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들이 점점이 박힌 아파트 건물은 꼭 바둑판 같다. 불 꺼진 창문은 흑돌, 불 켜진 창문은 백돌... 돌 하나하나가 기사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듯, 창문 안에 담겨 있는 삶 또한 녹록지 않은 우리네 인생살이를 말한다. 바둑에 있어 경우의 수는 우주의 별들보다도 많다고 하는데 우리의 삶도 같은 것 하나 없이 모두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아파트 동의 네모 안에서 이루어진다.
태곳적, 동굴에 옹기종기 모였던 집단적 삶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축적된 문명에 힘입어 오늘날 개별적 삶으로 분화되었다. 변연계에 감춰져 있는 본능적 감각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대뇌피질의 합리적 이성이 낮과 밤을 경계로 또는 일상과 일탈을 넘나들며, 우리 삶을 여러 가지로 채색한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와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고귀한 이상은 우리를 지치게도 하지만 들뜨게도 한다. 그것은 아파트 동의 창문에서 환한 불빛이거나 때론 깊은 어둠으로 표현된다. 저 어느 칸에서는 풍요로움으로 환한 불빛을 밝히고 또 어느 칸에서는 결핍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이 어둠을 택했을지 모른다. 아직도 귀가하지 못하고 험난한 인생살이의 파고(波高)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그래서 늦은 시각임에도 아무도 들지 않은 집은 쓸쓸해 보인다.
훈련병 시절 유난히도 추웠던 어느 겨울밤, 야간훈련을 하면서 바라보았던 관사 아파트의 불 켜진 창은 참으로 따뜻했다. 맨손에 짝짝 달라붙는 차가운 쇳덩어리 총을 가지고 제식 동작을 무한 반복하면서도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내 눈에 비치는 아파트 창의 따뜻한 온기 덕분이었다. 망막을 통해 들어온 창의 불빛은 감각의 증폭을 거쳐 온몸을 데우고도 남았다. 안과 밖, 빛과 어둠의 차이를 그때만큼 절실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때부터일까, 더운 여름이라도 아파트의 불 켜진 창은 따뜻하다.
해 질 녘, 창문에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은 버거워 보인다. 힘겨운 고갯마루에서 짐을 풀고 털썩 내려앉는 고달픔이 보이는 듯하다. 다섯 고개는 넘어야 한 주가 마무리되는 삶의 굴레에서 불 켜진 창은 쉼터를 알리는 표지판이다. 무거운 가방에 짓눌린 어깨도, 출퇴근 전쟁에 시달린 몸과 마음도 불 켜진 표지판을 보는 순간 고된 하루가 끝났음에 안도한다. 하루의 출발선이었던 아파트 입구는 그날의 결승선이 되어 지친 이들을 맞이한다. 각자의 구역으로 들어가 창의 불을 밝히며 짐을 풀듯 하루의 피로도 풀어낸다. 시나브로 바둑판 위에 흰 돌이 세를 확장한다. 결국 백이 승을 거두고 환해진 아파트는 다음날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 된다. 마치 충전중에는 충전기에 불이 켜지듯... 그리고 내일 또 하나의 고개를 넘기 위한 쉼터가 된다. 그렇게 아파트는 모든 이의 삶을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