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임플란트 체험기

by 글쓰고돈쓰고

“잇몸은 간(肝)과 같아서 감각이 없어요. 아프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치과의사의 말이 내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밤낮 양치질하는 것으로 치아관리에 자신이 있었던 나에게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날로 이틀에 걸쳐 사랑니 포함 치아 7개를 뽑고 임플란트 시술에 들어갔다. 치과 입구에 놓인 홍보용 시술 부위 사진을 보니 잇몸을 찢고 뼈에 나사를 박고...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무통이란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재차 물어봐도 마취로 하기 때문에 시술 시엔 통증이 전혀 없다고 한다. ‘뼈까지 마취가 되나’ 문외한인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잔뜩 긴장된 상태로 체어에 앉았다.


‘마취가 된다 해도 시술 중 마취가 풀리면... 드릴로 파다가 신경을 건드리면...’ 이런저런 걱정으로 온통 머릿속이 복잡한데, 막상 시술에 들어가니 간호사가 간단한 설명을 한답시고 내민 종이 한 장이 오히려 나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수술 전에 받아두는 부작용에 관한 고지 확인서라는데 데스크에서 얘기할 땐 아무 말도 없더니 돌이킬 수 없는 체어에 앉으니까 서명까지 요구한 꼴이다. 내가 했던 걱정이 활자화된 것을 보고 혹시 모를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니 그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윙윙거리는 기계음 소리에, 분명히 내 뼈인데 통증은 없고 진동만 느끼는 황당함과 잇몸뼈에다 망치질까지 하는 무계함까지, 그야말로 황당무계였다. 잔뜩 긴장되어 힘이 들어간 어깨에 간호사가 손을 얹으니 이상할 정도로 안정감이 왔다. 찌릿한 긴장감이 간호사의 손을 통해 접지(接地) 된 바닥으로 흘러나간 기분이었다. 터치가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다. 의사가 진행 상황을 간간이 중계하면서 '잘 참는다', '곧 끝난다'로 다독여 주니 이 사람들 보통이 아니구나, 치과 기술에 환자 다루는 요령까지, 베테랑임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시술은 무사히 끝났다.


아프지도 않았다. 단지 시술 내내 입 벌리고 있느라 턱이 뻐근할 뿐이었다. 하지만 피가 철철 나는 잇몸을 지혈하느라 솜을 문채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데스크에서 사랑니 자리에 임플란트를 하나 더 식립(植粒) 했다고 알려줬다. 더 튼튼한 치아를 위해서 시술 중에 내린 결정이라 했다. 순간 추가요금이 떠올랐다. 간호사는 재빠르게 ‘공짜’라고 덧붙였다. 데스크에 있는지라 눈치가 빠르다. 앞으로 몇 달 더 다녀야 하지만 나는 미리 잔금완납으로 응답했다. 지혈 때문에 고맙다는 말은 못 했지만 훈훈한 광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임플란트에 감사했다. 그게 없다면 이 나이에 바로 틀니 인생이 됐을 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취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마취가 없다면 아무리 먹기 힘들고 불편해도 임플란트는 상상도 못한다. 어디 임플란트뿐이랴. 모든 수술은 언감생심이다.


19세기 중반까지 마취제가 없어 수술 시 환자는 극한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차라리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고통을 줄이려고 신속히 수술하는 것이 당시 의사의 능력으로 간주되었다. 영국의 의사 제임스 심은 불과 90초 만에 하지 절단술을 마치는 기록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속도가 빠르면 정밀도가 떨어지는 법, 환자뿐 아니라 조수까지 마구 휘두르는 칼에 베이게 되어 패혈증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결과는 마취제에 대한 연구를 절실하게 했다.


마침내 1964년 윌리엄 모턴이 마취 공개 시연회를 열어 흡입용 에테르를 사용, 종양 적출 수술에 성공한다. 이는 공식적인 최초의 무통 수술이다. 고통스러운 고문에서 서양의학의 꽃인, 진정한 수술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관람자들은 믿을 수 없어했다. 결국 집도의가 "여러분, 이것은 속임수가 아닙니다."라고 외침으로 전신마취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그 후로 마취제는 클로로포름, 미다졸람, 프로포플, 리도카인 등 전신 또는 국부 마취용으로 다양해졌으며 지금도 더욱 안전한 마취제를 위해 연구 중이다.


옛날엔 어떻게 살았을까. 1940년대 인간의 수명은 45세였다고 한다. 짧은 생애에 전쟁도 혹독했고 전염병에도 무방비였으니 그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과학과 제도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셈이다. 기대수명 100세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임플란트 수명은 기껏해야 15년이라고 한다. 앞으로 몇 번은 임플란트를 또 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또 할 수 있을까. 드릴로 판 데를 또 파야 한다. 또 한차례의 기술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과학이 인간 수명을 늘려놨으니 AS(애프터서비스)도 발전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그것도 자본주의 구조에 적응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과학도 수익이 뒷받침되어야 발전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도 뒷받침해 줘야 하니 과학문명에 갈채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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