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오후...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원래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는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그것은 일상의 또 다른 변주를 시작하는 버튼이 되었다. 이제 그로부터 야기된 장장 81분간의 통화에 대해 쓰려 한다. 전화하는 내내 수동적으로 듣기만 했으나 끊고 난 후 가슴 한구석엔 지루함마저 녹이는 온정을 느꼈다. 언젠가는 세월이 나에게도 기력을 빼앗고 생활의 무력함을 가져다줄 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한 살 차이로 엄마와 동거, 동숙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사촌 누님의 전화였다. 여든 중반의 나이로, 정년퇴임 후 근래까지 선교합창단을 통해 해외도 몇 번 나가며 활발한 봉사활동을 했었더랬다. 최근 건강이 안 좋아져 바깥출입이 어려워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유선상이라도 외출이 하고 싶었나 보다.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해지고 어스름한 저녁 무렵, "언제 와?"라고 전화 걸어 다짜고짜 물어보던 돌아가신 엄마의 목소리가 오버랩 되면서 가슴 뭉클함이 일었다. 엄마는 하루 중 노을 지는 저녁때쯤이 제일 싫다고 하셨다. 아마도 저녁노을 속에서 당신의 저무는 인생을 보았기 때문일까. 우리의 노을도 마냥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오버랩을 눈치챈 양, 누님은 엄마의 이야기로 81분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전자파에 약해 머리가 아픈 나에겐 고난의 행군이었다. 꿈에 보인다고, 나도 갈 때가 되었나 보다라며, 엄마를 등장시키더니 고향에서의 옛날이야기로 시공간이 옮겨지면서 무궁무진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엄마에게도 들은 바라 거의 아는 얘기였지만 다른 버전으로 들으니 또 다른 맛도 있었다. 지난주에 간증도 했다면서 역사가 110년이나 된 교회의 초창기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는 두 분의 활약상을 듣는 대목에선 농촌계몽소설 '상록수'의 채영신이 떠올랐다.
모두 다 옛날 사람, 옛날 얘기로 가득 찬 통화는 나의 인내와 끈기로 견뎌내기엔 벅찼다. 계속 얘기 듣고 있음을 표하기 위해 취했던 리액션도 그 변화를 시도해야 할 정도로 고갈될 무렵 이야기는 비로소 현시점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자식 얘기가 나올 것 같아 건너뛸 요량으로 나는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손자의 이름, '태순'을 호명하며 무대로 등장시켰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빠와 손잡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러시아니 베트남이니 아이가 자란 배경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빠의 직업이 나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리 짜인 각본인 것 같아 체념하고 자식부터 등장하는 이야기에 다시 예의 그 리액션 자세로 돌아왔다. 누님은 거듭 ‘이렇게 시간 뺏어서 괜찮냐’고 말하면서 나를 챙겨주는 듯 자신의 교양도 챙겼다.
나는 종횡무진 누님의 말씀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주변 인물들의 근황을 엿보기도 하였고, 때론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로 시작되는 그들의 말 못할 고충도 염탐했다. 역시 어머니인지라 자식들 얘기에 눈물짓기도 하였고 웃음으로 마무리되기도 하였다. 자식은 영원한 자신의 일부이며 아픔인 것이다. 자신의 미래이기에 그 자식의 자식까지 사랑이 전해지나 보다. 마침내 사랑의 엑기스(?)인 거액의 금전을 큰아들에게 쾌척하였다는 대목에선 자연히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되었다. “나 잘했지?” 하며 나에게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꼭 어린애 같았다. 우리 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엄마도 아낌없이 내줬을 텐데...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내 안부를 끝으로 81분간의 대장정은 끝이 났다. 짧은 통화로 일관하던 나는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얼굴 표정을 볼 수 없기에 전화통화는 답답하다. 글을 읽을 때 행간의 의미가 있듯이 대화할 땐 표정에서 읽히는 이면도 있는 것이다. 그런 답답함으로 81분을 소비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듣기만 한 통화에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말은 별로 못했어도 뭔가를 했다는 느낌이었다. 바로 ‘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노인의 외로움을, 노인의 지난날을, 그리고 노인의 살아있음을 확인해주었다. 육신은 불편함으로 집에 묶여 있지만 정신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를, 자신과 주변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것이다. 끊을 때 “자식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네가 해주는 구나”라며 장시간의 통화에 고마움을 표한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우리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도 들고 몸도 늙어가게 마련이다. 우리의 노년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전화로라도 쓸쓸함을 달래고 싶은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주변 어르신들한테 자주 전화를 드려야겠다. 지금의 봉사로 포인트를 쌓듯이, 언젠가 써야 할 때를 대비해서 차곡차곡 모아야겠다. 결국 오늘의 81분은 소비가 아니라 저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