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의 네 개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표제작' 환상의 빛'이 궁금해 책을 펼쳐 들었지요.
정제된 글과 감각적인 분위기가 시간을 붙잡습니다.
빨려 들듯 금세 읽어낼 수 있었던 이유지요.
바람에 쓸려 포말이 이는 검은 바닷가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해명이 일어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소리치는 외침도 산산이 부서져 파도에 쓸려 나가듯 기억의 시간을 허락지 않는 바닷가 마을이 떠오릅니다.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은 읽는 내내 제 안에 시리게 남아 유미코의 독백은 서리가 되어 남네요.
달려드는 기차와 묵묵한 뒷모습, 바스러질 듯 압도하는 빛이... 정지된 화면이 되어 죽음을 서술합니다.
유미코의 남편은 이유도 남기지 않은 채 생을 져버립니다.
유미코는 그 이유를 찾는 게 자기 삶의 전부가 되어버리죠.
남은 자의 삶은 그 엉긴 고통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들을 수 없는 대답을 향해 묻고 또 물으면서...
우리는 참 모르고 모른 채 살아갑니다.
죽을 정도로 힘든 옆 지기의 마음도 모르고, 내 마음조차 모른 채 살아가지요.
때로는 안다고 착각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짓밟기도 하겠지요.
삶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무척 어렵고 복잡합니다. 어쩜 모순 그 자체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대한 파도 소리에 내 말이 묻히게 속에 담긴 찌꺼기들을 내뱉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지요.
바다를 향해 찢어질 듯 소리치는 유미코처럼 말입니다.
내 안에 물든 얼룩을 지워내고 불편한 이유들도 쓸어내고 자기만의 삶을 돋게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이유겠습니다.
참 좋은 소설을 만났습니다.
나머지 세 편도 모두 좋습니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책을 덮으며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되네요.
읽으며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작가의 글이 마냥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