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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Jun 27. 2019

성지순례를 마치고...

절두산...

그 이름만 봐도 성지순례로 더한 장소는 없어 보인다. 2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의 신음이 들리고 처참한 핏빛이 어른거린다. 아침부터 흐린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슬픔이 아닌 기쁨의, 고통이 아닌 환희의 눈물일 듯싶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여기저기 본당성당 깃발 아래 모인 예비신자들의 순례에서 알 수 있었다. 죽었기에 살아난 것이다. 그들의 피가 오늘 우리들의 신앙에 자양분이 되었음을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까.


교리 시간에 배운 성경 속 사실들과 진실이 종교적 신념이 되고 어쩌면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신앙이 되기까지, 우리는 그 사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 주님을 찾기도 하고 갈구하면서 삶의 위안을 받을 것이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명동성당이 이제는 빌딩 숲에 둘러싸여 왜소해 보일지라도 여전히 신앙의 안식처임을 예비신자는 느낄 수 있었다. 보이는 벽돌 마다 깃든 선배 신앙인들의 염원이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성당이 되어 우리를 맞이한다.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조화는 십자고상에 머리 숙이는 전례와 그 행위에 담는 경건함에 있다. 성모상께 합장하고 장괴틀에 무릎 꿇는 것으로 마음속 신앙심은 키워진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완성하기 위해 성지순례는 계속된다.


명동성당 옆에 위치한 샬트르  바오로 수녀원은 13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수녀원이라 한다.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고 있지만 인솔하시는 수녀님의 섭외로 방문할  있었다. "여러분한테는 이번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입니다" 시작되는 수녀님의 소개말에 순례자의 발걸음은 진지해지고 주변을 돌아보는 눈길은 경건해진다. 수녀원의 차분하고 고즈넉한 바깥 분위기는 그대로 건물 내부로 이어져 우리가 들어간 본당에서도 느낄  있었다. 마침 수녀님들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청아한 목소리는 천상의 음성이 되어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으로 보였다. 기둥도 없이 네모반듯한 본당 내부는 신앙의 열정으로 차올라 제대위의 십자가  개를 삼위일체로, 뒷자리에 앉은 우리를 신앙공동체로 묶어놓았다. 아무런 치장 없는 단순함이 기도에 집중할  있는 여건이  셈이다. 건축을 전공한 나로서는 공간이 주는 종교적 체험을 하였다.   


인솔자 중에서 누군가 오늘만큼은 예비신자의 '예비'는 빼라고 하였다. 출발할 때에는 몰랐으나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그 말에 동감되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한 것이 그동안의 관념적 대상에서 구체적 확신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40여 년 동안 개신교 신자였을 때 해보지 못한 체험이었다. 그래서 성지순례가 세례 받기 위한 '필수'이고 교리 수업의 '절정'이고 그 후기는 기행문이 아닌 '감상문'이라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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