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소음의 차이

by 글쓰고돈쓰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오래되어서 그런지 나무가 우거져 숲의 분위기다. 세월은 인공구조물에 낡음을 주지만 수목에게는 울창함을 준다. 낡아져가는 아파트에 수목이 푸르른 옷을 입히니, 새 아파트에 가지가 앙상한 나무 몇 그루의 풍경보단 생기 있어 보인다. 게다가 새들이 모여들어 아침저녁으로 지저귀니 그 노랫소리에 귀가 즐겁다. 단순 참새의 짹짹거림뿐만이 아니다. 까악까악 길게 우는 까마귀와 깍깍 짧게 우는 까치가 있고, 낮에 우는 뻐꾸기가 있는 반면 밤에 우는 소쩍새도 가끔 들린다. 쏙쏙, 속속... 네 박자에 맞춰 우는소리는 밤의 정취를 깊게 한다. 아마도 밤새 짝을 찾는 수컷의 애달픔이리라.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새들의 청각적 존재감은 수목의 시각적 푸르름과 어울려 우리의 정서적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소리다, 자연의 소리... 태초부터 인간은 문명의 때가 끼지 않은 소리만 들으며 살아왔다. 솔솔 부는 바람소리나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에서부터 우르릉 꽈광 천둥번개 치는 소리, 심지어 소름 끼치는 맹수들 포효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소리는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가이아(Gaia)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내는 필연적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인간 또한 가이아에 속한 것이니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 단지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그러니까 천진난만한, 어찌 보면 우리의 어릴 적을 회상할 수도 있는 웃음과 떠듦이 15층 꼭대기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올라온다. 'ㅁ'자 형태의 동(棟) 배치는 소리가 사방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라, 결국 위 방향으로 솟구치면서 각 층의 세대에 배분하고 나머지는 하늘로 퍼진다. 그것은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원리며, 소리와 소음의 구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소리와 소음의 경계는 어디일까. 나는 소리 범주의 최외곽은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인 것 같다. 그것은 자연의 소리여서 그렇다. 아이들은 성장의 과정에 있기에 에너지가 넘친다. 그 에너지는 뛰노는 운동에너지와 소리 지르는 파동에너지로 발산된다. 그러면서 근육과 성대가 발달하고 정서적 함양도 이루게 된다. 한 인간으로 완성되기까지의 필연적 과정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성인이 떠드는 소리는 소음의 범주로 넘어간다. 성인은 이미 발달 과정을 마친 상태인지라 교양을 벗어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거나 한밤중인데도 큰소리로 감정을 분출하는 것은 에너지가 아닌 엔트로피(무질서)의 증가일 뿐이다. 주변의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온함(질서)을 해친다. 그래서 소음인 것이다.


자연스러움은 질서다. 무질서는 가이아가 제일 싫어하는 조건이다. 지구온난화는 무질서의 대표적 예다. 어느 지역에서는 가뭄이고 어느 지역에서는 홍수가 난다. 음악은 음의 배열이 질서 있게 전개되기에 아름답다. 소음에 질서가 있을까. 갑자기 오토바이가 가속할 때 내는 굉음과 사다리차가 짐을 올릴 때 내는 기계음, 분리수거하는 날 유리병이 부딪히거나 페트병이 찌그러지면서 발생하는 온갖 잡음들, 게다가 애완견들의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신경질까지, 이 모두가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소음들이다.


시골에서 들었던 한밤중 개짖는 소리는 전원 풍경과 어울리며 자연의 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아파트의 각 세대마다 갇혀있는 개들은 애완견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포함된지라 생활 소음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연스러움의 여부가 질서 아니면 무질서로 나누며 소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조용함을 찾아 꼭대기 층으로 이사 왔건만 아무도 없는 외딴섬이 아닌 이상 소음의 차단은 사치가 돼버렸다. 더욱이 요즘같이 더워서 창문을 열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예 귀를 닫든지 아니면 마음의 문까지 활짝 열어 소음을 포장해야겠다. 마음의 소리를 나 자신에게 울려야겠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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