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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집

<변신>(프란츠 카프카) 서평

by 최시헌

외판사원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 속에서 깨어났을 때,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보다 외판사원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 그는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5,6년은 걸릴 외판사원 일을 하는 그레고르는 업무의 고달픔과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든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오전 5시 알람이 울렸을 때, 일어날 것을 걱정하는 직장인 그레고르. 게다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려고 해도 평소에 아파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탓에 오히려 사장에게 욕을 먹을 것을 각오해야 했다. 처음에 어머니가 자신을 불렀을 때, 그레고르는 해충이 되어 목소리가 이상하게 된 것을 들키지 않게 짧게만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이후에도 아버지나 여동생이 걱정 어린 마음으로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물어보았지만 결국 끝까지 문을 열지 않은 그레고르는 홀로 침대에서 벗어나기만을 애를 쓸 뿐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그레고르를 데리러 지배인이 오자, 어머니는 그레고르에 대해 아프다며 변호를 해주었지만,지배인은 오히려 문을 열지 않는 그레고르를 타박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레고르가 밖에 나오기를 성공하자, 어머니는 그를 보고 기겁을 하며 아버자의 품에 쓰러졌고, 아버지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그레고르를 다시 방으로 쫓아냈다. 이때 그레고르는 옆구리를 크게 다치고 만다.


기절했다가 다시 일어난 그레고르는 가족들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하고는 생각을 정리한 다음, 자신이 가족들이 현 상황을 참아낼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다행히도 여동생이 들어와서 그레고르에게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어 그의 변해버린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준 덕분에 그레고르는 더이상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동생 이외의 가족들은 그레고르에게 신경을 써줄 수 있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고 하녀까지 해고한 상태에서 깊은 슬픔과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그레고르가 해충이 된 첫째 날이 다 가기도 전에 아버지는 오 년 전 사업이 파산했을 때 건진 장부와 증서들을 가져와 현재 재산 상태와 전망에 대해 가족들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레고르가 해충으로 변하기 전, 그는 아버지의 파산으로부터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 말단사원에서 외판사원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다. 일에 성공하면 즉시 커미션 형태로 현금이 들어왔고 가족들은 모두 그 돈에 행복해했다. 그레고르가 돈을 버는 게 익숙해지자,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노고에 감사는 했지만 그와의 친밀도는 멀어져갔다. 단지 여동생만은 그레고르와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는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하고 음악을 몹시 좋아하여 내년에 그녀를 음악원에 보내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레고르가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의 가족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부모는 이미 늙고 병들어서 새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고 그의 여동생도 나이 열일곱에 겨우 어린애나 다름이 없었다.


그레고르가 점점 벌레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 익숙해지자 방바닥을 넘어 벽과 천장까지 달리는 습관이 생겼는데,그런 그를 위해 여동생과 어머니가 가구를 조금 치워주려고 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그레고르와 마주치면서 기절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밖에서 마침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그레고르가 어머니를 폭행이라도 한것으로 오해하자 사과를 마구 그에게 던져 결국 사과 하나를 그의 등에 제대로 박아버렸다.


그런 사건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도 그레고르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고는 그를 불 꺼진 방에서 가족들이 불 켜진 식탁에서 대화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어머니는 뜨개질을 하고 여동생은 점원이 되어 속기와 프랑스어를 배우고 아버지는 은행의 용인으로 일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가난으로 불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숙인들을 집안에 들인후 여동생이 그들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자 그는 깊이 감동을 받고 이런 내면을 가진 자신이 어떻게 인간이 아닌 벌레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그레고르가 하숙인들에게 들키고 그들이 해약을 하고 도망치듯이 나가자 여동생은 아예 오빠를 ‘그것’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버리자고’ 부모님께 호소한다. 그렇게 여동생의 그레고르의 방문을 닫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레고르는 그의 마지막 숨을 내쉬며 그동안의 가족들을 감동과 사랑으로 회고하고는 삐쩍 말라비틀어진 채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가족들은 ‘그것’의 죽음을 하느님꼐 감사하며 새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선다. ‘젊고 아름다운’ 딸에게 희망의 눈길을 건네며.


<변신>은 오늘날의 한국에 절실히 와닿는 작품이다. 한국 도처에 숨어있을 그레고르들. 은둔청년(히키코모리),N포세대,실업자 등등 얼마나 많은 ‘변신’이 한 가족을 절망에 집어삼켰단 말인가. 해충이 된 그레고르의 변신은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다. 해충이 되었다는 상황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체념과 절망에 괴로워한, 그리고 최후에는 자신을 버린 가족에게 과거의 추억으로 감사를 하며 작별인사를 해야했던 그의 무기력감과 우울함에 주목해야 한다.


한 사람의 번아웃도 비슷하다. 지긋지긋한 일상이 어느 계기로 완전히 곤두박질쳐버릴 때, 그 재해로 인해 그 사람의 인격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린다. 그리고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벗어나려고 애를 쓸 수록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뿐이다.


그런데 사실 그레고르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삶은 그의 가족들 중 그 어느 누구의 삶보다 처절하게 불행하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가족의 일꾼이 되어 평생을 살았고 심지어 여동생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변신’을 한 이후 그의 가족들은 표면적으로는 그를 기다려주었지만 이미 쓸모를 잃어버린 그레고르는 ‘그것’이 되어 있었다.


현대의 그레고르들은 이렇게 탄생한다. 자신의 “용도”를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다가도 저 갑갑한 벌레의 육신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스스로에 대한 경멸감과 무용함에 ‘존재하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혈육인 가족마저 그레고르를 생계수단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섬뜩한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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