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는 문센에서 처음 만났다. 문화센터, 줄여서 문센! 영아기 대부분의 엄마들이 거쳐가는 그곳이다. 아이들을 이쁘게 치장하고 수업에 들어와 서로의 눈치를 본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DH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그 엄마와 몇 번 인사를 하다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MJ는 빠르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다. DH가 어버버 말하던 시기에도 어른들과 척척 대화를 해나가는 친구였다. MJ가 있어서 나는 더 일찍 DH의 발달을 걱정했다. 그때마다 MJ의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커서 말 못 하는 애가 어디 있어. 걱정하지 마!". 그녀의 말은 당시 큰 위로이긴 했다. 하지만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는 조금 더 빨리 MJ와 DH의 다름을 인식했어야 했다.
아이들이 5살쯤 되자 서로 육아의 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DH는 발달센터를 다니기 시작했고, MJ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의 스케줄을 언어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의 수업으로 채워 갈 때 그녀는 놀이 학교, 영어, 몬테소리, 짐보리, 브레인스쿨 같은 것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난 DH의 어려움을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요즘 DH 뭐 다녀? 같이하자" 난 그녀의 수많은 질문과 제안을 요리조리 피하는 깍쟁이가 되었다.
그 동네에서 이사를 나오고 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여지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최근에 DH가 보인 문제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DH가 어린이집 친구와 장난감 다툼을 하다가 손가락을 물어버린 사건이었다. 그 무렵 MJ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던 그녀는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은 그런 트러블이 없다는 이야기로 받아쳤다. 싸우거나 무는 아이들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생각과 사는 세상이 너무 달랐다. 더 이상 그녀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그 상황에 DH를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난 없었다. 나 자신도 아직 DH를 이해하지 못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나고 또 그녀를 만났다. SNS 덕에 끊이지 않고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접하고 그녀도 나의 일상을 접한 까닭에 우리는 꽤 오래 연락을 하고 지내기는 했다.
그녀는 체육활동이 되지 않는 MJ와 MJ의 동생 성향이 까탈스러움, MJ의 사회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그녀의 아이들 문제로 고민이 많은 듯했다. 우리는 말속에 뼈를 숨기듯이 서로를 다 내비치지는 않은 채 만남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녀가 헤어지는 날 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늘 바른 육아의 길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아”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녀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나의 조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편견 어린 시선으로 거리를 유지하던 것은 나였다.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나날들 속에서도 언제 문제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육아다. 또 수많은 문제 속에서 허우적거려 보지만 또 나의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있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성장할 뿐이다. 속도가 빠르다고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간과한 포인트였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이야기를 쌓아갈 것이다. 그 이야기가 쌓여 언젠가 나와 그녀가 서로의 진짜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