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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Jun 26. 2019

혜화동 또는 대학로


내가 다니는 혜화동 성당은 노원역에서 전철로 2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신시가지에서 옛 도심지로, 소비지향에서 문화중심으로, 현실에서 기억 속으로 결국 일상에서 감상으로 이동해버린다. 공간의 변화는 거리의 가로수를 통해 한눈에 들어온다. 유서 깊은 동네의 '그동안'을 묵묵히 지켜본 나무는 자신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주변의 건물이 또는 사람들이 세월의 흐름에 시달려도 나무는 그 세월을 받아 몸통을 불렸다, 가지를 쭉 뻗었다. 주름진 몸피로 굴곡진 세월을 보여주며 듬직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우리 동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파릇한 이파리는 봄의 전령사다. 무성해지는 잎새 위로 바람은 스쳐가고 햇빛은 튕겨지며 거리의 분주함에 참여한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나뭇잎을 두드리며 음악이 되고 흩날리는 눈발은 가지 위에 쌓여 그림이 된다. 키가 큰 플라타너스는 주위의 건물들까지 내려다보는 파수꾼 역할을 하며 우리를 지킨다. 덕분에 우리는 그 그늘 아래서 노래도 듣고 연극도 본다. 무엇보다도 가로수가 만들어내는 울창함에 보는 이의 마음도 푸르러진다. 예나 지금이나 늘 그러했다. 옛날엔 여기에 개천이 흘렀다는 것 빼고는...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수십 년 전을 되짚고 싶었다. 햇살 좋고 바람이 산들거리던 가을 초입에 나는 모교를 찾아가 보았다. 옛 서울대 문리대 자리에 위치한 교정은 초등학교 치고는 넓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처럼 여러 동의 건물을 몇몇 학년별로 나누어 사용했었다. 약간 상기된 마음으로 옛 교문부터 찾았다. 하지만 그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부근에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교문은 교차로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게다가 학교 건물도 달랑 한 동으로 전교생의 교실이 모여 있었다. 고풍스러운 목조건물은 세월이 갉아먹었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넓었던 운동장도 새로운 건물로 메워져 옛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 자신을 과시했던 아름드리나무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 쏟아졌던 햇살만이 그대로였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만큼 세월의 흐름은 거셌다.


실망한 마음으로 다시 교문을 나와 대학로를 걸었다. 자세히 보니 대학로도 많이 변했다. 마로니에 공원과 서울대 병원 말고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도로도 넓어졌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대학로가 주는 분위기는 변함없이 차분하다. 왜일까. 그 차분함의 중심에 아마도 수십 년 세월을 견디어온 가로수가 있어서인 것 같다. 그 '터줏대감'이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주변의 '잔챙이들'이 들쑥날쑥해도 전체적인 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저냥 세월을 벗 삼아 나무들이 존재하기에 대학로는 우리에게 늘 그대로라는 편안함을 준다. 주변에 변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본주의의 영악함에 인본주의의 무던함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 시류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질주라기보다는 흐름이랄까. 정글보다 생태랄까.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이며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이다. 모두가 끄덕일 수 있는 분위기, 더 이상 모든 개발이 개선이 아니고 빠른 속도가  당위가 아니듯이, 문명보다 문화가, 보이는 높이보다 느껴지는 깊이가 이제는 우리 삶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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