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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Jun 17. 2021

새벽비가 주룩주룩

15층 꼭대기인데도 다행히 빗소리가 들린다. 날씨가 더워져 밤새 열어젖힌 창문으로 후드득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전해진다. 창문으로 바람만 들어오는 게 아니어서 좋다. 어젯밤엔 배달 오토바이 소음 때문에 창문을 닫을까 했는데 참길 잘했다. 새벽 빗소리가 더 라이브 한 사운드로 보상해 주었다. 빗물로 연주되는 천혜의 음향은 자장가가 되어 듣는 이의 감성을 촉촉이 적신다. 1층이라면 흙냄새에 풀 내음까지 날 텐데 하는 아쉬움은 이내 아득한 잠의 블랙홀로 빠져버린다. 눈이 온다 해도 그저 적막할 뿐 들리지 않아 하룻밤 자연의 이벤트는 무위로 끝나겠지만, 비는 봄비든 가을비든 또는 장마철의 폭우든 안단테거나 포르테를 동반한 프레스토로 연주된다. 우르릉 꽝! 천둥번개에서 심벌즈를 고안해낸 건 아닌지.


캠핑 갔을 때 밤에 비가 오면 웬 떡이냐 싶었다. 2,3인용 아담한 텐트는 내 살갗이 되어 ‘또도독’ 떨어지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동물원의 철창을 걷어내고 한발 다가선 사파리에서 사자나 호랑이의 숨결을 나이브하게 느낀다고나 할까. 어찌 보면 대자연의 한복판에 누워서 그 정기를 호흡한다는 게 캠핑의 클라이맥스다. 그래서 자연에 중독되고 장비는 늘어나고 황혼엔 집까지 팔아 캠핑카를 구입하나 보다.


오후쯤 비가 그쳤다. 오래간만에 깨끗해진 바깥공기가 나를 불러낸다.  신선함에 취해 걷다 보니 동네 근처 천변까지 다다랐다. 이번엔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어디선가 오후 여섯시를 알리는 시보가 울리더니 디제이의 목소리가 나온다. 곧이어 자연의 소리를 시샘하듯 일정 간격으로 설치된 스피커에서 가요가 흘러나온다. 이런,  집에서 음악 듣다 나왔거든? 안그래도 어제 내린 비로 여울목에서나마 간신히 들리게  개울 소리가 조직적인 스피커 군단의 함성소리에  없이 묻히고 만다. 스피커에서 멀어져  들린다 싶으면 다음 스피커가 다가와 여지없이 소리를 키운다. 바삐 움직이는  다리만 천변에 어울린다. 보기엔 시냇물 흐름에 발맞추어 가는 건각들의 산책길이지만 듣기엔 음악소리 꽝꽝 울리는 헬스장이다. 간혹가다 고지하는 구청의 캠페인은 짜증을 더한다. 이젠 감시 카메라에 홍보 스피커까지? 언젠가 한번 개천이 범람하여 모든  쓸어 버려야 이 속박에서 벗어나리니… 심호흡하며 괜히 머리를 쓸어 넘긴다.


낼모레 또 비가 온다는 예보다. 그 이후론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되겠지. 비보다는 땀이 주룩주룩 내리는 계절, 비가 와도 후텁지근한 계절, 모든 게 끈적끈적... 난 여름철이 싫어요~ 라고 외치면 누가 잡아갈까? 벌써 가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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