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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집

허구의 순교자!

<순교자!>(카베 악바르)/<허구의 철학>(마르쿠스 가브리엘)를 중심으로

by 최시헌

사이러스 샴스는 이란계 미국인이다. 그가 아기였을 때 이란 군인이셨던 어머니가 미군의 격추로 죽은 이후,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사이러스는 어릴 적부터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마약을 하다가 나중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가 대학을 들어간 이후 죽었다. 병원에서 그는 죽는 사람을 연기하며 의사들의 교육을 돕는 배우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사실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환멸과 불면증,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후 고립감과 온갖 공허함이 그를 발목잡 있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위로를 받았던 방법은 어릴 적부터 죽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상상 혹은 꿈을 꾸는 습관이었다.

친구 지와 새드와 시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어느 날, 예술가 오르키데의 죽음-말이라는 죽어가는 예술가와 대화하는 전시를 알게 된 사이러스는 그 전시회를 찾아가게 된다. 오르키데를 만난 그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총칼로 죽어간 이란의 ‘순교자들’이 아닌 자신의 상상 속에 찾아온 선함을 추구했던 순교자들을 시로 노래하고 싶어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오르키데가 죽은 전시회의 마지막날, 그녀가 미국에서 사귀었던 전 아내 상을 만났을 때, 사이러스는 오르키데가 얼굴도 몰랐던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오르키데는 로아 샴스, 사이러스의 어머니가 레즈비언 애인과 서류를 뒤바꾸고 죽음을 위장한 뒤 미국에서 만든 신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상에게도 오르키데의 죽음이 슬프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사이러스는 자리를 떠나 친구 지에게로 가게 된다. 그리고 지는 사이러스에게 현실의 무의미함과 공허함에 좌절하지 말고 꿈이라는 진정성의 보고를 믿으라고 말한다. 사이러스의 꿈에 나온 순교자들을.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허구의 철학> 11장에 의하면 지각 환상에 해당하는 상상된 대상과 직관적 대상인 지향적 대상은 실재하는 대상이고 이들은 유물론이나 관념론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 둘을 만들어내는 꾸며내기란 초월하기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감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를 수정할 수 있다. 허구가 실재한다는 말한 ‘필연적으로’ 진실은 아닌 믿음들을 가질 그런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이 애초부터 해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므로 우리가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 단지 어떤 맥락에서의 대상이냐에 따라 실존하는 영역이 변경되며 그 관계에 의해서만 실존할 뿐이다.

그리하여 사이러스의 사후 세계는 실재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신도 실재한다. 죽음을 기만하는 오르키데의 ‘허구적’ 죽음도 실재하지만 죽음을 통해 진실과 정의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 즉 증명을 해보인 ‘순교자’들도 실재한다.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는 이상수의자를 허약하다 비꼬는 자들의 선언도 결국 해석이다.

시대정신이란 이러한 실재적 허구들이 요구되는 현장이다.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은 이러한 허구(이데올로기 혹은 종교)에 의지해 스스로를 옳든 그르든 어떠한 형태로든 형성하였다. 그러나 누가 진실과 이상을 위해 기꺼이 죽고 싶어 하겠는가? 오르키데라는 인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만듫어졌다. 순교자란 되고 싶어서 되는 것도, 되어야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이어져서 쓰여서 이어지는 문장의 마침표가 순교자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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