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 삼정헌에서 그를 만나다
수종사의 하늘은 파란 물감으로 물들여놓은 듯 파랗게 물들어 있다.
해마다 노란 은행잎이 물들 즈음이나 혹은 그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이 메마르게 하늘에 길게 뻗어있는 즈음이면 난 마법에라도 걸린 듯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신발장 어딘가 구석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등산화를 꺼내 신고는 휘적휘적 길을 나선다. 꼬불거리고 가파른 운길산 자락을 오른다는 부담은 마음먹은 발걸음을 늘 주춤거리게 만들지만 잠시 숨을 고르게 가다듬고 차에 오른다. 이렇게 마음먹고 길을 나서는 이유는 운길산 자락 한 귀퉁이 수종사 삼정헌의 맑은 차 한 잔의 유혹 때문이다.
오백 년 나이를 지닌 은행나무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은 지상의 색이 아닌 듯 푸르게 청아하다. 잎은 다 떨어지고 남은 가지 사이로 짙고 맑게 다가오는 하늘은 옛것과 현재의 것을 모두 다 품고서 바라보고 있는 나를 푸근히 감싸 안는다.
운길산 자락에 단아하니 자리 잡은 수종사는 어린 정약용이 글을 읽으러 자주 드나들던 소박한 절이다.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종소리라 여겨 이름을 수종사라 짓게 한 세조. 그는 이곳에 제대로 된 절을 짓게 하고 은행나무를 하사 하였으니, 바로 그 나무가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과 나 사이에 있구나.
다산 정약용의 생가는 수종사에서 멀지 않은 마재의 조용한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이 절을 도서관 삼아 자주 드나들었단다. 강진에서의 18년 유배생활 중에도 그는 이곳을 마음에 품고 있었을 터,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마친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수종사를 다시 찾았을 때의 그 마음은 어땠을까.
다산 정약용과 그의 인연의 고리를 들여다보면 그 중심엔 '차'가 함께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젊은 시절 진정한 스승을 찾아 헤매던 초의 선사는 유배 온 다산을 찾고는 '하늘이 해남에 어진 스승을 보냈다'며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단다. 다산도 그의 범상치 않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니 그들의 만남은 가히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 듯하다. 정약용과 그의 아름다운 인연들, 제자 황상을 비롯하여 초의 선사와 추사 김정희, 그리고 혜장 스님. 사람이 빚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이들의 인연 안에 진하게 스며 향처럼 피어오른다. 차로 이어진 이들의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처럼 아름다운 그 인연의 풍경이 따스하다.
유배지에서 제자로 받아들인 황상. 다산이 귀양살이를 하며 제자를 여럿 가르쳤지만 그중 머리가 둔해서 깨우침이 더디고 느렸던 황상을 그는 가장 아꼈다. 황상은 스승이 한마디를 던지면 그것을 평생 실천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다. 다산은 무척 꼼꼼하고 깐깐한 스승이었는데 그런 그를 묵묵히 견딘 제자는 황상뿐이었다. 그는 스승이 하는 말은 그대로 다 실천하며 거스르지 않았다. 단 한마디의 말도 흘려듣지 못하던 그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죽을 때까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족하며 욕심내지 않았으며 공부의 본뜻을 삼키며 매 순간을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정진한 그다.
그의 시는 결국 많은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되었는데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한 잔의 차처럼 이내 마음이 차분히 고요해진다.
봄 떠나니 산은 문득 늙은 듯하고
구름 가자 바위는 가벼워진 듯,
소나무의 자태에 찬 뜻이 없고
대나무 기운 찬 정기 띠고 있구나.
가난해도 편안히 웃는다 하나
시 거칠면 좋은 이름 어이 얻으리.
아이에게 삼근의 가르침 주며
스승께 받자 온 것 여태 행하네
- 산방에서 차 마신 뒤- 황상
만년의 황상은 스승인 다산보다도 더 크고 넓은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로 큰 사람이 되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함. 다산의 이 삼근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않았던 그의 우직함 속에 질박한 그가 보인다.
귀양살이 네 해째 다산은 백련사에서 천재라 불리던 학승 혜장 스님을 만나게 된다. 주역에 심취해 있던 혜장은 다산보다 열 살이 아래였지만 두 사람 사이의 학문적 토론은 벌어진 아니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잘 통했다. 둘의 만남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주역을 통한 학문적 만남을 지속하였다. 혜장은 다산에게 차를 권했으며 그를 통해 다산의 본격적인 차 생활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산은 전보다 차를 더 가까이하게 되었다. 다산을 차에 입문하게 만든 혜장은 그의 거처에 제자를 보내 차 시중을 들게 하였다 하니 다산을 향한 혜장의 깊은 정이 느껴진다. 다산은 그를 통해 육우의 '다경'을 빌려 읽고는 책에 심취하여 더 이상 차가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단다. 어느 날 차가 다 떨어지자 '걸명소'라는 시를 지어 혜장에게 보냈는데 이 시에는 차를 보내 달라는 장난스러우면서도 간절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걸명소 외에도 차에 관한 46편의 다시를 남겼고 직접 다원을 가꾸기도 하였다.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혜장을 만난 이후 그 외로움이 서서히 걷히는 듯했으나 그들이 만난 지 두 해 만에 혜장은 갑자기 병을 얻어 떠나고 말았으니 그의 죽음에 다산은 심한 충격에 빠져 그로 인한 깊은 고독감은 유배생활의 잔인함을 또다시 쓰리게 해 주었다. 혜장은 그에게 먼 유배지에서 마음속 깊이 의지하던 소중한 벗이었으니 그를 잃은 슬픔에 허전함을 달랠 길 없던 그는 마음을 다스리며 저술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들은 이 시기에 많이 나오게 된다.
중국에 육우의 '다경'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초의선사의 '동다송'이 있다. 초의선사는 시와 글씨 그림 세 가지 모두에 천재적인 재주가 있던 스님이다. 그는 차에 대한 열정이 강했으며 직접 차를 제다 하는 데 있어서도 탁월함을 보여 주었다. 초의 스님의 차는 맛과 향이 훌륭하여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꼭 다시 찾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의 차를 가장 많이 마신 사람은 추사 김정희가 아닐까 싶다.
동갑내기 친구인 초의 스님과 김정희는 불교와 유교의 대립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 인연의 깊이는 깊고도 긴밀했다. 안동 김 씨에 의한 세도정치로 인해 김정희는 제주도로, 그것도 제일 험한 지역인 대정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8년 3개월이라는 기간을 병과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의 글씨체는 이 기간에 비로소 완성이 되었으며, 그 유명한 '세한도'도 이 시기에 그려졌으니, 다산도 그렇지만 추사에게도 유배생활은 외로운 자신과의 긴 싸움이긴 했으나 그들의 학문적 깊이와 예술의 혼은 더욱 깊어지는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힘든 고난의 시간 속, 그들에게 단비 같은 차가 함께 했다는 것은 차가 주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 준다. 그들이 차를 계속해서 마실 수 있도록 차를 만들어 전해 준 사람은 바로 초의 선사였다. 제주에 갇힌 추사를 찾아온 초의 선사의 방문은 추사에게 큰 힘을 보태 주었다. 그는 초의에게 '명선'이라는 글씨를 써주며 그의 차에 대한 보답을 했는데 이 글씨는 추사 말년의 대작으로 현재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추사는 초의가 만든 차에 대해 중국의 유명한 몽정차나 노아차 보다 덜하지 않다며 차의 훌륭함을 글씨에 담아 보냈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다 보면 차에 대한 사랑과 친구에 대한 깊은 정이 느껴진다.
나이와 세대를 구분하지 않는 그들의 깊은 우정의 한가운데에는 그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차'가 있었으니, 거친 세월 속 지치고 힘들었을 그들의 시간을 위로해주던 차의 향기는 멈추지 않고 길고 긴 시간을 흘러 앞에 놓인 내 잔에서도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