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계단처럼 자란다고들 한다. 정체되어 그 자리에 머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갑자기 변화된 모습들을 보여주곤 한다고들 한다. 나도 종종 이러한 경험들을 했다. 그리고 한 번씩 점프를 해줄 때마다 그 순간은 큰 기쁨이 되었다. 그러나 때때로는 좌절을 주기도 한다. 왜 모든 재활은 치료라는 말이 들어가는가! 언어치료. 놀이치료 등. 치료(治療). 그 말속에 언젠가는 낫게 되는 날이 있을 것 같은 환상이 들게 말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내가 다소 권태로운 마음으로 바뀌고 있다.
'왜 아직도 이것이 안되지.', '저렇게 해서 어떻게 하지.', ''아. 이건 진짜 안 바뀌는구나.', ‘어쩔 수가 없네.’라는 생각들. 문제 행동에 건건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중재하던 내가 이런 태도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치료에 대한 회의감으로 귀결됐다.
최근 DH의 어려움을 직장동료에게 이야기했었다. 이쪽의 이야기가 낯선 그녀는 "그렇게 치료를 하면 나아져요?"라는 질문을 했었다. 한참을 고민하게 되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나아졌는가? 분명 나아진 것도 있을 것이고 아닌 부분도 있을 것이다.
"글쎄. 그냥 학원 같은 거 아닐까?" 순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면서 100프로의 성적 향상을 바라는 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학원에 보내서 성적이 올랐다고 한들. 그것이 학원의 덕인지, 아이가 똑똑해서 그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치료도 그러한 영역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의문이 올라왔다. 과연 치료를 해서 아이가 지금의 모습으로 클 수 있었나?, 원래 이 정도 자연적으로 크는 것 아니었을까?
요즘 같은 연령의 느린 친구의 엄마들을 만나면 치료를 어떻게 이어갈 것이냐는 질문을 하는 게 인사말이 되어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초등학교 들어가며 치료들을 정리한다고 하던데, 지금은 또 분위기가 그렇지만은 않다. 1학년이 된 DH도 놓지 않고 치료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치료를 놓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은 커진다. 그러나 학업과 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쉬운 일일까. 치료가 효과에 대한 의문도 계속 커진다.
DH가 얼마 전 크게 아팠다. 갑자기 토를 하던 아이가 열이 올라 병원을 갔더니 장염이었다. 그 후 일주일을 꼬박 아팠었다. DH를 돌봐주시는 활동보조 선생님이 그때 이런 얘기를 했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큰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아프고 나면 늙고"
아이는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자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성장통이 확실히 나를 늙어가게 하는 건 맞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