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 퀸 캐서린

하니 앤 손스

by winter flush

우연히 미국의 하니 앤 손스에 캐서린 왕비 이름으로 블랜딩 된 차를 발견하였다. 이런 순간 평소 같지 않게 두 눈은 반짝거리고 차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어떤 블랜딩으로 구성되었을지,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차가 도착하기까지 더딘 시간에 잠시 투덜거려본다.

주문한 홍차가 도착하던 날, 반짝거리던 눈에 더한 생기가 돋는다. 블랙틴에 금빛으로 장식된 사각틴은 고급스러움이 한층 더 도드라지고, 앞면 위쪽에는 반가운 퀸 캐서린의 얼굴이 자그맣게 새겨져 있다.

64.JPG

물이 끓는 동안 틴을 열어 찻잎을 덜어낸다. 알록달록 사탕이 든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궁금한지 새로 틴을 개봉할 때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 된다. 뚜껑을 여니 가지런한 검은 찻잎들이 소복이 쌓여 있다. 길쭉길쭉한 찻잎 사이로 골든팁도 드문드문 섞여있다. 이 차는 중국의 기문, 운남, 반양 지역의 찻잎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중국 종으로만 구성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차를 블랜딩 한 티 마스터의 숨은 의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찻잎을 펼쳐놓고 이런저런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찻잎들을 보고 있는 시선 사이사이로 향이 차오른다. 깊고도 농밀한 다크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향을 선두로 여릿한 난향도 슬쩍 스친다. 향에 취해 넋 놓고 감상하다 보니 물이 끓는 소리가 요란하다. 뜨거운 물을 티팟을 향해 세차게 부으니 찻잎에 갇혀 얌전히 숨죽이고 숨어있던 향들이 일제히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3분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예열된 두 번째 티팟으로 다시 옮겨 찻잎을 걸러낸다. 이렇게 차를 마시는 내 모습을 보며 간혹 귀찮지 않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티팟을 두 개나 사용해야 하니 설거지도 늘어나고 그 모든 준비절차가 귀찮지 않은지 말이다. 사실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할 때는 다구들을 예열하는 번거로움도, 티팟을 두 개 사용하는 것도 가볍게 다가오진 않았다. 귀찮을 땐 티백이나 티색을 이용하여 티팟 하나로 해결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차를 마시면 영 마뜩치가 않았다. 이젠 제법 손에 익어서 그런지 제대로 준비를 하고 차를 우리는 순간 하나하나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차를 고르고, 찻잔을 고르고, 다구를 예열하고, 찻잎이 티팟 안에서 점핑이 되는 순간 하나하나가 말이다.


우려진 차를 잔에 따르니 수색이 진하게 맑다. 순간 기문의 향이 스친다. 원래 기문은 고운 도련님의 이미지가 떠오르듯 기품 있게 느껴지지만 이 녀석은 고생 많이 한 도련님이랄까? 원래 고귀한 태생이나 이런저런 세상사에 삶이 고달프게 지쳐 버리고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심신이 모두 지쳐버린 그런 도련님처럼 말이다. 퀸 캐서린이라는 이름만 보고 누군가 달콤한 꽃 향이나 과일 향을 상상했다면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 녀석은 묵직한 기문의 향에 거친 듯 그슬린 탄 향이 사이사이 배어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난향은 여리게 흐리다. 이 모든 향은 캐서린 왕비의 지친 삶을 대변하듯 고스란히 담겨 말없이 지난 시간을 속삭인다. 낯선 나라에서 왕비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 누구 하나 위안이 되어주는 이 없이 홀로 외로움과 고독과 마주한다는 것. 애정을 품은 채 상실감으로 하루하루를 견뎌야 한다는 것.. 그녀의 힘겨운 삶을 이 한 잔의 차에 모두 담은 티 마스터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졌다. 이 차는 그녀가 살아온 지친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65.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