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집

서양문명은 지금 황혼인가? 여명인가?

<미국 문명의 역사 2:산업시대>,<서구종말론>,<만들어진 서양>

by 최시헌

러시아와 나토의 긴장 관계, 트럼프의 자국 중심주의와 같은 최근 동향을 보면 지금 서구의 문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게 아니라 정말로 쇠락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의 중심이었던 그들이 바야흐로 갈 곳 잃은 시대를 표류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전세계가 서구화의 모델을 따라갔지만 종국에 서구인들은 문명적 지도력을 잃었다. 현재 문명의 표준 설명서였던 서구 문명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구 종말론은 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서양 문명 철학에서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원시 그리스도교와 아우구스티누스 등 초대 교부들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존의 천년왕국설이라는 종말론의 근본 방향을 뒤집는다. 일반적으로 천년왕국설에서는 천국은 미래의 것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천국이 교회에 실현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교회에 속하지 않는 세속국가들은 이단 혹은 악의 세력이자 종말을 가져오는 이였다.


그러나 다가온 근대의 종말은 이보다 복잡해졌다. 중세에는 신의 나라가 교회였지만 요아킴이라는 신학자를 이은 토마스 뮌처에 의하면 신의 나라는 ‘영적인’ 왕국이다. 뮌처와 재세례론자들은 이를 지상 위로 실현시키고자 했는데 이것이 바로 혁명신학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게 되었다. 이 흥분이 가라앉은 뒤에야 계몽주의 신학, 즉 이성과 신앙은 조화를 이룬다는 칸트에서 헤겔까지의 독일 관념론이 등장하게 된다.


이제 헤겔의 나라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나라라기 보다 지성(영)의 나라이다. 헤겔좌파와 맑스는 각각 지성의 나라를 세우든지 혁명을 일으키든지 해서 이 철학적 천년 왕국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유럽의 혁명사는 실제로 그리스도교-가톨릭교 실체를 상실한 역사와 같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 관념론에서 프로메테우스를 자주 등장시키며 반그리스도인이 새로운 경의의 대상이 된다.


니체의 자기 철학은 이 모든 그리스도교의 그림자마저 가치전도 철학으로 벗겨낸다. 이렇게 몇 번이고 천년 왕국의 의미가 뒤집히는 가운데 헤겔은 여기서 삼위일체설을 기반으로 변증법적 역사관을 만들어낸다. 긴 시간 끝에 이어진 결국 것은 공산주의 혁명이었다.


이러한 서구 종말론은 결국 새속과 이상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자 화해의 시도였다. 그럼 실제서양은 이 서사, 이 설계도대로 만들어졌는가? 블헹히도 실제 조립품에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라는 부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과 영국 남북아메리카 식민지,프랑스의 동남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등 영토 확장과 침탈은 그들을 제국으로 뒤높였다.


그리고 인종의 위계를 ‘과학적’으로 설계함으로써 18C후반에 이르먄 서양인과 타인종간의 ‘종적인’ 차이에 의해 서구 문명은 ‘영’적인 의미로 위대해졌다. 신의 나라가 식민지들 입장에서는 악마 국가가 되었지만 서양인들은 자신들을 여전히 그리스도교 문명으로 선택된 이들이라고 믿고 나머지를 차별하였다. 특히 19세기 정치가이자 고전학자였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동양에 대항하는 방벽’아라고 서양을 문명의 수호자처럼 이름 붙였을 때, 서구 문명주의는 정점에 있었다.


그리고 21세기가 되면 이런 서양 문명주의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비스듬하게 좌초되고 만다. 이슬람 테러 집단에 대한 공포, 중국 및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서양인들이 간과해왔던 오랜 역사의 문명이 그들 자신에게 압박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사양 문명은 ‘근대’의 기획 단계부터, 어쩌면 그 이전의 종교개혁부터, 혹은 아예 애초부터 세속과 이상 혹은 영성의 변증법라는 설계도는 그들이 실제로 원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서양문명에서 외려 이상과 영성의 탈을 쓴 늑대(가령, 도널드 트럼프)가활개를 친다는 것이다. 분명 <미국문명의 역사>라는 책에서 언급된 헨리 애덤스가 유럽의 문명 비관주의를 염려했을 만큼 이미 서구의 문명의 위기는 심각해져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같은 책 마지막 줄의 말처럼 그럼에도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면 황혼(twilight)은 여명(twilight)이다.


니사 벡 스위니, 『만들어진 서양』, 김승진 옮김, 열린책들, 2023.

찰스 A. 비어드, 『미국 문명의 역사』, 이종인 옮김, 까치, 2005.

야콥 타우베스, 『서구 종말론』, 김성민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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