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서울-두바이)

1. 9박 10일 여행의 시작

by 겨울빛


10월에 가는 여행, 우리는 1월에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어떻게든 최대한 길게 가고 싶어서 요리조리 찾아보다 2025년 추석이 다시 오지 않을 긴 연휴인 것을 확인하고 빠르게 티켓을 끊은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일찍 끊었음에도 티켓값도 비성수기 대비 거의 2.5배 비싸고, 일단 비행기 티켓이 벌써 많이 나가있던 상황이었다.


우리가 가던 시기에 직항은 일단 없었다. 알아보기로는 아시아나에서 성수기에 직항을 운영한다고 봤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대한항공을 타고 싶었지만 티켓값이 너무 비싸서 고민하다가 에미레이트 항공을 타고 두바이에서 새벽에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두바이까지 9시간 30분 비행 후 두바이에서 5시간 경유, 두바이에서 카이로까지는 다시 3시간 50분 비행이다. 어쩐지, 유럽 갔을 때보다 몸이 너덜너덜하더라니 이유가 있었다.

이륙하고 착륙할 때 기체에 달린 카메라로 밖을 볼 수 있는게 신기했다


처음 타보는 에미레이트 항공. 짐을 부치면서 느낀 점은…시간이 오래걸린다. 국내항공들 중 많은 곳이 자동화 시스템이 된 것에 반해 사람이 하다보니 그런 것도 있고, 빠른 일처리는 역시 한국 항공사들이 최고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심지어 옆을 보니 비즈니스석도 줄서서 꽤 기다리는 것을 보며 시간 여유를 가지고 공항에 안왔으면 심장 떨렸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조금 실망했지만 이 마음은 수시간 후에 바뀌게 된다.


중동항공사답게 에미레이트항공은 기내식이 매우 다양하다.


각종 종교식부터 다이어트식, 환자식까지 다양하고 여행 전 에미레이트 어플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다른 항공사들에 비해 종류가 많아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당뇨식을 신청했다. 비행기를 탈때마다 발과 종아리가 꽤 붓는 편이라 고생하는데, 당뇨식을 신청하니 몸이 훨씬 가벼웠다.

내가 시켰던 당뇨식

남편이 시킨 일반식과 비교했을때, 빵이 흰색 빵이 아니라 통밀빵이었고(정말 질겼고, 톱밥…같았다) 요거트에 올라가는 잼이 없었다. 과일에도 수박처럼 당이 높은 과일이 빠져있었다. 몸이 많이 붓는 분들은 환자식 시켜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에 술이나 콜라 대신 탄산수와 물까지 마셔주면 효과가 놀라울 정도로 크다. 기내식 맛은 대한항공이 긴장해야할 정도로 정말 훌륭했다.


또 대체식을 시키면 다른 사람들 보다 밥이 빨리 나와서 밥먹고 빠르게 양치하고 잘 수 있다. 비즈니스석이 많아서 일까, 에미레이트 항공은 타 항공사 대비 밀 서빙이 조금 더디게 느껴졌다. 빨리 밥을 먹는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맛을 조금 내려놓고 대체식을 시키는 것도 추천한다.


너무 에미레이트 항공에 대한 단점을 적는 것 같아서, 가장 두드러지는 큰 장점을 적어보자면 기내 콘텐츠가 매우 다양하다. 오일 머니가 이런 것일까, 부내가 좔좔 난다. 꽤 최근에 나온 드라마와 영화도 많아서 시간을 보내기가 좋다. 특히 추천할 만한 것은 게임이다. 둘이 함께 가는 여행이라면 강력 추천한다. 시간이 정말 빨리간다. 추천게임으로는 테트리스와 모노폴리, 오델로가 있다.


직항제일주의였지만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서 땅에 발이 닿으니 너무 행복했다.비록 두바이 공항에서 면세점으로 들어가는 사이 수속하는 과정에서 애플워치가 하필 액정 쪽으로 떨어져서 박살이 나서 마음이 쓰렸지만, 두바이공항은 그런마음이 쏙 들어가게 할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오일머니로 찬란한 두바이 공항의 모습. 밤이어도 낮처럼 즐길 수 있다.


카지노처럼 여기가 낮인지 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원조 두바이 초콜릿부터 각종 주류, 화장품 명품 등을 팔고 있지만 갔을 때 달러 환율이 너무 높아서 가격적인 이점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가격은 절대 저렴하지 않지만 약국을 둘러보는 것이 꽤 재밌었다. 한국에서는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는 나잘 스프레이부터, 한국에 팔지 않는 다양한 비판텐 연고까지 있어서 만약 놓고 온 의약품이 있거나 사고싶은 의약품이 있다면 구경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하지만 품목에 따라서는 한국대비 터무니 없이 비싼 것도 있어서 잘 봐야 한다).


그리고 터미널 3 게이트 C 19 인근에 간다면 아이리시 바 O’REGAN’S의 기네스를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맥주가 정말 신선해서 비행하느라 힘들었던 것이 날아가고, 알콜 기운이 스물스물 올라와 몸이 노곤노곤해진다.

아름다운 기네스의 자태

기네스 한잔하고 환승하는 게이트 앞에서 몇 없는 다리 올리는 부분이 있는 긴 의자에 누워서 한숨 푹 잤다. (이 리클라이너 의자를 미리 찜해놓는 것도 나름의 팁이다)생각보다 쌀쌀해서 경량패딩을 다시 꺼내입고 자고 일어나니 그래도 다음 비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기분이라 경유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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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행복한 남편의 모습 / 음료수를 두는 칸이 신기했다 /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넓은 레그룸

5시간 경유가 끝나고 여권을 찍고 들어가려는 순간 탑승권을 찍었는데도 얇은 종이 탑승권이 나와서 심드렁한 마음으로 ‘이런 자원 낭비가 있나’ 했는데, 직원이 원래 탑승권을 가져가더니 갑자기 찢는 것이다.


이건 또 뭔가 하고 놀라서 다시주는 티켓을 보니 무려 비즈니스였다!!! 아니 우리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거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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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야무지게 챙긴 웰컴 샴페인 / 스크린도 더 컸다!

사실 쪽잠을 잤지만 몸이 너무 피곤한 상태여서 짧은 비행이라 하더라도 일단 누워서 따듯하게 잘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이렇게 에미레이트 충성고객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소시민의 마음이란.


환자식을 신청한 것을 바로 취소하고^^…이때부터 와인과 프렌치토스트를 먹고 남은 비행까지 담요를 덮고 푹 잤다.


환자식에서 바로 바뀌어 버린 식단. 그래도 행복했다.

공항에서 춥게 자서 몸살이 올까말까 하는 몸 상태였는데 원래 몸 상태로 돌아왔다.


역시 돈은 좋은 것이다. 에미레이트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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