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처음 배우는 영어에 대비해 알파벳부터 외웠던 기나긴 겨울방학이 생각난다. 오선지가 아닌 줄 4개짜리 영어학습용 공책을 사서 중간 두 줄 사이에 a, b, c, d...를 한 자 한 자 연필로 꾹꾹 눌러쓰면서 어린 소년의 가슴엔 '새로운 학문'에 대한 설렘이 일었다. 그 당시 '국영수' 보다 '영수국'이 대세였고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지배적이었을 때였다. 중1 때, 영어야말로 최대의 암기과목(?)이라 주장하는 사교육 스승을 만났다. 당장 선행학습에 들어가 꼬부랑글자들을 무지막지하게 암기하고 급기야는 교과서 전체를 단어 하나 틀리지 말고 외워야 하는 혹독한 시련이 시작되었다. 수업시간 중에 선생은 졸아도 우리는 외워야 했던 '시추에이션'은 마치 그때 흥행했던 영화 '취권'의 한 장면 같았다. 그날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바로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다. 문지방으로 쓰였던 넓적한 나무토막은 우리를 잡는 저승사자였다. "움직이지 마잉, 그러다 다쳐" 벽에 기대게 한 다음 엉덩짝에 내리치기 전 선생님은 꼭 이 대사를 읊어댔다. 매보다 말이 더 무서웠다. 스파르타식 교육은 어느새 나를 영어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한글 아닌 것은 그 뜻이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보게 되고, 커피나 필름 같은 외래어도 외국어인 양 발음하고, 말하면서 중간중간 영어 단어를 끼워 넣는 버릇이 생겼다. 어린 마음에 영어를 정복하려다 정복당한 느낌이었다.
No, I'm not fine, bu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돌이켜보면 영어 한 과목이 나의 십 대 시절 소중한 시간들을 독과점했다고 여겨진다. 하기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영포자'가 아닌 이상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당시의 학생들은 그러했다. 성문종합영어가 학생들의 바이블이었고 두꺼운 사전은 씹어먹어야 할 마늘과 쑥이었다. 백일을 넘어 천일 동안, 사람구실을 할 수있다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 3년 내내 인내해야만 했다. 그 인내의 정점에는 당연, 꼬부랑 활자가 주는 고통이 있었다. 암기과목뿐만 아니라 어쩌면 수학까지도 단기완성이 가능했지만 영어만큼은 미국적 사고와 행동까지 요구하는지 쉽게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너도 나도, 문과나 이과나, 학부모나 선생님이나... '영수국'이었다.
But schooldays of the English, by the English, for the English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학력고사 3교시 영어시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재수이기에 이번에 떨어지면 '대입 말고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1교시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드르륵...' 정적 속에 문은 열리고 근엄함 표정의 시험감독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 무슨... 아는 얼굴이었다. 작년 고3 때 담임이었다. 게다가 그분은 영어선생님이었다. 이런 우연, 아니 인연이 다 있나. 담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마치 홈그라운드에 있는 양 마음이 편해졌다. 수험장이었던 낯선 학교 낯선 교실이 모교의 우리 반이 되었다. 시험 중에 수험생과 수험표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얼굴을 들었고 선생님은 놀랐고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염화미소가 전해지는 찰나의 시간에 그분의 격려와 나의 자신감은 교차되었고 이후로 나의 답안지에는 확신에 찬 동그라미가 차례차례 표기되었다. 그런데 시험 시간이 중간쯤 흘렀을까, 선생님은 내 옆을 지나가면서 당신의 손가락으로 내 시험지 어딘가를 스치듯 하지만 확실하게 짚으셨다. 그 또한 찰나의 시간이었으나 나는 순간포착의 눈길로 그 문제에 문제가 있음을 눈치챘다. 당연히 나는 실수를 깨달아 답을 정정하였고 점수 한 점차로 당락이 좌우되는 입시에서 수백, 수천 명을 순식간에 앞서가는 '은사'를 받았다
Yes, I can do it.
Genius is one percent insperation, ninetynine percent perspiration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결국 영어는 내가 충실했던 것만큼 대학가는 수단으로 나에게 보답해 주었다. 그 이후로도 교양영어는 당연히 A였고 대학원 영어시험까지 1등을 하여 교수님의 영어 관련 과제는 내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중1 때 처음 만나 대학원 졸업까지 거의 20년간 내가 영어를 좋아하니 영어도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졸업 후 학교를 떠나면서 자연스레 영어와도 멀어졌다. 세월이 흘러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영어의 인기는 날로 날로 높아만 갔지만 실제적인 필요성을 못 느낀 나는 영어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그래도 필요하면 언제든 복구될 거라는 여유는 있었다.
But out of sight, out of mind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네프킨, 플리즈...”
“파든?”
“넵낀, 넵낀, 플리즈...”
“아이 엠 쏘리, 왓?”
“Napkin, please...”
“Oh, wait a minute”
영어가 나를 배반했다. 뉴질랜드에서 단어 한마디 말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네프킨 한 장 얻지 못한 것이다. 옆에 있던 현지에 사는 조카가 답답했는지 다시 발음해 주었는데 종업원은 단번에 알아듣고 카운터로 갔다. 나로서는 황당했다. 조카가 한 발음이나 내 발음이나 내 귀엔 똑같이 들렸는데 마치 종업원이랑 짠 듯이 내 것은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대학원 때까지만 해도 영어 하면 나였는데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이렇게 녹이 쓸었단 말인가. 여긴 영국식 발음이라서 그런가 보다 해도 별로 위로되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몇 달 있었는데 생각보다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았고 말로 소통하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To speak or not to speak, that is the question to me.
There is an order to everything.
요즘에는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워서인지 학생들 발음이 좋다. 그리고 듣기와 말하기를 먼저 시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언어 습득도 되는 것 같다. 우리 때는 반대였다. 걸음마 떼자마자 달리기 하듯, 알파벳을 익히고 바로 문법과 독해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칠판에 빼곡히 썼고 학생들은 교과서에 그대로 옮겼다. 언어는 단지 습관인데 바로 학문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러니 재미도 없고 아주 고역일 수밖에. 십 대의 소중한 시간들을 대부분 영어에 갖다 바쳤는데 네프킨 하나 얻지 못하다니, 결국 학교영어만 잘했던 우물 안 개구리인 셈이다. 학생 시절 문교부 장관이었던 인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었다. 지금은 대학입시 문제로 교육부 장관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는데, 오히려 그때처럼 수능 점수로 줄 세워 형평성 있게 대학 들어가게 하고 교과 내용이나 고민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정철, 민병철 선생이 그립다. YBM이나 SDA 학원은 아직도 있으려나.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다.
Well begun is half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