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무대'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열혈팬인 아버지는 월요일 밤만 되면 TV 앞에 앉아 끝날 때까지 시청하셨다. 그 시간대 TV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는 아버지의 젊었을 적 추억을 떠올리는 마중물이 된다. 가사뿐만이 아니라 멜로디는 들리면서 보이기까지 하나보다. 청각을 넘어 시각을 자극, 지난 시절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짐을 TV에 빠져든 아버지의 힐끗 본 모습에서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화면을 보는 눈빛은 어느덧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는 아련함에 초점을 잃는다. 평소 아버지는 한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시는 적이 없기에 가요무대엔 단순 프로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가 찰떡같이 달라붙어 숭늉처럼 구수하게 들려오는, 나의 맘을 고향의 품인 양 편하게 감싸는 멜로디 아니 노랫가락이 들렸다. 때는 월요일 밤 10시였고 채널은 9번으로 다름 아닌 가요무대였다. 순간 열심히 시청하셨던 아버지가 떠오르면서 그 ‘어렴풋함’ 이 그제야 ‘뚜렷해짐’을 깨달았다. 그동안 '콘서트 7080'이란 프로를 보는 것으로 나 또한 젊었던 시절의 향수를 달래곤 했다.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가 나오면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어설펐던 첫사랑이 생각나고 그 이후의 아쉬움과 새로운 만남 또는 젊음의 생기와 설렘 때로는 방황과 불안 그리고 문득 거리에 뒹구는 낙엽과 그것에 튕겨진 가을 햇살에 가슴 뭉클함 같은, 그러나 지금은 세월의 무던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멜로디와 함께 새록새록 이거나 문득문득 느껴지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기억들로 누구에게나 있지만 아무에게나 공감될 수는 없다. 말하자면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누구는 슬픈 기억이 떠올라 눈물 흘릴 수 있고 누구는 그때의 환희가 떠올라 가슴 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요무대는 다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 6.25를 거치면서 산업화의 물결 속에 녹록지 않았던 근현대사가 가요 속에 녹아들어 고스란히 LP 판에 취입되었다. 아버지 세대 또한 그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기에 비슷한 주파수의 파동이 맥놀이를 일으키듯 시대의 감정이 증폭되어 개인에게 다가온다. 그 시대를 기반으로 발전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아버지의 피를 통해 물려받은 주파수로 가요무대에 공감하게 된다.
'굳세어라 금순아(1953년)'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노래이지만 아버지 나이대가 되면서 가슴에 와닿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시대적 유산이 다음 세대의 보편적 유산으로 정착해나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몇 해 전 영화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훌쩍 넘어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대가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제시대 '황성 옛 터(1928년)'로 망국의 한을 노래하고 피난시절 '이별의 부산정거장(1954년)'으로 이별의 슬픔을 달래주고 '아빠의 청춘(1966년)'으로 자식들을 위한 아버지의 희생과 세대 간의 갈등을 드러내면서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가수 나훈아는 '고향역(1972년)'을 불러 산업화 시대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이들의 기쁨을 표현하면서도 2절의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란 대목에선 듣는 이로 하여금 목이 메게 함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어머니를 향한 우리의 정서이기에 아직까지, 특히 명절 때가 되면 TV이나 라디오에서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인생은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다. 다만 각각의 시대적 배경이 다를 뿐 거기에는 삶의 역경과 성취, 좌절과 성공, 인내와 보상이 버무려져 어느 세대든 공통분모를 갖는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 세대를 놓고 보았을 때 아버지 세대에는 '6.25'라는 위기가 있었지만 '산업화'라는 기회가 있었고, 나의 세대는 '군사독재'라는 암울이 있었지만 IT 산업을 중심으로 '벤처'라는 희망이 있었다. 요즘 세대에는 그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일까. '청년실업'이라는 좌절이 있지만 인터넷을 통한 '정보사회'가 돌파구일까.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시대적 배경이지만 각 상황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과 정서는 희로애락으로 일반화된다. 가사 내용은 어떨지 몰라도 그것을 담고 있는 노랫가락, 즉 멜로디는 우리의 감성을 울리게 한다. 흘러간 노래가 지금의 멜로디와 많이 다르다 하더라도 한민족이라는 운명공동체가 공감할 수 있는 가락의 원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멀리는 민요가 그렇듯 가깝게는 가요가 그렇지 않을까. 다만 인생을 웬만큼 겪은 나이쯤 돼서야 와닿게 되는 공감일 터, 어느 날 갑자기 귀가 뚫리고 가슴이 열리는 ‘월요일 밤 10시’가 어느 누구에게나 올 것이다, 나에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