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머니댁의 새벽
도시에 있었던 외할머니댁과 달리 친할머니댁은 청주 도심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농가다.
사람들이 떠나 빈 집들이 많아졌지만 원래 할머니댁은 집성촌이었다. 그래서 내가 누구네 딸이요~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지나가시는, 어쩐지 반쯤은 시간이 멈춘듯한 동네다. 그래서일까, 나는 차를 타고 동네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비석이 지나면 할머니 품으로 들어온 듯한, 알수 없는 포근함과 안도감이 느껴진다.
친할머니댁에 가면 냄새에도 시간이 깃든다는 것이 느껴진다.
낮에는 공기에 따뜻한 흙냄새가 느껴진다. 도시에서 맡는 그런 메마른 흙의 냄새가 아니라 진짜 식물들이 자라는 촉촉하고 포근한 흙냄새다. 그리고 뉘엿뉘엿 해가 저무면 왜인진 모르겠지만 종이냄새가 났다. 간혹 진짜 누군가 종이를 태우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정말 종이 그 자체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신기하게도 시간에 따라 대기에서 느껴지는 냄새가 달라지는 것은 할머니댁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시간은 소리에도 깃든다.
나는 시간별로 달라지는 소리를 낡은 나무 대문 옆에 돗자리를 펴고 스티로폼 베개를 베고 누워 듣는 것을 좋아했다. 낮에는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에 개들이 짖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때때로 그건 먼 발치에서 들리기도 하고, 옆집에서 크게 들려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드르르르 지나가는 트랙터 소리, 가까운 나무와 먼 나무에서 파도처럼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들린다. 계절에 따라서는 제비의 공격적인 짹짹소리도 들린다. 아마 대문 바로 위에 집을 지었으니 낯선 이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매미소리에서 개구리로 넘어가면 저녁에서 새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개구리 소리가 낭만적이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잠을 설칠만큼 꽤 시끄러운 연주자들이다. 가을에는 또 귀뚜라미가 조용-하다가 귀뚜르르르 울고 조용-하다가 귀뚜르르르 운다. 소리를 들으면서 아, 계절이 지나갔구나 느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모두가 잠든 밤이다. 문득 잠에서 깨 부스스 일어나, 녹슬어 안열리는 샷시를 끙끙대며 열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새벽의 공기가 뺨을 스치고, 방충망 사이로 들어오는 노랗고 어스름한 조명빛이 눈을 깨운다. 어렴풋이 보이는 오래 전 할아버지가 쓰셨던 농기구들과, 싱그러운 풀냄새, 태운 짚 냄새와 종이냄새가 진해진 것이 느껴진다. 사방이 적막한데 온통 개구리 소리로 가득한 고요함의 한가운데에 나만 멍하니 앉아있을 때, 나는 말로 다할수 없는 몽글함이 피어나는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