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은 세 명의 딸에게 영토를 지참금으로 나누어주려고 한다. ‘누가 짐을 가장 사랑한다 말하겠느냐?” 너무나도 간단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는 조건으로. 거너릴과 리건은 망설임 없이 입에 꿀을 바르고 아버지를 찬미, 찬양한다. 그러나 코딜리아는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매우 간결히 답한다.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입까지 끌어낼 수 없습니다. 리어왕은 이 단순한 조건을 지키지 않은 코딜리아에게 화가 났고 그녀에게는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은 채 결혼을 시켰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거너릴과 리건은 오히려 아버지에 대해서 비웃고 모욕한다. 코딜리아는 그런 그녀들에게 치를 떨며 성을 나선다. 한편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 에드먼드는 서자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자연이여 그대는 나의 여신, 그대의 법칙만을 나는 따르겠다.”
에드먼드는 오래되고 불합리한 관습에 저항하고자 하는 것이다. 글로스터는 편지를 조작하여 글로스터가 적자인 에드거가 자신에게 하극상을 일으키려 한다는 내용을 보고 노한다. 그러면서 ‘일식과 월식’을 가지고 불길하게 점을 친다. 에드먼드는 미신을 믿는 글로스터를 한심하게 여긴다.
갈수록 노망이 들고 약해지는 리어왕은 딸들 두 명에게 방치되고 만다. 리어왕이 곤란해하는 와중에 그의 충실한 신하 켄트가 와서 시중을 들지만 거너릴이 와서 리어왕의 신하를 줄이겠다고 말하자 리어왕은 충격을 받는다. 그로 인해 분별력을 완전히 잃고 심각하게 노망이 든 리어왕은 절망한다. 거너릴이 다시 한 번 더 리어왕의 시종들을 줄이려고 하자, 리어왕은 거너릴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스스로 성밖으로 나가서 헤매이기 시작한다.
한편 리어왕의 편지를 코딜리어에게 전해주기 위해 길을 떠난 켄트는 코딜리아로부터 도움을 주겠다는 회신을 받는다. 하지만 둘째 딸인 리건은 켄트를 마주치자 마자 수상히 여기고 잡아들인다. 한편 에드먼드의 계략에 넘어가 형세가 뒤바뀐 에드거는 도망다니며 광대 행세를 하기로 한다.
리건과 거너릴 모두 최후의 통첩으로 아버지에게 더 이상 좋은 대접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리어왕에게 윽박지르자 리어왕은 마음을 굳히고 추운 밤길로 들어선다. 추운 숲 속을 돌아다니던 중 켄트와 에드거가 리어왕을 발견하여 그를 오두막으로 피신시킨다.
거너릴과 리건의 편이었던 글로스터는 인간적으로 리어왕이 걱정되어 그를 도우려고 나선다. 그럼에도 에드먼드는 이때를 또 기회로 삼아 아버지를 두 딸에게 일러바쳐서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붙잡힌 글로스터는 고문으로 눈이 먼다.
코딜리어의 소식을 직접 전하러 온 신사는 코딜리어가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울며 연민했다는 말을 하자 켄트는 국왕 리어가 수치심으로 코딜리어를 차마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한참을 숲속에서 기다리다가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구출된 리어왕은 코딜리어와 눈물의 상봉을 한다.
그렇게 코딜리어의 군대와 두 딸의 군대가 전투를 하는 와중 거너릴과 리건은 독살을 당하고 에드먼드와 에드거는 아수라장 속에 다시 조우하며 형제로서 화해를 한다. 에드먼드 또한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눈이 멀게 되었다는 사실에 자신을 반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투 중 리어왕과 코딜리어가 잡혀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빠졌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구하려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죽은 코딜리어를 붙들고 리어왕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렇게 울부짖던 리어왕은 탈진하
듯 사망한다.
『리어왕』의 주제는 일관되게 형식과 내용의 대립구도로 이어진다. 맨처음에 거너릴과 리건과 달리 코딜리아는 왕을 사랑한다는 말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함을 고백하는데 이는 언어라는 형식과 달리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를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에드먼드가 자신이 서자임을 한탄할 때 자연의 법칙을 따르겠다고 말하고 일식과 월식의 미신을 따르는 아버지를 비꼬는 장면에서는 합리주의적인 의미에서 내용과 형식의 대립구도를 성립시킨다고 볼 수 있다.
리어왕에게는 자주 까매오처럼 광대가 등장하여서 리어왕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그를 비판하는데 그의 수수께기 같은 말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3막 2장 마지막 줄에 나오는 시와도 같은 에언시일 것이다.
뚜쟁이와 창녀가 교회를 지을 때
-바로 그때 살아남은 자는 보게 되리라
두 다리가 걷는데 사용되는 것을.
앞의 Stanza에서 사회가 타락하는 모습을 형식만 갖추고 내용을 무시하는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뒤에서는 뚜쟁이와 창녀라는 겉으로는 외설적인 이들이 오히려 교회를 지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형식보다 내용으로써 추구할 수 있는 도덕을 지키는 이들을 기리는 이 예언시는 더욱 이데아적인 사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플라톤적 색채가 리어왕에서 가득한 이유는 리어왕이 영국 르네상스 문학의 정수인 이유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영국에서는 중세주의와 결합된 독특한 르네상스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휴머니즘과 신플라톤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먼저 휴머니즘은 고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산에 영향을 받아 이상적 인간관을 만들어가면서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적인 성향에서 벗어나려는 개혁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어의 처형 이후 민간 정부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귀족들에게 휴머니스트들이 봉사할 것인가 아니면 봉사하지 않을 것인가의 형식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휴머니즘 2세대에서는 그러한 계급에 봉사하는 신학이니 계급이니 하는 형식적인 문제보다 실질적인 현안들 가령 빈곤, 범죄, 인클로저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면에서 정치적으로 내용과 형식의 문제는 휴머니즘 전통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르네상스의 철학적, 신학적 측면에서도 형식과 내용의 문제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영혼불멸설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그 당시 대립하고 있었는데, 바로 플라톤주의적인 관점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이었다. 먼저 플라톤적인 관점은 피치노라는 학자가 주장한 것으로 인간은 신과의 닮음 및 이데아로부터 영적 실체에 대한 적합적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영혼도 충분히 불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은 인간의 영혼이 무엇인가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육체라는 객체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영적 실체에 대해서 알 수 없거나 불완전한 지식만을 얻을 수밖에 없으므로 영혼은 불멸할 수 없다고 본 것이었다.
이때 피치노가 플라톤적 논증에 추가한 것이 바로 신학적 ‘사랑’ 이다. 영혼의 ‘관찰(이성)’과 ‘사랑(의지)’은 구별된다. 다시 말해 “선을 [그저]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선을 의지하는 자가 선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혼은 신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함으로써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Fic.op. 324)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피치노의 관점과 휴머니즘 2세대의 영향을 받아 리어왕의 사상적 계보에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코딜리어의 ‘사랑’은 물질적 형식인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이데아적인 가치였으므로 불멸적인 가치를 지닌다.
비록 코딜리아도 왕도 두 명의 언니들도 다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코딜리아의 죽음만큼은 가장 숭고하게 그려진다. 어떤 의미에서 코딜리아는 죽음으로써 그녀의 사랑을 가장 잘 증명한 것이므로 슬프기만 한 애절한 신파극이 될 수 있었던 『리어왕』을 영국 르네상스의 영웅적 비극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참고자료:
조규홍 ( Kyu Hong Cho ). "논문 : 르네상스 시기의 철학자 피치노(1433-1499)의 “인간관” 연구 -그의 “사랑(amor)” 개념을 중심으로-." 중세철학 0.13 (2007): 323-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