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세 유목기 (4)
미국 아파트, 알아보고 거주하는 이야기
미국 월세 유목기 (1) 미국 아파트, 탐색부터 거주까지
단지 내 총기 사건으로 인한 이사
4개월, 5차례에 걸친 홍수 잔혹사
아파트 #2.
1년 거주 (최초 계약)
1층. 나무 바닥.
5번째이자 마지막 홍수 이후 뽀송뽀송한 날들을 누렸다. 아파트의 계약 만료가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기, 나는 첫째를 데리고 미국 다른 지역에 사는 사촌언니 집에 놀러 가 있었다.
남편이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계약 갱신 기간별 월세 요금표였다. 눈을 의심했다. 당시 우리가 살던 2베드룸 아파트 월세는 $1,300 ~ $1,500 정도였고 $R이라고 하겠다.
* 3개월 계약의 경우 2개월만 살더라도 3개월 계약을 이행해야 해서 월세 x 3 금액이다.
10개월 이상의 계약에서는 비교적 합리적인 인상액을 제시했지만 (인상액 $150) 우리에게는 해당이 없었다. 아파트#2 계약 만료 2개월 후에 다른 지역(현재 사는 도시)으로 이사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월세 유목기 (1) 미국 아파트, 탐색부터 거주까지에서도 언급했듯이, 아파트와의 계약은 장기간(6개월 이상)이든 단기간이든 갱신하는 것이 금전적, 노동력의 측면에서 이득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전 아파트에서 막판에 월 단위 계약month-to-month lease으로 매월 $300의 웃돈surcharge을 내고 살았던 것처럼, 여기서도 계약 만료 후 월 단위 계약으로 2개월 더 살다가 이사하려고 했는데...
절대적 금액이 너무 높았다. 내가 살던 곳은 미국 내에서도 주거 비용이 저렴한 축에 속하는 중남부 소도시였다. 아무리 월 단위 계약이라고 해도 $4,000 수준의 월세는 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샌프란시스코도 아니고. 인상폭 역시 너무 높았다. 아무리 재계약 기간이 짧아도 기존 월세보다 1.6~3.0배나 요구하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건 나가라는 거네."
미국에 산 지 10년이 넘은 사촌언니가 말했다. 언니는 미국의 메이저 대도시(뉴욕 시티, LA,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다음 규모의 큰 도시에 쭉 살고 있는데, 그쪽에서도 아파트 월세를 이렇게 3배씩 올리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5번의 홍수와 본사 컴플레인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그 영향이 있지 않을까 했다. 나도 같은 의견이었다.
사촌언니는 근처 비슷한 입지의 아파트 몇 군데의 월세 시세를 알아보고 오피스와 협상을 해보기를 추천했다. 집에 돌아온 다음날부터 주변 아파트 네 군데의 투어를 했다. 우리 집보다 방이 하나 더 있고(3베드룸) 따라서 면적이 더 넓은 유닛의 시세가 $R+100 전후로 형성되어 있었다. (12개월 계약 기준) 완공 연도나 내부 스펙 등이 달라서 절대적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아파트 #2에서 우리에게 제시한 월세가 비싼 편인 건 확실했다.
동시에 본사 컴플레인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인지 검증하고도 싶었다. 자체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조사원이 일반 고객인 척하고 고객 대응 등을 점검하는 시장 조사 방법 중 하나)를 기획했다. 영어가 유창한 지인에게 이 아파트에 신규 입주 투어를 했을 경우 월세를 얼마나 부르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무 상관없는 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의 가설(내가 본사에 홍수 컴플레인한 것에 대해 오피스가 복수한다.)이 참으로 검증된다 하더라도, 소송으로 가지 않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우리에겐 그럴 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2개월 연장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오피스에 $1.5R($2,000~$2,250)을 제시했다. 이것도 말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불필요한 이사를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홍수 사태에서 껄렁껄렁 성의 없는 태도로 일관하던 뒷방 매니저가 단칼에 거절했다. 본사 시스템에서 책정한 금액이기 때문에 본인들은 조정 권한이 없다고 했다. 2개월만 살 건데 너희가 제시한 금액은 너무 비싸다고 항의를 했다. 3개월 재계약은 조금 저렴하니 3개월 계약을 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말이야 방귀야.
밑져봐야 본전이라며 협상을 시도했지만, 패배감과 좌절감을 맛봤다. 오만 생각이 스쳤다. 마지막 홍수가 났을 때 본사까지 가지 말고 오피스에만 컴플레인했다면 어땠을까, 본사 컴플레인 안 했어도 똑같이 월세 올렸을지도 몰라,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본사 컴플레인)을 했을 거야. 그러나 "그때 어쨌다면" 하는 모든 것은 결과론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은, 새 거주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2개월에 1천만원 월세를 낼 수는 없어서, 그 2개월의 공백을 위해 이사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사 시기는 둘째 산달이었다.
홍수 전쟁에서 마신 사이다 한 모금의 대가로,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