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파도소리

by 겨울빛


스스슥 뒷걸음질 치다가 솨아-하고 빠르게 몰려오는 파도소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바닷가가 아니더라도 땅 위에서도 초록빛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세찬 바람이 들이치면 하늘을 빼곡하게 메운 잎들이 몸을 부딪치며 내는 초록색 파도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들으면 처음 들려오는 강한 솨-하는 소리와 뒤이어 들려오는 약한 소리, 또 잠시 이어서 들려오는 나뭇잎들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달의 인력이 있는 한 멈추지 않는 파도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서서 그 파도를 보고 있으면 바람에 잎들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휘영청 늘어지면서 선을 이룬다. 그 뒤에 있는 잎들은 그늘지기도 하고, 또 연녹색과 짙은 녹색이 섞여있어 입체적으로 파도의 물결을 보는 듯 한 착각을 자아낸다. 바다의 파도소리가 심장을 씻어내는 듯한 청량감을 준다면, 숲의 파도소리는 마치 귀로 그 초록빛 잎들이 들어와 몸의 위부터 아래까지 휘감고 나가는 착각이 들어 기분이 나긋하게 좋아진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고개를 올려 하늘에 가득한 나뭇잎들을 보는 것이다. 해가 잠깐 구름에 가려지면초록색 잎들이 일순 어둡게 변하는데, 그 모습은 푸른 하늘에 대비되어 정교한 수로의 모양 같기도 하고, 무수히 펼쳐진 푸른 혈관 같기도 하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언젠가 외할머니를 따라 외가 가족묘를 정비하러 간적이 있었다. 손이 오랫동안 닿지 않아 덥수룩하게 자라난 풀들을 예초기로 삼촌들이 깎느라 땀을 훔쳤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아직 어렸던 나와 사촌들은 놀고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에 돗자리를 들고 소나무숲을 지나 숲 안쪽으로 들어가 은박 돗자리를 펼쳤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그 조용함에 살짝 무서우면서도, 예초기에 잘린 풀들의 짙은 내음이 멀리 떨어지지 않았음을 확신시켜줬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 위의 잎들은 잔잔하게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냈다. 소꿉놀이를 한참 하다가 누웠을때 눈을 메운 그 초록 잎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달라지는 하늘에 수놓아진 잎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더없이 부드럽게 마음을 채우는 숲의 파도를 보고, 들을 때 나는 날선 마음이 다시 몽글해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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