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노케 히메>에 반영된 일본 전통 선악론과 대안서사

by 최시헌

어느날, 재앙신이 마을로 내려왔다. 검은 저주에 둘러싸인 멧돼지가 마을을 공격하려 하자, 마을의 부족장이 될 청년인 아시타카가 이를 막으려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팔을 저주에 물리게 되고 큰 멍이 나버린다. 그날 밤, 마을의 주술사이자 족장인 히이님이 재앙신은 서쪽 땅에서 왔으며 저주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죽었다고 설명하며 아시타카에게 서쪽 땅에 가 치료할 방법을 찾으라고 말한다.

밤낮 없이 서쪽을 향해 달리던 아시타카는 전쟁 중인 마을을 지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느 행상인을 구해주게 된다. 그 행상인은 아시타카와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 그는 사람을 죽인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아시타카에게 생로병사로 가득찬 이 세상은 망령 덩어리라며 죽임에 먹히지 말라는 말을 한다. 행상인은 아시타카에게 서쪽의 사람이 닿을 수 없는 숲에 가면 사슴신의 숲이 나오는데, 거기에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조언을 해준다.

아시타카는 늑대무리에게 습격을 당해 계곡에 떠내려가는 소몰이꾼을 구해준다. 그런데 이때 습격 당시 인간들에게 총을 맞은 늑대 무리와 그들을 치료하러 온 한 소녀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시타카가 말을 걸어보아도 냉대를 하고는 떠나버렸다. 숲의 정령들을 우연히 만난 아시타카는 숲의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게 되고 그곳에서 사슴신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길을 조금 더 가자 마침내 성문이 있는 어느 큰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에보시라는 여장부가 다스리는 고을이었는데 자신의 백성들을 아끼는 성군인 듯하였다. 그러나 아시타카가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이 마을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하자, 에보시는 자신의 제철소로 그를 데리고 간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문명의 이기를 활용했지만 화승총을 개발하며 나무를 벌목하고 광물을 캐며 산을 망쳐서 멧돼지 신의 원한을 사게 만든 주범이었다. 아시타카는 에보시의 지도자적 미덕보다 숲을 뺴앗고, 산의 신들을 재앙신으로 만든 문명의 폐해를 비판한다.

에보시의 꿈은 산의 신들을 몰라내고 풍요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사슴신의 피는 상처와 질병을 낫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며 에보시는 아시타카에게 협조할 것을 설득한다. 순간 동요한 아시타카였지만 이내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다가 마을에 원령공주가 기습을 오자 총칼로 그녀를 거의 사냥하다시피 하는 마을의 경비대로부터 그녀를 구출한다. 이로 인해 아시타카는 자신도 중상을 입은 채로 기절한 원령공주를 데리고 마을을 떠난다.

아시타카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슴신을 노리고 조정에서 보낸 사냥꾼들과 에보시의 군대들, 그리고 숲의 신들이 뒤엉켜 대대적인 전투를 벌이게 된다. 원령공주는 이 과정에서 재앙신이 되려고 하는 멧돼지 신을 구하려다가 오히려 그에 삼켜져 재앙신의 일부가 될 위기에 처한다. 아시타카는 원령공주를 구하기에 앞서 전장에서 재회한 에보시에게 인간과 숲의 공존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아시타카가 원령공주를 발견하고 그녀를 구하려고 애쓰지만 인간들에 의해 포위당하고 사슴신이 괴물이 되어 고통스러워하는 늑대신과 멧돼지 신의 생명력을 앗아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사이에 에보시가 사슴신까지 죽인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 자신도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여자들만 남은 마을에 거대한 괴물, 다이다라봇치가 된 사슴신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그로 인해 피라미드같이 드높았던 제철소도 불타버리고 만다. 사슴신의 머리를 확보한 조정의 사냥꾼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사슴신에게 머리를 돌려주어 이 위기를 해결하려는 아시타카와 원령공주를 방해한다. 생명을 거두고 살리는 전능에 가까운 힘을 가진 사슴신을 원했던 천황이 이를 취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타카와 원령공주가 끝까지 이들을 설득하자 머리를 다시 되돌려놓는다.

머리를 겨우 되찾은 사슴신이지만 해가 뜨면 수명이 다하는 탓에 죽어서 쓰러지고 마을은 그 여파로 통째로 날아가고 부서진다. 생명의 파괴가 문명의 파괴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파괴된 마을에 사슴신이 남긴 생기가 돌아와 순식간에 다시 꽃이 피고 식물이 자라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시타카가 구해준 한 소몰이 꾼이 ‘사슴신은 싹을 틔우는 신이었나봐' 라며 감탄을 한다. 원령공주가 아시타카와 작별인사를 하며 영화는 마무리되지만 끝까지 그녀는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행상인이 아시타카에게 말하는 것과 같이 <모노노케 히메>에는 세상은 전쟁, 기아, 질병등등 망령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염세적 세계관과 사슴신과 같이 생명의 신으로서 세상을 치유하는 낙관적 세계관이 공존한다. 그로 인해 한 쪽에서는 문명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생명인 자연을 지키려고 하는 대립과 긴장이 지속된다.

찰스 벡스터의 <서브 텍스트 읽기>에 따르면 솔직하게 드러난 욕망이 충족될 때 비로소 숨은 이야기는 시작되고 통제에서 벗어난 환상과 집착으로 가득한 복잡한 서브텍스트가 이어진다. 이와 같이 <모노노케 히메>에서도 에보시가 사슴신의 머리를 꿰뚫는 순간 다이다라봇치의 피할 수 없는 대재앙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대재앙의 끝에는 회복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서브텍스트는 어째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는가? 이는 일본의 종교문화에서 선악론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유교의 안티테제로 만들어진 일본의 국학에서는 신도의 상대주의적 선악관이 존재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미'라는 관념은 격리의 뜻이 있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뜻으로 신성시에서, 그리고 부정한 것이어서 금기시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청정관념과 부정관념이 생명력에 대한 특이한 감성을 매개로 가치관을 반전시키면서 연결되는 것이다. 즉 선악은 부정과 청정 사이의 스펙트럼일 뿐이다.

생명이 다하는 것도 악이지만 정화되어 회복되는 것도 선이라고 보는 낙관론인 이러한 신앙은 생명력에 대한 원초적 신앙에 기반한다.(실제 작중에서도 아시타카가 자신의 상처를 사슴신의 물에 담그고 심지어는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는 장면도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가미(신)이라는 존재는 이러한 스펙트럼을 벗어난 존재이고 일본인들은 이들에 의해 인간이 꼭두각시 놀음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천황이나 무가에 평민들이 복종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본인들은 신에게 회의적으로 변했다. 이는 기독교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이지만 공교롭게도 근본은 비슷하다. 기독교에서도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하느님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별점이 있다면 기독교에서의 선 악은 절대적이지만 일본의 전통 종교에서는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부정의 회복 혹은 치유로서 청정해져서 선해지는 개념과 비슷하게 기독교에서도 회개와 용서라는 개념, 그리고 부활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회개와 용서는 오직 일시적일 뿐 내세에서 완전한 구원을 받는 사람은 평생 기독교의 윤리에 맞추어서 살아가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기 때문에 청정관념과 부정관념도 기독교의 구원론과는 차이가 있다.

신은 선악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나 있기에 인간은 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일본의 전통 신앙과 다르게 기독교의 신은 절대선이라는 진리이며 선악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에게 자유의지 부여했으므로 인간은 신의 꼭두각시인 것만은 아니다.

이 둘 사이의 논점은 선악론의 결론에 있다. 기독교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는 동시에 절대신에 의한 내세의 보상과 징벌이 명확히 존재하지만 일본의 전통 신앙은 인간을 신의 꼭두각시로 만든 데다가 선 악의 기준이, 즉 부정한 것과 청정한 것의 기준이 모호하여 때로는 악을 합리화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 <모노노케 히메>에서의 해결방법은 오히려 가미를 죽임으로서 인간에게, 즉 아시타카에게 선택의 자유를 제공한데에 있다. 아시타카는 인간들 사이에서의 권력에서도, 자연신의 요구에도 얽매이지 않으므로써 숲을 되살리고 원령공주도 구하며 자신의 신념, 즉 인간이든 자연이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믿음을 실현하게 된다.


즉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본인의 전통적인 선악관에 내린 처방전은 내세의 심판이 아닌 현세의 자유였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모노노케 히메>는 가장 영적인 작품이자 가장 세속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