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향미평가, 커피 한잔에 담긴 세계
이라고 난 향미평가를 말하고 싶다.
한잔의 커피가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 나름대로 평가하는 작업이라고 조금은 거창하게 말할 수 있겠다.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향미평가를 하다보면 향수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가 향수나 품질이 떨어지는 향수일수록 단순하고 복합적이지 않은 향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커피도 그것과 유사했다.
한가지 맛이 너무 두드러지거나, 여러가지 맛이 느껴지지 않고 뭉텅뭉텅 느껴지면 저가이거나,
너무 과하게 로스팅된 커피였다.
(물론 좋고 나쁨은 없다. 향수나 커피나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즐기면 되는 거니까)
향미평가는 SCA링을 토대로 해서 돌아가면서 향과 맛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향은 어떤지, 바디감은 어떤지, 맛은 다섯가지 맛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향의 경우에는 원두를 내리기 전의 향인 프래그런스를 1차로 말하고, 원두를 내리고 나서 나는 향인 아로마를 2차로 말하도록 수업이 진행된다.
처음에는 약간 쭈뼛쭈뼛하던 반 사람들도 수업마다 계속해서 향미평가가 진행되자 사뭇 진지해졌다.
놀라운 것은 똑같은 커피인데 다들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너무 써서 못마시겠다고 모두들 말했던 룽고는 나한텐 아주 괜찮았던 커피였고,
산미가 강해서 아주 호 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던 커피는 다른 사람들은 맛있다고 했다.
물론 아 이 커피 맛있다, 이 커피는 좀 별로다의 아주 확실한 기준은 모두 함께했지만 이런 미묘한 맛의 차이는 다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카페 사장님들이 정말 머리아플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향미평가를 해보는 게 모두 처음이고, 이 부분도 시험에 들어가기 때문에 좀 긴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미리 같은 원두로 계속해서 선생님이 연습을 시키시기도 하고, 역시 말하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다들 점점 자세히 말하게 되더라.
다만 유의할 것은 나중에 가서 에스프레소로 향미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에, 카페인에 예민하다면 주의해야 한다(살짝 맛보고 개수대에 뱉어도 된다).
주의할 것 까지 있나 싶지만 에스프레소 샷잔이 작기때문에 홀짝홀짝 마시다가 4샷 넘게 마셔서 잠 못잔날도 있었다.
예민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
나는 후각과 청각이 몹시 예민한 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예민한 사람으로 사는 건 단점이 훨씬 많다는 걸 단연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집단에서 예민한 사람은 보통 ‘성가시다’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사실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면 신체적으로도 금방 지치기 때문에 나 자신도 이런 내가 참 귀찮다고 생각했다.
또 예민한 후각에 따라오는 미각도 있기 때문에 밖에서 음식을 먹으면 썩 만족하기가 어렵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남들은 만원 내면 100의 만족감을 가져가는데, 나는 60밖에 못가져가니 참 별로였다.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간 곳은 몇 숟갈 못들고 내려놓기도 했다.
특히 백화점 1층 같은 공간은 정말 쥐약이었는데, 더 예민했던 어렸을때는 숨을 참고 빨리 지나가지 않으면 하루종일 머리가 아파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딱히 깊이 생각하고 자격증을 신청한 건 아니었지만, 향미평가를 하면서 나의 이런점이 어쩌면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약간의 자랑을 덧붙이자면, 원두의 향만으로 선생님이 가져온 원두의 산지를 맞췄다(카페인인지 디카페인인지도 몸에 삭-도는 느낌으로 맞췄다). 엄마가 주말 아침 브루잉을 해서 내리는 것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향과 맛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 친구들이 약간 탐지견을 보는 눈빛으로 신기해하는 것이 느껴졌고, 솔직히 말해 조금 우쭐했다.
이 미식의 천국인 나라에서 이쯤 맞추는 사람이야 많겠지만은,
알량한 우쭐함이 가신 뒤에 뭉클한 위로감이 찾아왔다.
나의 모나고 미운 점이 어떤 분야에선 꽤 쓸모가 있구나 라고 느낀 건 꽤 멋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