면서, 다도에 있어서의 소박하고 간결한 미는 점점 더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一期一會, 이것은 일생에 단 한 번 만의 만남이라는 뜻이다. 리큐 선생은 차를 대접하는 마음이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마음으로 주어진 행다에 최선을 다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주인이 우린 차와 대접받는 손님의 마음은 하나가 된다. 이것이 다도의 근본이라 리큐 선생은 말한다. 그런 그의 소박한 다도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다완이 조선의 막사발로 불리는 이도다완인 것은 우리의 자부심을 곧추 세워준다. 막사발을 빚는 그 순간에도 온 마음의 정성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낸 우리 도공들의 숨결을 리큐 선생은 알아본 것이다. 그 흉내낼 수 없는 자연에 가까운 아름다움, 리큐 선생의 눈에 소박함과 고상함의 품격이 함께 하는 조선의 이도다완은 그가 추구하는 다도 세계에 정점을 찍는 다기였다. 소박함 속의 고귀한 미는 시간의 덧칠에도 바래지 않고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손에 넣고 싶어 했던 조선의 이도다완. 오노 겐이치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임진왜란 이후 히데요시는 도공밖에 없던 일본에 조선의 사기장을 끌고 가 우리의 자기 기술을 일본에 뿌리내리게 했으며 이도다완을 손에 넣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물질적인 화려함에 눈이 먼 히데요시가 이도다완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건 오사카 성에 있는 그의 황금 다실을 보며 확신하게 된다. 리큐 선생이 최고로 여기던 다완이니 갖고 싶었을 뿐 아마도 히데요시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 고결한 미의 세계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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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겐이치의 소설 '리큐에게 물어라'를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너무도 갖고 싶어 하던 리큐의 녹유향합이 나온다. 이 향합은 리큐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것으로, 그 향합의 주인은 조선 여인이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여인. 리큐 선생이 평생 동안 마음에 품었던 사랑하는 여인의 녹유향합과 그 감추어진 사연을 히데요시는 밝혀내고 싶어 했으며, 또한 자신이 그 향합의 주인이 되길 원했지만 리큐 선생은 끝내 그것을 마음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진하게 느껴졌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그래서 더 믿고 싶은 이야기다. 글에서도 드러나는 히데요시의 텅 빈 미의식은 예술로 채울 수 없는 그 자리에 욕심만이 그득하다.


물질과 정신세계를 극명하게 갈리게 하는 히데요시와 리큐 선생, 이 두 사람의 다도에 대한 마음의 방향은 이 둘의 내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천박한 도요토미의 눈에 고결함과 아름다움의 대상이었던 그의 차 스승은 그렇게 그의 눈밖에 나면서 리큐는 마지막으로 준비된 찻자리에서 할복을 하게 된다. 그는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의 혼이 담긴 다도 정신은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대로 전해져오고 있다.

고요한 정신세계를 중시한 리큐 선생의 차를 대하는 마음은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중심을 잡아 나가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고운 초록의 부드러운 말차를 다완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차선으로 격불 할 때면 고요함으로의 집중 속에서 어지러운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화려함과 물질적이며 향락적인 것에 매료되어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기교의 다도는 이 세상사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더 가지려 하고 더 보이려 하는 사람들, 그 안의 심리는 누구에게나 한 자락씩 품고 있는 것이지만 욕심이 지나쳐 남의 것도 제 것으로 삼으려 하는 자들을 보면 세상을 향한 마음은 조금씩 닫히고 만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리큐 선생의 소박하고 질박한 와비 다도의 마음을 새기면서 고요한 정신세계로 향하는 그의 행다를 상상하면 이 질풍노도의 삶을 휘적휘적 걸어 나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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