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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Jan 19. 2021

채링크로스 84번지

책보다 영화보다...

제목이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그렇습니다.

채링크로스 84번지,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호기심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제목만큼이나 표지도 마음에 드네요. 

단단한 양장본에 바랜 듯 짙은 녹색. 

무심히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과 84번지 마크스 서점..

뉴욕의 가난한 작가 헬렌과 런던의 마크스 서점 직원 프랭크의 20년간 나눈 편지입니다.

처음 몇 편을 읽으며 '이게 뭔가..' 싶었지요.

책을 주문하는 내용과 보내준다는 사무적인 내용의 반복이었거든요.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무미건조했던 편지에 조금씩 온기가 스며듭니다.

원하는 책을 구하고 싶은 헬렌의 절절한 마음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요.

어떻게 해서든 그 책을 찾아 뉴욕으로 보내주고픈 프랭크의 진정성도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빚어내는 따스함은 다른 서점 직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네요.

2차 세계대전 직후라 런던의 살림살이는 형편없습니다.

헬렌은(자신도 가난한 작가면서) 서점 식구들을 위해 계란과 고기를 계속해서 보내줍니다.

마음이 빚어낸 온기는 이제 따뜻함을 지나 뜨겁습니다.

종이 한 장으로 연결된 그들이지만 실상은 마음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지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한 것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프랭크가 손님의 주문에 열심히 책을 찾아 보내준 일이 말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책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삶이 짊어진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안락의자 같은 것이었을까요?

이 편지는 1949년부터 69년까지 20년간 계속되었습니다.

마음을 먹었다면 런던에 한 번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겁니다.

런던의 서점 식구들은 그녀가 한 번 와주길 간절히 원했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헬렌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프랭크는 추운 겨울 어느 날..  불운한 일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길 없는 헬렌은 답변이 오지 않아 이상하다 여겼겠지요.

느지막이 프랭크의 후임자가 보내온 편지에 충격이 컸을 헬렌의 마음이 되어봅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별은 힘겹습니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 속에서 고독한 우리네 삶이 투영되어 보였습니다.

한없이 두렵고 나약하면서도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사람들..

짧은 책이 전해준 여운은 길었습니다.

우연히 이 책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게 되었지요.

'북 오브 러브'

탕웨이 주연의 영화입니다.

채링크로스84번지, 이 책이 소재가 아니었다면 스치고 지나쳤을 영화지요.

책이 이끈 영화입니다.

마카오의 카지노 딜러인 지아오와 LA의 부동산 중개인 다니엘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홧김에 채링크로스 84번지로 책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중간중간 억지스러운 설정이 애교로 느껴지는 것도 책 덕분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

인생을 살면서 가장 많이, 오래 마주치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요..

우리는 거친 세상에 가시를 돋우고 단단한 방어자세로 살아가지만

어쩌면 누군가로부터 오는 따뜻함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막연히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는 작은 마음이 큰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것을 종종 마주합니다.

우선 마음이 열려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좋은 마음이 흘러 들어올 수 있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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