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사치스러운
겨울은 부쩍 사람을 웅크리게 만든다.
줄어든 햇빛 탓도 있겠지만, 기온이 내려가면 근육도 더 굳고 마음도 어쩐지 잎이 다 떨어진 나무처럼 쓸쓸하고 공허해진다. 해가 늦게 뜨고 빨리지니 괜히 하루가 짧아진 것 같고, 어차피 빨리 지나갈 하루 지나가버려라 하는 못된 마음도 종종 든다. 게다가 손발도 평소보다 차갑고 소화도 더뎌지니 오늘 펼쳐질 하루가 기대되기 보다는 화나고 짜증날 일들로 가득찬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요새는 예전만큼 마음에 찬바람이 불지 않는다. 5년 전 시작한 운동으로 땀구멍이 활짝 열린 후로 아주 최소한의 체열을 확보한 것 같다. 물론 공짜는 없어서 여름나기가 무척 고되지만, 오랫동안 겨울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었던 나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추위에 바짝 얼었던 몸을 욕조에 푹 담그거나, 겨울의 건조하다 못해 바삭거리는 공기 속에서 가습기의 따뜻한 증기를 킁킁거리는 것. 또 미리 데워둔 온수매트 위 포근한 이불 속에서 맨발을 꼼지락 거리면서 먹는 구운 고구마의 달콤함. 유자청을 한스푼 듬뿍 떠서 끓인 물을 부어 포실하게 오르는 유자맛 수증기에 냄새도 맡고 건조해진 눈도 괜히 대서 깜박인 다음 앗 뜨거!하며 혀 데이며 먹는 유자차 한 모금.
겨울을 좋아할 이유를 열심히 매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마음에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면 나는 양말가게를 찾아간다.
양말가게 문을 열면 동물성 섬유 특유의 살짝 쾌쾌하면서도 끝은 포근한 냄새가 난다. 나무 책상과 선반에는 알록달록한 양말들이 채워져있다. 겨울 양말들은 패턴도 화려하고 유쾌한데 수염이 가득한 고양이가 그려진 빨간 양말부터 화려한 자수가 채워진 무릎까지 온 양말까지, 보고있노라면 미소가 안 지어질수가 없다. 또 양말을 짠 섬유도 다양한데, 보들보들한 캐시미어와 그보다는 거칠지만 튼튼해보이는 고급 울, 또 케이블 모양으로 짜여진 면까지 만지다보면 마음까지 복슬복슬해지는 기분이다.
단점이라면 대부분이 수입이라 가격을 보면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키게 된다. 처음 살 때는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며 밥 한끼 가격을 양말에 쓰는 것이 합리적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고심해서 고른 그 양말은 다른 양말이 헤져서 버려질 때도 끄떡없었고, 양말을 고르고 신을 때 겨울에 무척 행복했다.
그래서 겨울에 마음에 찬바람이 부는 날이면, 나는 온기를 찾기 위해 작은 사치를 부리려 양말가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