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말렉
우리가 이집트에서 보는 마지막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때, 우리는 기념품을 사러 이집트 부촌인 자말렉으로 향했다. 메나하우스에서 자말렉까지는 차로 30분 거리였는데, 택시를 잡는데 거의 비슷한 시간을 쓴 것 같았다. 소피텔과 달리 메나하우스는 간간이 한국인들도 묵는 숙소였는데 꼭 이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정말 메나하우스는 피라미드 외에는 호텔 안에서 온전한 호캉스를 누려야 할 숙소라는 것을..
물론 메나하우스측에도 혹시 몰라 택시 서비스를 문의해봤는데, 가격이 일반 우버 부르는 것 대비 거의 10배 넘게 그것도 달러로 불러서 포기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숙소로 들어가기 전 차를 대는 곳에 관리 직원 분이 계셨는데,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어디로 가는 지 물어보시더니 택시가 올때마다 대신 흥정해주시고 결국 연결해주셨다.
사실 직원 분 탓이 아닌데, 택시 기사가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를 때마다 외려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셔서 감사하고 또 죄송했다(이 날 이미 결혼식 피로연으로 차가 계속해서 들어오는 상황이라 이미 정신 없으셨다).
처음 묵은 힐튼 호텔도 꽤 경비가 삼엄하다고 생각했는데, 메나 하우스는 묵는 곳 까지 구불구불 꽤 들어오는 데다 경비도 2배는 삼엄해서 내가 택시 기사여도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 같긴 했다. 참고로 호텔으로 들어갈 때 기사님들은 면허증은 물론, 이름과 전화번호 트렁크까지 검사하고서야 들어가고 분위기도 딱딱한 편이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자말렉으로 향했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첫날 갔던 엘 칼릴리 시장에서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수고가 없었겠지만, 이집트 곳곳을 갔지만 기념품이 뭔가 아쉬워서 자말렉까지 오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기가 이집트의 청담이 맞다고? 할 수 있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오히려 소리다.
진입하자 마자 자동차 경적 소리가 확실히 줄어든 것을 느껴서 마음이 조금 안정될 정도였다. 또 거리가 쓰레기 없이 깨끗한 것도 확실히 부자 동네에 들어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건물들이 서양식 양식으로 지어진 곳들이 많아서 기존 동네 대비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했다.
가게가 닫는 시간도 고려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아 미리 구글맵에 저장한 곳만 갔다. 그 중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네페르타리 바디케어였다. 천연 재료를 기반으로 모든 제품을 핸드메이드로 만드는 브랜드인 곳으로, 스킨과 세럼같은 화장품 부터 홍해 소금으로 만드는 배쓰솔트, 바디크림과 같은 바디 용품까지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사실 ‘천연’을 내세우는 브랜드들을 직접 시향해봤을 때 미묘하게 인위적인 향이 나는 곳들도 많은데, 이 곳은 정말 자연 원물 그 자체의 향이 나서 만족스러웠다. 이 곳에서 친구들 선물로 네일 오일, 라벤더 배쓰솔트, 로즈 세럼을 샀는데 샀을 땐 몰랐다.
직접 써보니 훨씬 피부를 촉촉하게 하고 특히 라벤더는 그 향이 정말 진하고 유럽 브랜드 못지 않다는 것을. 결국 이 브랜드에 푹 빠져서 작게 나마 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스마트 스토어도 준비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걷다가 음료수도 사고 남편 회사 동료들에게 줄 초콜릿도 살 겸 슈퍼에 들어갔다. 거창한 가게들 보다 이런 현지인들이 갈 법한 슈퍼에 가서 이 사람들은 뭐 먹고 사나~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마치 앤디 워홀의 작품처럼 형형색색의 선명한 색으로 벽면을 빼곡히 채운 향신료들이 아름다웠다. 오늘 저녁을 마무리 하며 와인을 한잔할 생각으로 치즈코너에 갔는데 치즈 종류도 정말 다양했다. 이집트 여행을 다니면서 유제품의 맛에 반해버려서 냅다 하나 집어왔다.
남편이 초콜릿을 고를 동안, 주기가 간당간당했던 나는 여성용품을 찾아 헤맸는데 몇 바퀴를 돌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럴리가 있나, 이 사람들도 한달에 한번 안할 리가 없는데.
한참을 뒤지다가 여성용품이 위치한 곳에 뒤늦게 온 남편과 나는 둘다 충격에 말이 없어졌다. 못 찾을 만도 하지. 청소솔과 수세미가 위치한 곳 사이에 있었던 데다, 종류도 겨우 3종류 있었다. 탐폰? 탐폰같은 건 당연히 있지도 않았다.
바로 옆에 거의 100종류는 넘어보이는 벽을 빼곡히 채운 남성용 데오도란트와 쉐이빙 폼과 대비되어 조금 서글펐다. 이 걸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겠지만, 이 나라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떤 지 보여주는 단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정리해 놓은 몇몇 상점들을 뽈뽈 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들어가게 된 작은 상점인 Ateeq Design. 기념품을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 상점만 가도 충분할 것 같다. 열쇠고리부터, 가방, 마그넷까지 디자인도 예쁜 데다 품질도 훌륭했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좋지 않은 물건을 사서 금방 버리는 것보다 오래 간직하려면 이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구매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까운 친구들의 기념품을 대부분 샀다.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는데, 패브릭 포스터에 너무 태연하게 앉아있어서 인형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고양이었던 친구도 매력적인 곳이다.
여기에서 코너를 돌면 Diwan Bookstore가 있다. 서점인 곳이라 크게 기대하고 가지 않았는데, 굿즈도 예쁘고 무엇보다 사장님이 정말 유쾌하시다.
이집트 음식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한국에서도 한번 시도해볼 생각으로 레시피 북을 여쭤봤는데, 여러 책을 추천해주셨다. 짐 부피 때문에 두꺼운 책은 구입할 수 없어 얇은 페이퍼백으로 구입했는데, 이 저자가 바로 건너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 정말 하루만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점원에게 계산을 맡기고 사장님과 수다를 떤 것이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시더니 자신의 아내도 요새 한국 드라마만 본다는 이야기와, 노트북에 붙일 아랍어 스티커의 뜻을 영어로 설명해 주시기도 하고, 한국의 음식은 어떤 게 맛있는지, 또 이집트에서 먹은 것 중에 무엇이 가장 맛있었는지 이야기를 끝내고 나가기가 아쉬울 정도로 젠틀하고 유쾌한 사장님이었다.
마지막으로 자말렉에서 꼭 가야할 곳은 아니지만, 자말렉에 왔다면 가도 좋을 곳은 모바코 코튼(Mobaco Cottons)이다. 지금은 철수했지만 원래는 파리에도 입점할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은 브랜드다. 가격은 국내 SPA 브랜드와 비슷하거나 저렴한 가격이지만, 그 품질은 하이엔드 브랜드 못지 않게 부드럽고 튼튼하다.
원래 이집트가 면으로 유명한 만큼 옷을 사갈 정도로 부피가 여유가 있다면 꼭 구입할 것을 추천한다. 사왔던 것들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은 기본 무채색 티셔츠와 면 니트인데, 세탁기와 건조기를 버텨낼만큼 튼튼하고 도대체 면에 무슨 짓을 한 건지 의문이 들만큼 살에 닿는 느낌이 부드러웠다.
쇼핑이 끝내갈 때 즈음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 지더니 아저씨 두명이 싸움이 붙었다. 말리는 사람 반, 그 와중에 또 싸움이 붙는 것 반이었고, 치안이 불안정하다고 생각되었는지 남편의 동공이 흔들렸다. 언뜻 피라미드 투어 때 일행에게 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숙소에서 크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무서웠는데, 알고보니 축구 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고. 꽤나 오래 투닥투닥 하시던 분들은 경찰 사이렌 소리와 함께 흩어졌고, 살짝 불안해진 우리는 미리 가게에서 우버를 불러 재빨리 택시를 탔다.
사실 가격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아무래도 옷을 산 것이라 쇼핑백 부피가 커서 무슨 겉으로만 보면 중국 부호들 같았다. 그래서인 걸까, 약간 양아치 감성(?)의 젊은 택시기사는 타자마자 원래 가격에서 3배 4배 부르기 시작했다. 이젠 우린 쫄지 않는다. 사기에는 사기로 대응하는 법. 준다고 하고 일단 안전한 곳에 도착해서 적절히 흥정하면 된다. 이정도로 기분나빠지는 것은 하수다. 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이놈이 문을 내리고 담배를 냅다 피는 것이 아닌가.
진짜 하필이면 운전석 뒤에 내가 타서 담배연기를 직빵으로 맡게 되자 참을 수 없어 창문을 내렸다. 벌써 고가도로를 탄 상황이어서 싸워서 내려봤자 의미가 없었다. 저녁도 못먹고 계속해서 퀘스트 깨듯이 쇼핑한 터라 기력도 없어서 말싸움 하기도 싫었다. 그런데 우리의 양키 기사님은 우리도 즐거워 하는 것으로 착각하셨나보다.
갑자기 음악 볼륨을 냅다 올리시고 미친듯이 밟기 시작하셨다. 이야 부산에서 택시 탄 이래 이렇게 다이내믹한 택시는 또 오랜만에 타본다. 나중에는 이제 나도 포기하고 그렇게 리듬을 탔다. 기분 상해서 돌아가기엔 이집트의 밤이 아까우니까. 그냥, 살아서만 도착하길 바라면서 그렇게 20분을 달렸다.
도착해서 우버로 계산하고 정해진 팁만 주자 굉장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다행히 호텔에 차를 대는 곳에는 늘 경비 직원 분이 계셔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바탕 담배연기와 함께하는 미친 라이딩을 하고 오니 나는 속이 메스꺼워서 밥이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해산물 수프를, 남편은 햄버거 세트를 룸 서비스로 시켰다. 기대하지 않았던 해산물 수프가 약간 칼칼한 맛이어서 한국의 해장국 느낌이 살짝 났다.
쇼핑을 한 것인지 퀘스트를 완료한 것인지 알수 없지만, 오늘도 만보 넘게 걸어 지친 날이었다. 아쉬운 대로 로제 와인을 함께 마시며 마지막 이집트의 밤을 기념하며 보내주었다.
내일은 그 유명한 대이집트박물관을 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