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뚜루 파인트는 녹차맛이 최고다. 슈렉을 연상시키는 파스텔톤 초록을 한 입 떠 넣으면 푸른 초원을 내달리듯 진정한 맛의 희열을 느낀다. 스머프 느낌의 민트초코보다 한 수 위다. 꼬릿한 내음의 청국장을 먹었든 향신료 풍기는 파스타를 먹었든, 나뚜루 녹차의 디저트 앞에서 이전의 맛은 디폴트가 된다. 그저 밋밋한 맛으로 평범해지는 것이다. 그 평원에서 녹차맛은 질주한다.
인간관계에선 그러면 안 되겠지만 일단 달달함으로 다가와 씁쓸한 맛을 남기고 떠나는 나뚜루 녹차는 쓰윽~ 내 혀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사람이 그렇다면 단칼에 잘라 버리는 내 습성이 아이스크림 앞에선 마냥 녹아버리고 만다. 달달함과 씁쓸함, 어쩌면 인생을 씹어야만 느낄 수 있는 그 두 개의 입맛이 입체적 형상이 되어 나를 유혹하니 어느새 파인트가 갤런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빠진다.
나이 들수록 뱃살이나 옆구리살, 나잇살 등 온갖 잉여들을 떨쳐버려야 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아이스크림은 다이어트계에 공적 1호다. 1밀리리터에 2칼로리를 내뿜는 강력한 파인트 한 통을 해치우면 자그마치 1000 칼로리가 포도송이 영글듯 주렁주렁, 그러니까 무려 세 시간을 러닝머신에서 힘들게 떨쳐버려야 몸에는 아무 일 없는 것이 된다. 이렇듯 짧은 쾌감에 기다란 수고를 요구하기에 꿋꿋한 결심으로 아이스크림을 멀리해 왔건만...
어느 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화면 귀퉁이에서 나뚜루 파인트를 반값에 할인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50프로 할인 또는 1+1 문구는 너무도 강렬했다. 무려 4통을 한꺼번에 사야 한다는 허들은 가뿐히 넘기고 기어이 주문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진짜로 아이스크림을 1갤런이나 사다니, 갤런은 주유할 때나 쓰는 단위 아닌가. 주유하면 달려야 하는 자동차처럼 먹고나면 하루 온종일 뛰어야 하는 부담은 순간 잊어버렸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이틀 만에 4통을 다 먹어버리고 바로 자기 합리화에 나선다. 녹차 아이스크림은 딸기 아이스크림과는 다르단다. 빨간색 색소는 코치닐 색소라고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로 만든 것인데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도 있단다. 반면 녹색을 만드는 색소인 동엽록소는 누에고치 똥이 원료로 비타민과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치매예방과 관절염, 아토피 등에 좋단다. 동의보감 얘기다. 몸에 좋다는 데 그까짓 칼로리쯤이야 뛰면 되는 거지. 누에 똥도 먹고 땀도 흘리고, 뛰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격이라... 수레가 마차를 끈다는 요즘 경제정책에 딱이다.
이제는 과거가 돼버린 나뚜루 ‘일 갤런’ 체험은 한여름밤의 달콤쌉쌀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날 낮엔 수박으로 시원했다면 밤엔 아이스크림으로 차가웠으리라, 잠시나마. 더위에 지친 나는 그날 밤 닥칠 열대야를 그렇게라도 대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