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신전 구경하기
그렇게 한시간을 모래로 가득찬 풍경을 지나다 보면 검문소에 도착한다. 총 든 군인들도 보이고 꽤 삼엄했는데, 기사님은 이들과도 아는 사이인듯 웃으면서 우리 여권 사본을 보여주고 빠르게 통과했다. 이쯤되면 기사님이 모르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다.
참고로 이날 아부심벨의 온도는 무려 36도였고, 이집트 햇볕이 정말 강렬하긴 한 지 둘 다 점점 까매지고 있었다. 이런 날은 오히려 맨살이 노출되는 것보다 얇은 천으로 가려주는게 훨씬 시원하고 피부를 보호할 수 있다. 물론 모자와 썬글라스는 필수템이다. 양산을 쓰면 더 시원하지만 우리가 간 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 쓸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아부심벨 가이드인 아메드와 만났다. 입장료를 모두 지불한 우리는 그와 함께 사이드 도어로 입장했다.
아직 12시도 채 안되었는데 햇볕이 어마어마하게 뜨거웠다. 아메드는 우리가 아주 좋은 시간에 왔다고 말했다. 한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꽉 차서 기념 사진을 찍기는 커녕 안에서 구경하기도 버거울 정도였다고 넉살스럽게 말했다. 아메드는 재치있었고, 신전을 향해 걸어가면서 신전에 대한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던 아부심벨 신전은 아스완 댐이 건설됨에 따라 수몰될 위기에 처했지만, 유네스코의 지원과 국제적 지원으로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이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수단 국경에 가까운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 이 신전은 람세스 2세 때 자신의 위용을 다른 국가에 보이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아메드는 신전 안으로 자기는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며 안에서 눈여겨 볼 포인트들을 사진으로 설명해 주었다.
이 곳이 특별한 이유는 또 아부심벨 대 신전 옆에 있는 네페르타리 신전이다. 람세스 2세는 자식만 100명이 넘을 만큼 여러 부인을 두었는데, 그 중 가장 사랑했던 부인이 네페르타리다. 네페르타리라는 이름부터가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일만큼 아름답고 지혜로웠다고 한다. 그녀를 위해 신전을 지을 정도이니 정말 사랑했나보다. 아메드는 이렇게 설명하며 남편에게 "람세스 2세가 부인 여러명이었던 거 알지? 들어갈 때 네 아내에게서 눈을 떼지 마"하며 농담을 던져서 한바탕 웃었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볼 때만해도 아직 이집트에 온 지 얼마 안되서 내가 보고 있는게 맞는지 실감이 되지 않았는데, 압도적인 크기의 신전 앞에 서 있으니 비로소 이집트에 온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적의 머리를 내려치는 람세스 2세의 모습부터 애니메이션 효과처럼 움직이는 느낌을 내기 위해 그린 여러 다리의 모습, 벽화의 그림이 너무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어 고대 이야기들 속에 파뭍히는 느낌이 들었다.
신전을 한참 구경하다 나오니 밖의 햇빛이 너무 강해서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한국의 더위가 찜기같다면 여기는 정말 고온의 오븐 속에 있는 것 같아서, 온몸이 땀으로 찐득하게 마르고 있었다. 그나마 기념품샵이 에어컨을 틀어줘서 감사할 따름이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에어컨 값을 친다 치고 마그넷 2개만 사고 나왔다.
사실 걸은 건 별로 없는데 더위 때문인지 체력소모가 심해 배가 금새 고파왔다. 바로 출발하려는 기사님에게 배고픔을 호소했더니 근처 식당으로 데려가 주셨다.
우리가 시킨건 치킨 타진 세트였다. 피타 브레드를 찍어먹을 짭잘한 후무스와 신선한 레몬을 짜먹을 수 있는 토마토와 오이 샐러드, 역시 기름 소금간 되어 있는 맛있는 밥까지. 너무 더워서 남편은 콜라를, 나는 슈웹스를 한잔 추가로 시켜 허겁지겁 먹었다. 딱 이때 이집션 파운드가 떨어져서 계산할 때 달러로 줘야 할 지 고민했는데, 기사님이 흔쾌히 환전해 주셔서 그 돈으로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몰려오는 졸음에 한참을 푹 자다가 갑자기 더워서 눈을 떠 깨보니 올 때는 미친듯이 밟으시던 기사님이 꽤 느리게 운전하고 계셨다. 알고보니 휘발유가 떨어진 것 같았다.근처에는 황무지 밖에 없어서 차가 도로 중간에 멈추면 어떡하지(사실 중간에 그런 차도 보긴 했다. 그마저도 기사님 친구였음) 걱정했는데, 다행히 주유소에 도착해 잘 기름을 넣고 시원하게 출발했다.
아스완 인근에 도착해서는 우리가 둘러보지 못했다는 말을 해서인지, 정말 현지인들의 주거구역을 돌아주셨다. 아파트에 이불을 널어놓고 말려놓은 모습부터(모래먼지가 뭍을 텐데 괜찮을까),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까지 정말 사람사는 동네구나 싶었다. 군데군데 쓰레기가 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 한국처럼 재활용해서 수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태우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해보았다. 언덕 위에서 전경을 내려다 보니 갈색 건물들이 수평선 아래 옹기종기 있는 모습이 카이로 보다 정겨웠다.
호텔에 다시 들어와 짐을 들고, 기사님께 10달러 팁을 드리며 오늘 감사했고 혹시 기차역으로 가주실 수 있냐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당연히 가겠다고 대답하셨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짐을 내리고 악수를 하고 이제 정말 바이바이 하려는 순간 추가 팁을 또 요구하시는 것이다.
아, 물론 중간에 주유도 추가로 하신데다가 운전매너도 정말 좋으셨고, 잘 밟아주신 것은 사실이다(그렇게 본인도 어필하셨고). 그럼에도 그에 수긍한 우리가 추가로 20달러를 드렸는데도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신 건 참 여러모로 아쉽다(잊지말자, 우린 이미 투어비용 지불했다).
아무튼 이를 뒤로 하고, 어렵게 플랫폼을 물어물어 룩소르 가는 기차역 앞에 서있는데. 갑자기 역무원 옷을 입은 사람이 두명 다가와 "룩소르 가는 거 아냐? 너네 왜 여깄어? 기차 타!"하는 것이다. 역무원 옷을 입고 있어 잠깐 안심한 우리가 아 그래? 하고 캐리어를 들고 일어나자, 그들은 정말 전광석화같이 우리의 캐리어를 뺏더니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아뿔싸, 저건 또 팁을 달라는 것이군. 우리 캐리어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데 어찌나 빠르게 눈앞에서 사라지는지, 행여나 들고 도망갈까봐 종종걸음으로 미친듯이 따라갔다.
그리고 우리가 빼지도 못하게 착착 알아서 선반 위에 올리더니, 역시. 팁을 요구한다. 이집션 파운드가 없었던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1달러를 줬는데 매우 못마땅한 표정이다. 그러더니 옆에 동료를 슥 가르키며 얘는 왜 안주냔다. 아니 우리가 들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안된다고 하자 이제 지폐를 탁탁 튕기면서 10달러를 달란다.
배짱보소. 우리가 아시아인이니까 중국 부호처럼 보였던 걸까? 실랑이 끝에 결국 포기한 그는 내릴 때 우리가 와서 내려줄 테니까 너넨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기사님에 이어 팁 강탈꾼까지 완전 혼이 탈탈 털렸다.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주는 팁이 아닌 이런 강탈해가는 류의 팁은 싫다.
그래도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나일강의 노을과 꾸란을 읽는 할머니의 '너네 참 고생이 많구나'하는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룩소르까지는 3시간 반, 기차의 리듬에 몸을 맡기며 밀려오는 졸음에 남편은 안대를 나는 후드를 눌러쓰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