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차(카이로)

2. 이집트 대박물관(GEM)

by 겨울빛
규모도 크고, 그 큰 규모에 꽉꽉 채운 것이 느껴지는 조감도

이집트에 가면 이집트 대박물관은 반드시 가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는데, 와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났다. 뭐랄까, 유물들의 찐 엑기스 리스트를 추리고 추린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본 유물들의 상태 중 가장 색감과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었다. 보통 옛날의 유물들이 아니라 기본 3000년 전의 물건들이라고 생각하면 이게 지금까지 형태를 갖추고 남아있는 것이 신비로울 지경이다.


아유브에게 "우리도 어디가서 역사 긴 걸로 기죽지 않는데, 이집트랑은 비교가 안된다"라고 하니, 엄청 웃으면서 "맞아, 우린 기본 1,000년 단위부터 시작하니까" 하며 싱긋 웃었다.

눈이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반짝이는데, 유리를 세공해 넣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박물관에서 보이는 벽화와 조각들은 모두 부활을 염두에 둔 것인데, 이렇게 미니어처로 조각해 놓으면 망자가 부활했을 때 이들과 함께 부활해서 생활해 나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족만 그린 게 아니라 일반 농민들도 같이 그려놨는데, 그래야 부활했을 때 왕을 섬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이럴수가, 죽어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니). 아무튼 덕분에 우리는 왕족 뿐 아니라 일반 고대인들의 생활 양식을 볼 수 있다.


(왼쪽부터) 왕 뿐 아니라 농민들도 그련허은 벽화조각들 1, 2 / 역시 부활을 위해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방패와 칼들

또 석상들을 보면 일반 몸에 비해 비율이 이상한 부분을 볼 수 있는데, 귀가 큰 이유는 기근에 지친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이고, 나이에 비해 근육이 많은 다부진 몸은 강한 통치력으로 나라를 이끌 것이라는 포부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앳된 얼굴에 비해 울끈불끈한 근육의 석상들. 다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기근의 심각성은 출토된 그릇에서 보여지는데, 얼마나 배고팠으면 그릇에 음식을 빚어서 넣었다고 한다. 여기서 측은한 마음이 든 것도 잠시, 아래에는 집없는 사람들이 집 모형을 만든 것이라는데 이 부분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느껴졌다.

(왼쪽부터) 심각한 기근으로 그릇에 닭다리 등을 빚어 넣었던 슬픈 밥그릇 / 마찬가지로 집이 없는 자들은 집도 미니어처로 만들었다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추리고 추린 유물들 사이에서 핵심 유물만 보고 지나갔다. 그 중 이집트 하트셉수스 여왕의 모습도 가까이서 보았다. 룩소르 장제전에서는 흐린 벽화와 거대한 기둥에서 보았는데, 여기서 보니 얼굴 특징을 더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수염과 장식은 남장을 했지만 눈매나 입매, 얼굴을 보면 확실히 여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얼굴만보면 누가봐도 여성임을 알 수 있는 하트셉수스의 모습

그렇게 시대 순을 따라 걸어가는데, 그 유명한 투탕카멘이 나왔다. 사실 어린 나이에 죽었다고 설명을 여러번 듣긴 했지만 막상 너무 앳된 왕의 모습을 보니 놀랐다. 그는 5살에 즉위해 고작 18세에 원인 모를 이유로 사망한다. 사인으로는 근친혼과 고위사제들에 의한 독살등이 추정되지만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밝혀진 것이 없다. 너무 일찍 사망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하도 다른 왕들의 무덤들이 도굴을 많이 당해서 온전히 발견된 무덤이 드물었으므로 유명해졌다.

너무 작고 앳되서 깜짝놀란 투탕카멘의 모습

어린 왕을 뒤로 하고 걸어가다보면 이번엔 동물 미라들이 나온다. 역시 같이 넣으면 함께 부활한다는 믿음으로 미라로 만든 것인데, 악어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다양한 동물들이 온전히 그 형태를 갖춘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고양이는 장식도 있고 미라도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은데, 이는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신성하게 생각해서 그렇다고 한다.

(왼쪽부터) 보존상태에 놀라게 되는 악어 미라 / 고양이 부장품들도 많이 있었다

이집트 후기로 가면 통치자들이 바뀌면서 얼굴도 그리스식으로 변한다. 또 미라 양식도 고대 이집트인들이 쓰던 방식이 아니라 간소화되고, 위에 장식을 놓는 것으로 바뀌는데 더 온전하게 남는 쪽은 역시 고대 이집트식이라고 한다.

(왼쪽부터) 얼굴도 머리모양도 그리스식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 미라는 통으로 둘둘 말고 위에만 저렇게 장식을 걸쳤다고 한다 / 엄청난 양의 함께 부활할 부장품들

그리고 나온 수많은 부장품들이 즐비해있는데, 남편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쭉 둘러보니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이게 몇 천년 전의 물건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사실 이대로 매대에 놓고 판다면 전혀 의심하지 않고 구입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보고 이집트인이 외계인이 아니었을까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런 부분이 더 신기하다.

(왼쪽부터) 아니 디자인이 너무 예쁩니다 팔아주십쇼 / 색감이 정말 아름다운 이집트 벽화


이렇게 추리고 추려 2시간 반 정도로 투어를 마치고, 30분 가량 뮤지엄숍을 구경했다. 살벌한 가격과 눈돌아가는 물건들로 악명이 높던데, 어느정도 이해한다. 쿠션 커버가 맘에 들어 가격표를 들어보니 한화로 7만원이고, 스카프가 너무 예뻐서 선물드리고 싶어 보니 20만원이었다. 기본적으로 품질이 어느 누구에게 선물을 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았고, 디자인도 독특했다. 마냥 가격으로 매도하기에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서는 유럽의 박물관들의 뮤지엄숍 가격과 비슷하지만 품질은 비슷하거나 훨씬 좋았으며, 종류도 다양했다.

정신없는 쇼핑이라 사진도 찍지 못했다. 사진은 홈페이지의 것을 참조했다. (출처: gem.eg)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남편이 계속 사고싶어했으나 조각 품질이 별로라서 못산 아누비스 조각상을 여기서 구입했다는 점이다. 또 가족들 선물로 산 마그넷도 여기 디자인이 가장 독특하다. 특히 마음에 든 것은 히비스커스 티인데, 티백은 아니어서 번거롭긴 했지만 티 상태가 정말 좋고 향긋하다. 집에 와서 다이소에서 산 티백에 넣어서 마시는데 5g만 넣어도 새콤하게 우러나서 이집트를 추억하기 좋은 기념품이 되었다.


우리는 30분이 아까울 정도였는데, 한편으로는 30분보다 더 있었다면 지갑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 같다. 또 만약 시간 여유가 있다면 뮤지업숍 말고도 여기에 입점한 다른 숍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네페르타리 역시 작지만 이곳에 입점해 있다.


떠나기 싫은 이집트와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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