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집

<웃음>(베르나르 베르베르) 서평

트라키아 여인의 웃음, 웃음(베르그송)

by 최시헌

신문 기자 뤼크레스는 프랑스의 대표적으로 매우 사랑받았던 코미디언이었던 다리우스의 죽음에 대해 취재하러 나선다. 그는 3초 동안 큰소리로 웃다가 무대 뒤에서 사망하는 묘한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평소 다리우스를 존경했던 뤼크레스는 이 사건을 타살로 본 것이다. 뤼크레스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옛 동료 이지도르와 협업하여 다리우스라는 존경받는 인물의 예상치 못한 어두운 과거를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유머기사단이라는 단체와 다리우스의 비밀조직 분홍 정장 사이에 ‘사람을 죽이는 유머’를 둘러싼 항쟁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유머는 상징적인 차원의 텍스트일 뿐 실제로 누군가를 죽이는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유머를 만들기까지 인류 역사에서 처절한 희생이 필요했고 그런 면에서 심오한 인간성을 드러내는 물건이기도 했다.


다리우스는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이 유머를 차지하는 것에 집착하는 야심가에 광인이었다. 소년 시절, 다리우스는 카트린이라는 연인의 아버지에게 유머를 배웠는데, 사실 그는 모모라는 가명의 유머기사단 소속 코미디언 이었다. 다리우스는 사람을 죽이는 유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카트린의 아버지에게 그것이 어디 있는지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결국 다리우스는 카트린의 아버지를 죽여버리게 된다.


이후 유명세와 다리우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그의 범죄는 덮였다. 카트린은 이런 다리우스를 용서하지 못하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진짜” 사람을 죽이는 유머를 과학적으로 개발하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유머는 다름 아닌 끔찍한 웃음가스에 평범한 유머가 들어있는 작은 메모장 하나만을 상자에 담은 것으로 웃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다. 카트린은 슬픈 어릿광대로 변장해 무대 뒤에 있는 다리우스에게 이 상자를 건네며 ‘네가 그렇게 찾던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 상자를 열어본 다리우스는 그렇게 사망하게 된다.


뤼크레스와 이지도르는 이 까다롭고 복잡한 ‘웃음’이라는 근본적인 감정을 둘러싼 사건의 비밀을 파헤친다. 이지도르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웃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도대체 웃음의 무엇이 그토록 대단하길래 다리우스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걸까?


유머기사단의 ‘사람을 죽이는 유머’는 트라키아 여인의 웃음을 떠올리게 한다. 한 천문학자가 별을 쳐다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졌을 때 트라키아 출신 노예였던 여인은 ‘그분께서는 그분의 코앞과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었던 가운데 하늘에 있는 것은 열렬히 알고자 하셨습니다.’라면서 그 천문학자를 비웃었다. 이 일화는 이데아론과 실재론을 대비시키며 형이상학적인 것에만 지나치게 천착하고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던 당대의 철학자들을 두고 한 이야기이다.


유머 기사단이 유머 그 자체의 가치보다 사람을 죽이는 유머라는 이름뿐인 물건에 집착한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유머가 아니라 공허함만 남겼을 뿐이다. 위대한 프랑스 코미디언으로 존경받지만 동시에 어두운 뒷면도 가지고 있던 다리우스도 마찬가지일까? 그의 장례식에 그토록 많은 추도객들이 와서 그의 유머가 자신의 삶에 위안을 주었다며 애도했는데도 말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트라키아 여인에 대해서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한눈을 팔다가 우물에 빠지는 것과 별만을 바라보다가 우물에 빠지는 것은 다르다.’ 다리우스는 위대한 코미디언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그렇기에 유머 그 자체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진실에 좌절하는 이상주의자, 넘어지는 질주자였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다리우스를 둘러싼 양면성을 본다. 한 쪽은 트라키아 여인의 비웃음이지만 다른 한 쪽은 돈키호테적 정신에 대한 경외이다. 어느 쪽이 더 옳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웃음이란 사실 가장 진지하고 심오한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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