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가득한 고요함

외할머니댁의 새벽

by 겨울빛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댁은 시장 옆 작은 건물의 3층에 있다. 지역에서는 꽤 큰 시장이라, 아케이드를 따라 들어가면서부터 사람들의 북적임이 맞이해주는 느낌이다.

그늘에 있어 서늘한 건물 속 회색빛 화강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3층 계단에서 부터는 창을 따라 들어오는 햇빛이 느껴지고, 집 안에 들어서면 이내 사람들의 목소리는 멀어진다. 멀리서 들리는 슈퍼의 행사소리, 넓은 창에 가득 들어오는 햇살과 작은 베란다를 빼곡히 메운 어디에선가 받아오신 식물들이 나를 맞이한다.


외할아버지가 간암투병을 하셨을 무렵, 용돈을 모아 공기청정식물이라고 선물드린 꼬마 산세베리아는 어느덧 허리께까지 커졌다. 그 옆의 스킨답서스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에 나지 않지만 엄청난 크기로 주렁주렁 장식장 위에 매달려 있다. 약간 메마른듯한 커다란 관음죽은 아마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다. 식물이 행여나 시름시름 하거나 죽기라도 하면 마음이 아프셔서 이제는 그만달라고 하시는 외할머니는 내 기준 식물 의사다. 죽어가는 식물도 할머니댁에 가면 살아나는 것을 넘어 풍성해진다. 나는 오랫동안 그게 그냥 해가 챠르르 들어오는 환경때문인 줄 알았는데 불과 최근에서야 할머니가 바람도 때맞춰 쏘이시고, 물도 받아놓고 하루 지나 주시며 애지중지 키우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랑받는 식물들과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또 무언가 손녀의 입에 넣고 싶으셔서 달그락 거리는 식기의 소리를 들으면 나의 마음은 그렇게 몽글몽글 거렸다.


저녁이 되면 우리 할머니는 꼭 일일드라마를 보신다. 귀가 좋지 않은 나의 할머니는 이때가 되면 보청기를 빼시고 마치 루틴처럼 볼륨을 크게 올려 진지하게 시청하시는 편이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불이 꺼지고, 적막 속에 퍼커션 연주자 한 명만 남는다. 마치 낮의 사람들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시장가 건물은 조용해진다. 공기는 살짝 서늘하고, 할머니가 계신 안방만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 할머니 옆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옆에 느껴지는 할머니의 버석한 얇은 피부에서 느껴지는 미지근한 체온과 나 아직 건재하다 알리는듯한 우렁찬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잠깐 누워있다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연주자의 연주가 커지면 거실로 나온다. 어스름한 저녁에 달빛이 맞은편 붉은 벽돌 건물을 비추고, 서늘한 공기 속에 이따금씩 길고양이들의 야옹야옹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 종일 크고 작은 소리가 가득하지만 왠지 나의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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