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는 새벽

by winter flush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나이 들수록 아침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식구들이 늦잠 자는 주말 아침을 홀로 고요히 보내고 싶은 유혹이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람을 일찍 맞추고 하루의 시작을 조금 더 앞당기니 하루가 길게 다가오네요.

날이 추워지기 전에는 운동 결심이 흐트러질까 탄천으로 나가 무조건 걸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물의 파동이 리듬을 타고 아름답게 반짝이던 모습은 저의 아침잠을 물리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렇게 45분 정도 걷고 들어오면 남편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지요.

남편 아침을 챙기고 배웅을 하면 온전히 저 만의 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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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해 뜨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기온이 내려가니 걷기가 망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춥고 무섭다는 건 아마도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내키지 않는 일에 억지를 부리고 싶진 않더군요.

아침 운동을 낮 시간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매일 걷기 실천이 조금은 어려워졌고, 일찍 뜨는 해가 그립기도 합니다.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만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뻣뻣해진 목과 허리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물을 끓이죠.

역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차를 우리고 마시는 일인가 봅니다.

일어나 제일 먼저 찾게 되는 녀석이 茶인 걸 보면 말이죠.

창밖은 여전히 캄캄하네요.

오늘 첫 차는 15년 숙성된 보이생차, '하관차창의 보염패 전차'입니다.

4년 전쯤 마셨을 때만 해도 균형이 잡히지 않은 맛에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보관이 잘 되었는지, 시간이 준 선물인지 균형이 잘 잡히고 편안하게 익었네요.

지인분께서 주신 차인데,

차 맛이 이리 좋으니 아끼던 차를 나눔 해 주셨을 텐데.. 하는 생각에 문득 고마운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아 더 아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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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고른 차는 대만의 '경배동정오룡'입니다.

이 차는 떨어지지 않게 늘 구비해두고 있습니다. 저의 데일리 차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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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편 출근 준비를 도와야겠습니다.

어제 미리 끓여둔 시금칫국이 있으니 마음은 든든하네요~

저녁을 주로 함께 먹는 편이긴 하지만 가끔은 일이 늦어져 함께 못할 때도 있어 아침은 꼭 챙기게 됩니다.

빈속에 출근을 하게 한 경우는 거의 없네요.

제가 독감에 걸려서 사경을 헤맸을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 빼고는 아침을 거르게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평소 아침을 거르지 않던 저의 습관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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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네요.

남편을 배웅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차분한 마음으로 차를 청해 봅니다.

이제 여유 있게 책도 읽을 수 있겠습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입니다.

'행복'에 대한 접근이 색다르네요.

2장의 '인간은 100% 동물이다'라는 강렬한 제목에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은 관념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엘리트적 행복관과는 시선을 달리하네요.

'생존'에 포커스를 맞춘 저자의 행복관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뻔한 이야기나 주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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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며 떡도 먹고 과일도 먹고.. 하다 보니 마지막 페이지네요.

어두컴컴 새벽의 기운은 다 물러가고 창밖에 햇살이 곱게 내려와 있습니다.

수업이 없다고 늦잠 자는 딸아이 깨워 이제 아점을 챙겨 주어야겠습니다.^^

행복에 대한 책도 많고, 여러 주장도 많지만,,

마음에 스며들어 그냥 느껴지는 행복감을 굳이 설명해서 흩트리고 싶지 않네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행복의 조건이라 할 수 있으려나요..?!

내일은 어떤 茶로 하루를 시작할까?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렵니다.

새벽에 마시는 차는 행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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